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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이로사기자 jomo@kyunghyang.com


ㆍ이상돈 “점퍼 입고 친서민 표방… 이미지만 있을뿐”

ㆍ윤창현 “비판수용한 변화… 포퓰리즘은 경계해야죠”


                              이상돈 중앙대 교수(왼쪽)와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경향신문에서 만나
                              한국의 보수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민기자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하 이상돈)=보수 유형을 분류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국가 안보를 중시하는 ‘안보 보수’가 있고요.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주창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보수’,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윤리 보수’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윤리 보수’는 우리나라에서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익·우파와 보수는 구분해야 할 것 같아요. 해방 이후 공산주의와 반공주의의 좌우대립이 있었지만, 그 당시 이승만 정부는 현재 흔히 말하는 보수주의 범주로 판단하면 잘 안 맞는 게 있습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이하 윤창현)=
북한에 대한 시각 때문에 더욱 분열되는 양상이 보입니다. 친북이냐 반북이냐가 보수냐 진보냐의 중요한 잣대입니다. 또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 엘리트들이 등장했죠.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가 출신 엘리트로서 효율성을 강조하고 경제에 방점을 둡니다. 이런 흐름을 실용보수라고 봅니다. 또한 반공적 가치를 지켜온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라고 부를 만한 강한 색채를 가진 진영도 있습니다.

그런데 2004년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납니다. 그 해 가을 서경석 목사님이 기독교사회책임을 출범시키고, 잇달아 이석연 현 법제처장이 ‘헌법을 수호하는 변호사모임’을,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자유주의연대를 출범시킵니다. 독립적으로 움직였는데 묘하게 시기가 일치한 것이죠. 당시는 열린우리당이 집권당이자 다수당이 된 이후였습니다. 기존의 보수적 흐름과 차별되는 새로운 아젠다 개발 흐름이 탄생하자 언론에서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뉴(New)라이트’라고 붙이는 바람에 그 전에 보수적인 운동을 한 분들은 ‘올드(Old)라이트’냐라는 질문이 나오게 되니까 조금 어색해졌습니다. ‘어나더 라이트(Another Right)’나 ‘얼터너티브 라이트(Alternative Right)’ 정도가 나을 수도 있는데요. 기존의 흐름, 기존 보수와 차별하려 했던 또 하나의 보수적 흐름이 실용보수와 손을 잡으면서 현 정권이 탄생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상돈=
지금 쟁점 중 하나는 어떤 경제체제로 가느냐인데요. 1960~70년대 우리나라는 자유주의 경제라고 볼 순 없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수출 위주 경제정책으로 성공했습니다. 80년대 들어와서는 더 자유주의적으로 전환했죠.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전형적인 진보주의적 케인스 정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정부 지출을 억제하고, 민간의 투자와 기술개발로 경제 발전을 이루려는 보수적·자유주의적 경제철학과는 상당히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윤교수님,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쓰시나요?(웃음) 이게 폄훼의 말인데, 우파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윤창현=신자유주의는 이름도 안 좋고요. ‘자유주의 2.0’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신자유주의의 키워드는 민영화, 작은 정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자유무역, 개방 등이죠. 사실 우리 경제는 개방을 통해 꽤 이익을 봅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서방 선진국들이 개도국이나 후진국 시장을 개방시키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 시장에 진입해 이익을 보거든요. 진보진영의 신자유주의 폄훼는 우리의 생존 기반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어색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자유주의에서 시장이 중요하지만 완벽한 시장은 없다고 봅니다. 시장과 정부를 놓고 가운데냐, 약간 시장 쪽이냐, 정부 쪽이냐일 뿐이죠. 정부 100, 시장 0은 공산주의죠. 현대 경제에서 시장에 100%의 비중이 주어지는 시장경제는 없다고 봅니다. 경제위기로 인해 전체적인 비중이 정부 쪽으로 일부 옮겨간 것 같은데 위기 이후에는 다시 시장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봐요. 케인스적 관점도 정부의 비중이 약간 높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보아야지요.


