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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이호준기자

ㆍ김호기 “비(非)신자유주의로 뭉친 진보연합 어떤가요”
ㆍ손호철 “민주당을 쪼개야 할텐데 가능할까요(웃음)”


 손호철 서강대 교수(오른쪽)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지난 14일 경향신문사 앞에서 대담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손호철 서강대교수(이하 손호철)=경향신문의 소통 시리즈는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란 화두를 생각하게 하는 데 공헌을 했다고 봅니다(웃음). 그렇지만 진보진영은 MB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소통을 잘했는지 자성할 것도 있습니다. 진보진영은 입은 두개이고 귀는 하나였지 않나, 남의 이야기를 잘 들었나 하는 자기 반성도 해야 합니다. 저 역시 진보진영 안에서도 소수파의 소수파로서, 소수자 측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얘기를 듣기보다 말을 많이 하면서 부작용을 낳은 거 같기도 합니다. 진보진영 전반의 문제를 보면, 소통으로 해결될 건 아니라고 보지만, 고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보진영 간 소통 문제는 3가지일 텐데, 진보진영과 자유주의적 개혁진영 간 문제, 즉 김대중·노무현 지지세력, 민주당과 급진 진보진영 간 문제가 있고요. 두 번째는 진보진영 내부 NL인 민노당, PD인 진보신당과 더 좌파적인 노동자의 힘 등 간의 정파간 문제, 셋째는 진보 진영과 일반대중의 문제가 있는데,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무엇이 다르고 같이할 수 있는 게 뭔지, ‘차이와 연대’를 구성할 핵심적 부분이 바로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소통이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 운영에서 과거 방식, 즉 법치를 앞세운 권위주의적 통치로 회귀하면서 소통 문제가 중요하게 부상했습니다. 지난해 봄 촛불집회의 핵심 요구도 소통이라고 봅니다. 선거나 투표로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 이른바 대리인인 정부가 주인으로 행세하려 하고 주인인 국민과 소통을 안 하려다 빚어진 문제죠.

손호철=노 대통령 때도 소통 문제는 심각했다고 봐요. 노무현 정부도 진보진영과 불통한 정황이 있습니다. 집권 초기 이라크 파병 문제로 갈등할 때 제가 민교협 공동의장이었고 이라크 파병반대 공동대표였어요. 여러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청와대 핵심 관계자와 만났는데, ‘여러분 죄송하다. 개혁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이상만 가지고 할 수 없다.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보는데 만나자마자 ‘알 만한 사람들이 돕지 않고 왜 반대하나. 왜 조중동같이 하나’라고 삿대질만 하는 거예요. 자신들은 개혁의 수호신이고 반대는 악이라는 오만한 태도가 불필요한 갈등을 키웠습니다. 2003년 즈음 1년에 노동자 8명이 죽음으로 저항했는데 노 대통령은 “민주화시대에 아직도 독재투쟁이냐”며 화부터 냈어요. 이런 태도가 이른바 자유주의적 정권과 진보진영의 골을 심하게 만들었어요.

김호기=노 정부가 처음에 탈권위를 추진하면서 국민참여수석실 같은 걸 만들었는데요. 적어도 일반시민, 시민사회와 소통 노력은 했다고 봐요. 물론 그늘도 컸죠. 자유주의 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크게 보면 민주화 세력이어서 최소한의 신뢰가 있었는데, 노 정부 출범 이후 서서히 약화되다가 집권 후반기에 깨졌다고 생각합니다. 개방 문제가 간단치는 않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신뢰에 금 가게 하는 결정적 계기였죠. 소통하려 했지만 결국 불통 정부로 귀결된 양면을 함께 봐야 하지 않을까요.

손호철=정책적 내용 문제와 소통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연정이나 한·미 FTA는 정치적·정책적 내용도 문제였지만 어떤 소통의 과정을 거쳤느냐도 문제죠. 순수 가정으로 대연정이나 FTA를 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해도 어떤 방식으로 국민을 설득했는가를 보면 잘못됐다는 거죠.

김호기=최근 논의되는 ‘반(反) 이명박연대’에는 두 가지 문제의식이 담겨 있어요. ‘민주 대 반민주’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가 그것이죠. 이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기 때문에 범진보진영 내 민주 대 반민주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요. 그러나 신자유주의, 반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라요. 신자유주의가 위기 또는 전환기인데, 민주당의 어떤 그룹은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다른 그룹은 반대합니다. 미디어법은 진보와 자유주의 세력이 연대합니다만, 쌍용차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에는 상당한 아쉬움이 있어요. 반 이명박 정부 연대에서 첨예하게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손호철=반 이명박연대 이름만 같이 걸었을 따름이지 소통을 통해서 반MB의 내용을 채우는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쌍용차, GM대우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해외매각한 겁니다. 민주당이 국민과 소통하려면, 잘못 팔아서 미안하다는 사과성명을 발표해야 한다고 봐요. 지난번 부평을 재보궐 선거도 보면, 진보진영이 반 이명박연대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미 FTA본부장에게 공천을 줬단 말이죠. 이러니 소통이 되겠어요.

