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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교수

ㆍ소통기획위원 평가

소통이 인간의 본래적 특성이자 사회를 이루는 핵심 요소임은 오래 전부터 통찰돼 왔다. 우리 인간은 소통적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주장이나 소통의 수단인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주장이 그러하다. 후기 현대사회에 부여된 과제는 곤봉, 칼 또는 대포가 아니라 대화에 기반한 ‘대화 민주주의’에 있다는 앤서니 기든스의 주장도 다름아닌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소통이 갖는 의미가 이러함에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념과 세계관이 다른 개인 및 집단 사이는 물론 유사한 이념과 세계관을 갖는 개인 및 집단 사이에도 소통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직한 자화상이며, 그만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절차 및 방법 역시 더디게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상돈 교수와 윤창현 교수 사이의 소통을 내가 주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생각이 유사하다고 알려진 지식인 사이의, 그것도 나와는 이념적 성향이 다르다고 볼 수 있는 보수적 성향의 지식인 사이의 소통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개인적으로 이 교수와 윤 교수를 잘 알지는 못한다. 두 교수가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읽고 두어 번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이들과 만남의 전부다. 두 사람의 글과 말에서 나는 이 교수와 윤 교수 모두 합리적 보수주의, 굳이 구별하자면 이 교수는 ‘안보적 보수주의’에, 윤 교수는 ‘시장적 보수주의’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 흐름과 연관시켜 본다면, 이 교수는 정통 보수주의를, 윤 교수는 이른바 ‘뉴라이트’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담은 이러한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담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북한, 한국 현대사, 국가와 시장, 이명박 정부의 노선과 정책,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평가, 시민운동 등에 대해 두 사람 견해의 공집합과 여집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한국적 기준인 북한과 현대사에 대한 인식,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평가에 대해 두 사람은 생각을 같이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평가와 시민운동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견해를 다소 달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상돈 교수는 보수주의에 내재한 전통적 원칙을 중시하는 데 비해 윤창현 교수는 보수주의가 갖는 현실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주장하는 보수주의의 철학과 정책에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보수주의의 내용을 평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 소통의 방법과 결과를 검토하는 데 있다. 소통이 활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자기비판이 선행돼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보수주의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수적 관점에서 한국 현실을 분석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담은 한국 보수주의의 철학과 현실인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진보적 시각에서 굳이 한마디 덧붙인다면, 이 대담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실질적 대화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기도 했다.


원론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본디 다양한 생각들을 가진 집단들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소통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하지만 소통을 통한 통합을 일방적으로 강조할 필요는 없다. 진정한 통합은 서로의 양보를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를 합리적으로 논구하고 상호 승인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하려는 실질적 소통을 성취함으로써 가능한 법이다.

물론 소통은 민주주의의 방법이지 그 내용은 아니다. 방법이 아무리 그럴싸하더라도 내용을 채우지 못한다면 소통은 단지 수사학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제대로 된 내용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너무 취약하다는 데 있다. 방법과 내용은 기실 변증적 관계에 있는 것이며, 규범적으로 정당한 내용을 채우기 위해서는 절차적으로 타당한 방법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을 맺자. 민주화 시대의 한 순환이 마감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방법적 민주주의’로서의 소통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며, 이러한 소통의 미성숙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따라서 타협이 필요한 것은 의당 타협해야 하되, 논쟁할 것은 원칙을 갖고 이성적으로 그리고 치열하게 소통하고 또 논쟁하자. 소통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승인하고, 차이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소통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면목이지 않겠는가.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선진당 창당 참여 후 결별… 李대통령 비판 보수 논객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올리언스의 튤레인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해군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1983년부터 중앙대에 재직 중이다. 1995~2003년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을 지냈고, 동아일보·문화일보 등 보수언론에도 칼럼을 기고했다.

정권 교체 뒤 ‘보수의 보수’ 비판으로 ‘합리적 보수’의 대표 논객이 되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은 유명하다. 2007년 대선 당시 이회창 무소속 후보 선거 캠프에서 일했고, 지난해 초에는 자유선진당 창당기획단 멤버로도 참여했다. 이후 김혁규 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영입과 비례대표 선정 등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유선진당과 관계를 끊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대선때 이명박 캠프 활동… 뉴라이트 재단이사 등 지내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무역학과를 거쳐 2005년 서울시립대에 부임했다.

활발한 칼럼 기고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보수 진영의 대표적 논객으로 활약하고 있다. 보수단체의 결집과 행동을 강조하는 실천형 지식인이다. 뉴라이트재단 이사,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 정책자문단에 참여했다. 지난해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한 ‘이명박 정부 국정철학 공유·확산 워크숍’에 강사로 나서는 등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적극 지지하는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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