이상돈=불분명한 용어들이 있어요. 미국이나 진보세력이 천민자본주의, 투기자본주의 같은 말을 퍼뜨렸어요. 그런데 미국 경제위기의 큰 원인이 주택 가격인데, 클린턴 대통령 때 금융기관에 대해 일반 서민이 집을 살 수 있게 대출을 해주라고 했어요.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권 때 돈 있는 사람들이 집을 추가로 사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역사의 아이러니예요. 미국처럼 집을 산 사람이 파산한 사태는 없었는데, 그 사람들이 돈을 너무 많이 벌었잖아요(웃음).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불행은 보수정권, 시장경제 탓인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이런 면이 있는 거죠. 사회 양극화 문제도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그 책임이 다 과거의 보수, 시장경제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지요. 진보진영에서는 양극화를 자본주의의 필수불가결한 부작용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진 않습니다.


윤창현=양극화는 사실 노무현 대통령 때 훨씬 더 많이 심화됐습니다. 양극화는 소득분포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산처럼 가운데가 볼록하다가 볼록한 부분이 사라지면서 중간이 평평해지는 고원형으로 가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지금 중산층이 50%는 됩니다. 상대적으로 가운데가 강합니다. 아령 모양으로 양 극단이 볼록한 건 아니지요. 대략 아래쪽이 3, 중간이 5, 위쪽이 2 정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양극화란 말은 극단적인 표현이지요. ‘중산층 비중 축소’같이 덜 자극적인 단어를 썼으면 좋겠어요.

이상돈=양극화란 말을 보면, 진보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휘를 조작한 측면이 있습니다. 80~90년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조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세상을 낙관적으로 볼 때는 중산층이라고 보고, 불안하게 보면 서민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의 건전한 성장밖엔 답이 없습니다. 경제 성장의 근본은 저축·투자·기술개발입니다.

윤창현=
MB노믹스의 핵심 공약이 흔들린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미국발 전 세계적 경제위기가 우리 책임이 아닌 부분은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방화가 되었고 불이 우리 쪽으로 번진 겁니다. 위기가 오면 제일 어려워지는 계층이 경제적 약자이고, 이에 따라 약자 보호를 위한 친서민 정책도 나온 거죠. 현재 정부 정책 전반을 위기 극복 패키지로 보고 싶고 이 정책 패키지가 그런대로 잘 작동해서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도 여러 면을 보아야 합니다. 토목공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환경개선적 요소도 있습니다. 강바닥에 퇴적물이 많이 쌓여 유속이 느려지고 강 주변 환경이 나빠진 것을 개선하자는 거죠. 국책사업과 환경보호를 같이 하자는 겁니다. 세금 문제는 글로벌 스탠더드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홍콩, 싱가포르 같은 경쟁지역이 모두 법인세를 내리는 추세예요. 외국법인이 많이 들어와서 국내에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법인세를 내리면 부자감세라고 비판합니다. 현 정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있습니다. 옮아온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지만, 물은 잘 뿌리고 있다고 봅니다(웃음).


이상돈=
이전 정권에서의 종부세는 징벌적인 부당한 세금이었죠. 다만 부동산·주택 세금이 전반적으로 낮습니다. 승용차 세금보다 같거나 낮은데, 징벌적인 게 아니라면, 현실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4대강은 생각이 다릅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상수원 규제부터 고도 정수, 광역상수도, 하천 정비 등 거의 모든 사업을 해왔어요. 김대중 대통령 때 동강댐 프로젝트를 백지화한 뒤 9년 계획의 수자원 확보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지금 종결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엉뚱하게 본류에 댐을 주렁주렁 세워서 물을 공급하자는 희한한 발상이 나왔습니다. 하천정비도 모든 걸 판박이로 만드는 ‘컵케이크 개발’이 되기 쉬워요. 4대강 사업이 그렇게 시급한가요? 고용, 기술개발 이득도 전혀 없습니다. 친서민 표방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친서민’이라는 아젠다에 휩쓸리는 건 줏대가 없어서입니다. 원칙에 충실한 대통령, 정권이 되어야 합니다. 친서민은 겉 다르고 속 다른 포퓰리즘이 되기 쉽습니다. 또 정권이 도덕적 취약성을 가리기 위해 친서민을 내세운 거 같아요.


