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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만의 멋지고 세련된 느낌을 표현하는, 프렌치 시크(French Chic)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패션에 강한 다른 장소, 예컨대 뉴욕 시크나 이탈리아 시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무심함’에 있다고 한다. 멋있으려 애쓰지 않는데 그냥 저절로 멋스러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멋’이라고 해도 좋겠다. 혹은 ‘방치된 무심함’의 뉘앙스마저 철저히 계산하는 프랑스인들 특유의 지적 허세나 섬세한 태도에 있거나.

실제로 프랑스는 경제적으로 나라 전체를 이끄는 힘 자체가 패션에서 나온다고 해도 좋을 만한 ‘패션의 나라’지만 그걸 상쇄시키려는 듯 언제 어디서든 작정하고 ‘지성’을 강조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패션의 도시에서 살지만 패셔너블해 보이기보다 편안하면서도 지성적인 자기다움을 발산하는 걸 더 좋아하고 존중하는 프랑스인 특유의 삶의 태도. 그게 바로 프렌치 시크의 정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왼쪽 사진 오른쪽)가 지난 15일(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 부인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구본창 작가의 ‘백자’(오른쪽 사진). 서성일 기자

물론 ‘코리안 시크(Korean Chic)’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즐겨 쓰는 단어는 아닐지도 모른다. 사전에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말의 느낌이나 정체, 혹은 정수에 대해 제법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사진가 구본창이 찍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처음 봤을 때 밤하늘의 달을 닮은 단순한 순백의 삐뚜름한 그 원형이 예뻐 보여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의도적으로 꾸민 이 세상의 모든 보물, 명품 같은 것들이 죄다 가짜 같고 촌스러워 보이게 하는 수수한 아름다움.

20세기 최고 도예가였던 영국인 버나드 리치는 조선 도자에 심취해 1935년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고 돌아갈 때 달항아리 하나를 구입해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 구본창이 달항아리를 찍기 시작한 사연을 생각하면 ‘애틋한 행복감’이라고 해도 좋겠다. 버나드 리치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애지중지 아끼던 달항아리를 애제자인 도예가 루시 리에게 주었고, 구본창은 백발이 다 된 루시 리가 자기보다 더 커 보이는 달항아리 옆에 앉아 찍은 사진을 우연히 외국의 아트 잡지에서 처음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놀랐다.

“일본이나 중국의 기교적으로 완성도 높은 도자기에 비하면 백자는 어딘지 서툴러 보이고 대충대충 만들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비정형의 손맛이나 넉넉한 불륨감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특히 전 아무런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은 백자들만 찍었는데, 뭐랄까 금욕적인 그 맛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때부터 자비를 들여 외국에 흘러들어간 조선 백자들의 애틋한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여러 번 비행기를 탔다는 구본창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구본창의 달항아리 사진을 보면 한국미를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시대를 앞선 통찰의 글이 떠오른다. ‘조선 막사발에서 보듯 평범한 민중들이 평범한 채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썼던.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에 와서 이름 없는 도공들이 만든 조선의 막사발을 보고 깨달았던 것이다. 평범한 민중들의 투박한 손맛이나 장시간 노동의 집적으로 만든 겸손한 것들이 어떻게 미에 관한 가장 섬세한 눈을 지닌 이에게조차 ‘초월적인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게 할 수 있는지. 나는 그게 ‘코리안 시크’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평범함의 위대함과 초월적 아름다움. 나는 그게 바로 ‘코리안 시크’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어려워하는 평범한 백성’을 위해 임금이 만든 문자인 한글의 위대함이고, 전 세계에 흩어진 채 ‘그늘 속의 루저’로 사는 평범한 소년 소녀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하는 BTS의 승리이며, 남이든 북이든 한국민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세계 어디든 달려가 겸손하게 자신을 헌신하는 문재인의 영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도 멋진 일 아닌가? 자기 문화에 대한 존중감, 우월감이 오만할 정도로 높은 프랑스인들이 엘리제궁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초청해 만찬을 열며 판소리를 배우는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한복을 입고 참석하게 했다. 나로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례적인 일이다. 심지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판소리의 애절함’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아가 ‘한국 영화, 한국 건축, 한국 요리, 놀라운 조화 속에 충격적인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들을 사랑한다’는 말도 했다. 유네스코 사무총장 후원하에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프랑스 측의 지원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기야 요즘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는 학교와 수강생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나라 중 제일 앞에 프랑스가 있다고 들었다.

샤넬의 한글 트위드 재킷을 입은 김정숙 여사를 (심지어 내 눈에는 ‘달항아리’처럼 예뻤지만) 두고 ‘옷태’ 운운하며 비아냥거린 강용석이나 그와 비슷한 류여해 같은 부류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프렌치 시크의 정수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그게 설사 샤넬이라고 해도 돈만 내면 누구나 살 수 있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는 프랑스인들이 진정 높이 사는 ‘시크’가 아니다. 그보다는 프랑스와 한국의 대통령 부인들이 팔짱을 낀 채 10대 소녀들 같은 미소로 무장하고 루브르 박물관을 향해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 그러한 무르익은 지성에서 우러나오는 꾸미지 않은 삶의 태도가 바로 프랑스인들이 진정 사랑하는 ‘일레 시크(Il est chic)’다, 이 바보 멍충이들아.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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