김호기=노 정부나 열린우리당의 경우를 돌아보면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고 봐요. 대표적 사례가 천성산 터널공사인데, 자유주의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진영이나 시민단체가 너무 원칙적이고 유연성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갖습니다. 논란이 된 비정규법안을 주도했던 열린우리당이나 노 정부의 의도 자체는 선한 것이었죠. 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모든 걸 정략적으로 추진했던 건 아닙니다. 진정성을 갖고 추진한 이슈, 대안들도 있거든요. 부평을은 문제가 있었어요. 세계화와 함께 진보세력은 불가피하게 분화될 수밖에 없는데, 연대의 제1원칙이 소수세력에 대한 배려입니다. 지난해는 좌절했지만 주경복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사례나 올해 나름대로 연대에 성공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후보의 사례는 주목할 만한 것이죠.

손호철

손호철=김상곤 교육감 당선은 정당선거가 아니라서 가능했던 거예요. 또 다수파의 정치적 기계에 소수파 후보를 얹힌 게 특징이죠. 서울시장 후보에 노회찬 대표를 얹힌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러면 연대가 가능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죠. 다수파 양보가 필요한데 이게 한국 정치에서 가능할까요. 공은 민주당에 있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김호기=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세력의 공통분모도 많아요. 감세, 민영화, 정부 역할 감소에는 같이 반대하거든요. 개방에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진보세력이 대안적 세계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자유주의 세력은 현재 세계화를 적극 활용하자는 겁니다. 토론하면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고 봐요. 문제는 소통의 방법인데, 두 진영 모두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권위적 태도를 가진 거 같아요.

손호철=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진영 간의 소통을 통해 차이를 확인하고 연대틀을 가져야 하는데, 국회 내에 일종의 진보블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봅니다. 꼭 민주당내 좌파가 떨어져서 민노당, 진보신당과 합치는 식이 아니라, 합의할 수 있는 노선이나 신자유주의 태도 등에서 같이 할 수 있는 민주당내 진보세력과 바깥의 진보정당을 합쳐서 초정당적인 범진보블록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김호기=선거가 도래하기만 하면 정계개편을 모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분히 정략적인 문제의식도 담겼고요. 진보진영 연합이나 정계개편을 위해서는 가치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명박 정부 반대를 위한 정계개편이라면 일시적일 뿐이죠. 정계개편보다는 ‘경쟁적 연대’가 오히려 의미 있다고 봅니다. 정책블록을 형성하면서도 경쟁할 건 경쟁하는 걸 제도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유주의 세력은 사회적 약자 보호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고 생각한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은 자유주의 세력이 회피하고 있어요.

손호철=신자유주의를 본격화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파탄난 이상 김 전 대통령이 ‘그때는 불가피했는데, 문제점이 많다. 자기 성찰을 해서 새로운 정책을 모색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경쟁적 연대는 필요한데, 자꾸 정당 간 단위가 되거든요.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간 경쟁과 연대는 이뤄져 왔는데 한계가 있다고 봐요. 민주당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정당 단위를 넘어서야 합니다.

민노당 분열 문제도 워낙 다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어요. 톨레랑스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에 던진 홍세화씨가 이른바 종북주의, 패권주의 문제와 관련해 제일 먼저 ‘종교집단과 같이 할 수 없다’며 민노당을 탈당했어요. 관용과 소통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지요.

김호기=독일의 사회민주주의 학자 울리히 벡은 최근 서유럽 좌파의 흐름을 보호주의적 좌파, 개방주의적 좌파로 나누는데, 분화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분열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고 봐요. 더불어 진정한 톨레랑스 중 하나는 불관용을 고수하는 겁니다. 북한 문제를 파악하는 데 인권 문제를 포함해 객관적인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호기

손호철=진보진영 소통 문제 중 또 하나는 대화가 아니라 전부 독백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된 역사적 이유는 이해하지만 다시 한 번 소통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김호기=시민사회와의 소통이 활발치 않아요. 지난해 촛불은 단적인 사례인데, 시민이 직접 정부에 요구하는 일종의 직거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국민과의 소통 문제에서 한국 민주화, 사회운동의 한 사이클이 마감되는 것 같아요.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일반 시민이 겪는 어려움이 달라졌어요. 일자리 창출, 노후, 교육, 주거, 식품 안전, 건강 문제에 대해서 진보적 정치, 시민단체의 대안은 취약해요. 시민적·국민적 눈높이에서 진보적 대안을 만들고 설득하는 게 시민과의 소통 증대에 중요한 과제라고 봐요.