윤창현=작년 촛불집회는 현 정부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억울한 겁니다. 광우병 쇠고기 먹여서 국민들을 다 죽이자는 식은 절대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살인정권 말이 나오고 정권 위협 수준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현 정부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정치적 타살’이란 말도 나왔죠. 노 전 대통령에게 서민과 약자를 위해 살다 간 순교자라는 이미지가 붙여지면서 그러면 ‘MB는 뭐냐’는 식으로 진도가 나가버린 거죠. 일련의 사태 속에서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을 때 스탠스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원칙이 중요하지만 비판이나 반대가 심하면 그 자체를 수용할 필요도 있지 않나 봅니다. 그야말로 소통이라 볼 수도 있지요. 중도실용을 원칙 훼손이라고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친서민이라는 말은 결국 경제적 약자를 돕자는 말입니다. 물론 중도실용이 얼치기 포퓰리즘으로 흐르지 않고, 원하는 중용의 미덕을 살릴 수 있도록 철학적·이론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상돈=이명박 대통령이 서민행보할 때 재래시장에 가서 ‘마트를 못 들어오게 하면 정부가 헌법소원에서 패한다’는 말을 했어요. 정치적 판단이 부족한, 대표적 실언입니다. 자유경제 보수정권이라 해도 대기업들의 무한한 시장 잠식에 정부가 관여할 필요는 있습니다. 대형 마트 때문에 재래시장이 죽어나가는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자유경제에 배치되지 않습니다. 점퍼 입고 장바닥을 누비는 게 친서민 정책이 아니잖아요(웃음). 콘텐츠는 없고 이미지만 있을 뿐입니다.

윤창현=영원히 대형 마트가 들어오면 안 된다고 얘기할 순 없죠. 다만 지금이 적절치 않은 시점이라는 데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경제위기, 마이너스 성장 위기에서 약자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다른 업종 전환 기회가 있는 호황기에 그런 움직임이 있으면 모르지만, 지금은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이상돈=우리가 자본주의 원칙을 지키려면 화이트칼라 기업범죄에 단호해야 합니다. 현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 이완돼 있는데,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친자본 신문인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도 사설에선 자유주의 경제를 강조하지만 월가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도 많습니다. 자본주의가 살기 위해선 자본주의 범죄에 단호하게 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통큰 사면을 하면서 잘못된 시그널을 줬습니다. 대북정책 문제를 보면, 지난 대선 때는 좀 온건했다가 나중엔 강경으로 갔어요. 온탕냉탕입니다. 정책을 갖고 주도적 입장에서 해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흘러온 것 같습니다. 비핵 개방 기조 자체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부정적·비판적 입장입니다. 북한 정권에 당근을 준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입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대등하다고 생각하고, 북한을 단지 같은 민족으로만 보는 시각은 낭만적이고 위험합니다.

윤창현=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관은 낭만적 성격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권 유지 차원에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지원을 받아 결국 핵개발을 했습니다. 두 정부는 심하게 표현하면 뒤통수를 맞은 거죠. 형제니까 도와주고 빈곤·기아에서 벗어나게 해주자는 기본적 원조 기조는 동의합니다만, 이용당하는 수준으로 가선 안 됩니다. 비핵·개방·3000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습니다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상호주의, 정권 대 정권으로서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스탠스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교환의 이행 단계를 지나면 새로운 관계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돈=거슬러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 때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전에도 남북 정상회담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과거부터 정권 인기를 높이려다 자충수를 둔 측면이 있는 거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말에 결국 회담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뭔가 업적을 남기기 위해 그런 걸 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또 하나의 포퓰리즘으로 북한 정권에 정당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남북관계가 우리 정부 의사와 무관하게 경색돼 있는데, 그걸 타개하려고 또 남북 정상회담을 해서 결국은 ‘햇볕 3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죠. 보수의 소통도 문제입니다. 세미나 같은 데를 가보면 진보진영은 시민단체 활동가와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보수 쪽에선 그게 어렵습니다. 재야에 있을 때는 뭉치더니 집권하고 나서 흩어지지 않습니까. 보수의 분화 현상이 있는 거죠. 진보냐 보수냐 문제보다 극단적 진보나 보수가 더 우려스럽습니다. 과격 노사분규, 과격 행태들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윤창현=‘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거꾸로인 것 같아요. 진보정권이 10년간 집권하면서 많은 인사들이 부패에 연루됐습니다. 그 사이 보수진영은 많이 분열됐습니다. 현 정권에 대한 시각도 다르고요. 건전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보수진영이 분열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수 내 소통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시민운동이 그동안 진보진영 위주였는데, 이제 보수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지고 흐름이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보수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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