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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를 아예 포기해버린 학생이 얼마나 될까? 우려할 정도로 많다. 정도가 제일 심한 과목이 수학이다. 고등학생은 수학 포기자가 60%나 된다. 수학 포기 학생을 뜻하는 ‘수포자’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수포자에게 수학 수업은 어떤 시간일까? 자거나 떠들거나 멍하니 있는 시간이다. 그러다가 교사에게 야단맞는 시간이다. 무의미한 시간이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에게 그 시간은 가치 있는 시간일까? 그렇지도 못하다. 그들에게 그 시간은 어수선하거나 느슨해서 지적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운 시간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수학을 포기한 학생과 수학을 잘하는 학생의 수업시수가 동일하다. 시수만 동일한 게 아니다. 교과서가 동일하다. 수업의 내용과 수준이 동일하다. 시험(평가) 또한 똑같다. 수포자는 수포자대로 괴롭고,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잘하는 학생대로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들을 함께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또 교사대로 힘든 상황이다. 왜 수포자여야만 할까? 포기하지 않고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포기한 상태에서 억지로 수업을 받느니 그 대신 다른 과목을 선택하면 안되는 것일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수포자들의 학교생활은 한결 행복해질 것이다. 지적 역량도 더 향상될 것이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더 높은 단계의 수업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의 지적 만족도는 현저히 높아질 것이다. 수학을 잘하지는 않지만 계속 공부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의 학습 단계에 맞는 수업을 받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학생들은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을 예로 들었지만 이것은 영어, 국어, 사회, 과학, 제2외국어 등 다른 과목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지금의 우리 학교에서는 어렵다. 하지만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선진국 학교에서는 웬만큼 다 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할 수 있을까? 대선후보들이 공약을 내놓았다.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문재인), ‘학점이수제도’(안철수), ‘수강신청제와 무학년제’(유승민), ‘선택과목 중심의 무학년제’(심상정).

위의 공약은 모두 동일한 것이다. 공교육을 망치는 적폐 중의 적폐인 현 학교내신제도와 그것에 바탕을 둔 획일적 교육과정을 완전히 개혁하는 공약이다. 이 공약은 수포자가 수학을, 영포자가 영어를 버릴 수 있게 하는 공약이다. 아니 수포자와 영포자를 아예 없애 버리는 공약이다. 이 공약이 제대로 실행되면 학생들은 더 이상 포기자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포기하는 자가 아니라 더 좋은 선택을 위해 그것을 버리는 자이다. 얼마나 좋은, 아니 얼마나 위대한 공약인가? 이 위대한 공약을 무려 4명의 대선후보가 동시에 내놓았다.

대학입시가 존재하는 한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수능 위주 대입전형을 보라. 모든 대학이 수학, 영어, 국어 성적을 전부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대학은 오히려 소수다. 대선후보들의 위대한 공약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은 대학입시가 아니다. 우리의 의지 부족일 뿐이다. 선진국이라고 대학입시가 없는 게 아니다. 그들 나름의 대학입시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꿈꾸는 것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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