손호철=진보진영과 대중의 소통에서 취약한 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관념성인데, 대중에 다가가는 방식이 ‘너무 래디컬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우경화만 한 거예요. 하지만 급진성과 관념성은 달라요. 대중적 소통을 잘한 게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었어요. ‘아파트 반값’ 이래야 래디컬한 거죠. 교육, 일자리, 노후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래디컬한 대안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죠. 강의 설교식도 문제예요. 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괴로워하는지를 읽으려는 귀가 안 열린 거죠.

김호기=87년 이후 민주화시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개발독재 보수세력 헤게모니에 대해서 ‘민주화’라는 새로운 저항 헤게모니를 제시해 역사적 블록을 형성한 거죠. 그람시가 말했던, 헤게모니 고유의 정치적·지적·도덕적 지도력이 있었다고 봐요. 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일자리, 교육, 주거, 노후, 건강 문제 등 5대 불안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포함시킨 정치적·지적·도덕적 저항 헤게모니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안 만들어지면 보수세력의 실책으로 인해 권력을 잡아도 지난 자유주의 세력의 과오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큽니다. 정계개편이든 지방선거·총선·대선 대응이든 헤게모니의 재구성이 먼저 이뤄져야지, 정략적인 세력 재편만 모색되면 성공도 어렵고 성공해도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진보의 가치가 얼마나 실현될지 의심스럽습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민들레 연합’이라고 표현했는데요. 학술적 개념으로는 ‘비(非)신자유주의-민주 최대정치연합’이 모색돼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정치세력이 최대 다수의 정치연합을 구축할 때 보수 정치세력과 맞설 수 있다고 봅니다.

손호철=그것은 민주당의 해체를 필요로 한데 가능하겠어요(웃음).

김호기=민주당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명확히 입장 표명을 해야죠. 왜 ‘반’(反)이 아니고 ‘비(非)’냐면, 신자유주의도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장의 효율성 같은 장점도 있거든요. 온건한 의미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비’라고 써야지, 모든 걸 거부하자는 ‘반’은 설득력이 높지 않다고 봐요.

손호철=문제의식은 알겠는데, 노무현 정부도 우리도 ‘비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의 좋은 부분만 받아들인 거라고 하는 거죠. 비신자유주의가 아닌 걸 어떻게 증명할 거예요. 노 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가 구체적 내용 속에서 어떻게 달라졌는가는 판가름나겠죠. 김 교수 톤으로 봐선 민주당 해체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죠.

김호기=
노동운동에는 명암이 존재합니다. 일각에서 민주노총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는 것에는 동의 못합니다. 일자리는 가족의 모든 게 걸려 있는 거죠. 당장 아이가 대학에 가야하는데 양보가 쉽겠습니까. 임금이 높다고 지적하지만 중산층과 비교해 봐야죠. 노조의 불관용이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자본의 불관용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자본과 기업이 노조를 대화의 상대자로 받아들이고 양보했는지가 더 큰 문제죠. 물론 사회적 성격을 강화하지 못한 건 아쉽죠. 비정규직 등 조합원 밖 노동자를 끌어안는 걸 경시해온 거 같아요. 더불어 노동운동은 공익적 사회운동인데 여성, 환경 등 다른 시민운동과 연대를 활성화 못한 거 같아요.

손호철=
쌍용차 사태가 끝나자마자 기아차가 임금 올려달라고 파업을 따로 했습니다. 노선은 우파이고, 전투적 경제주의만 있는 거예요. 사회운동적 조합주의로 가는 게 아니고요. 노동운동의 핵심은 연대인데, 이게 없는 게 심각한 위기죠. 지역 사회와의 소통도 실패예요. 성공하려면, 지역사회와 결합하지 않으면 안 돼요. 미국의 LA, 샌디에이고를 80년대 레이건 컨트리라고 했어요. 레이건의 텃밭이었어요. 그런데 2000년에 갔더니 노동운동 핵심 지역이 됐어요. 켄 로치의 <빵과 장미>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당연히 질 것으로 여겼던 빌딩 청소 미화원들의 파업이 커뮤니티의 연대의 힘으로 성공했어요. 또 LA는 못사는 사람만 버스를 타거든요. 버스 기사들이 파업하면 제일 큰 피해자는 흑인 빈민층이에요. 우리나라 같으면, 출근 늦는다고 난리일 텐데, 같이 피켓 들고 데모하는 거예요. 투표권의 힘, 지역구의 투표권력 문제와도 연결되는 거예요. 한국 노동운동은 커뮤니티 전략도 없었고, 국민과의 소통에도 실패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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