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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5)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上) 파생상품-금융수학 시뮬레이션
송윤경기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의 특징은 위험이라도 돈받고 팔아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을 사고 파는 행위는 위험은 측정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경향신문은 파생상품 평가에 쓰이는 확률 모형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적용, 위험을 계산해 봤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은 몬테카를로 카지노에서 벌이는 주사위 게임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시뮬레이션 적용은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박사과정 황근호씨의 도움을 받았다.

1. 위험맞춤형 상품, 부채담보부증권(CDO) 만들기

돈 빌린 사람의 과거 기록 수집




시뮬레이션을 위해 ㄱ은행이 집을 담보로 저소득층 100명에게 1억원씩 빌려줬다고 가정했다. 돈을 빌린 사람들은 원금과 이자를 5년 간 나누어 갚기로 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차용증서를 작성했다고 상정했다. ㄱ은행이 이 차용증서 묶음을 투자은행에 팔면, 투자은행은 이 차용증서 묶음을 담보로 파생상품(CDO)을 만들 수 있다.

이제 차용증서 묶음을 사들인 투자은행이 이 묶음으로 어떻게 파생상품 CDO를 만드는지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도 계산이다. 이들 100명이 5년 동안 원리금을 얼마나 갚을지를 예측해야 한다. 이 예측을 위해서는 돈을 빌려간 사람들의 과거 대출기록, 소득, 주거지, 주택유형 등 각종 정보가 필요하다. 이 정보를 다 얻었다고 치자.

이 정보들을 토대로 돈을 빌려간 사람이 1년 내에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확률(연간 부도율),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떼어먹을 경우 집을 경매에 부쳐 원리금을 돌려받을 있는 비율(회수율)을 구해야 한다.

또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얼마나 동시 다발적으로 돈을 떼어먹는지를 보여주는 ‘부도 상관계수’가 필요하다. 상관계수란 돈 빌린 이가 돈을 못 갚을 경우, 다른 대출자도 똑같이 갚지 않을 확률에 관한 값이다. 상관계수가 높다는 것은 다같이 갚거나, 다같이 못 갚을 확률이 높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상관계수가 낮다는 것은 돈빌린 이들이 갚거나 안갚는 등 서로 반대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큰 것을 뜻한다.

세가지 값을 구하는 과정은 간단한 동시에 복잡하다. 100명의 정보를 수학모델에 따라 컴퓨터에 입력하고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수학모델 속에서 계산이 이뤄지는 과정은 금융공학 전공자들도 짧은 시간 내에 설명하길 꺼릴 정도로 대단히 복잡하다.

그러나 핵심은 ‘과거 유사 조건을 가진 대출자들의 행동’을 바탕으로 한 확률 계산이다.




경우의 수 10만개 구하기

이번 시뮬레이션에서는 돈을 빌려간 이들에 대한 정보가 없는 관계로, 다음과 같이 임의로 정해 놓았다. 즉 1년 이내에 돈을 빌려간 이들이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확률인 연 부도율은 5%로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했고, 상관계수는 10%라고 봤다. 상관계수 10%는 한 사람이 돈을 못갚을 때 나머지도 동시에 못 갚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리 높지 않고, 역시 돈을 갚을 때 나머지도 동시에 갚을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은 상태이다.

또한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돈 빌린 사람의 집을 팔아 원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금액의 비율은 0%로 가정했다. 즉 빌려준 돈 1억원을 전부 손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확률의 값을 정하고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세 가지의 확률을 바탕으로 100개의 차용증서 묶음을 갖고 있을 때 얼마나 손실을 볼 수 있는지 ‘경우의 수’를 구하는 것이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은 빠른 시간 안에 대량으로 ‘경우의 수’를 구해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여기서는 ‘경우의 수’ 10만개를 구해 보기로 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그림-1>과 같은 그래프가 나타났다. 이 그래프는 X축에 해당하는 돈을 잃는 ‘상황’이 10만번 중에 몇 번이나 나왔는지(Y축)를 보여준다. 100억원을 모두 못 받는 경우는 0번 나왔고, 99억원을 못 받는 경우는 0번…70억원을 못 받는 경우는 1번…18억원을 못받는 경우는 4000번…전혀 떼이지 않고 모두 받을 확률은 1번 나왔다. 즉 이 그래프는 이 차용증서 묶음의 위험도를 보여준다.

위험도 다른 파생상품 만들기

이렇게 위험도가 드러났으니 이제부터는 위험도가 다른 파생상품들을 만들 차례다.

가장 안전한 파생상품부터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최악의 ‘경우의 수’ 1000개(10만개 중 1%)를 가려냈다. 최악의 상황 1000가지를 살펴보니, 잃는 돈은 최소 51억원부터 최대 100억원까지였다. 그래프에서 가장 진하게 표시된 부분이 최악의 경우 1000가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를 뒤집어서 생각하면 9만9000가지의 ‘경우의 수’(99%) 내에서는 차용증서 묶음의 손실이 전체 100억원 가운데 51억원을 초과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즉 차용증서 묶음 전체에 손실이 나더라도 99%내에서 49억원은 안전한 것이다.

ㄱ은행은 CDO 증서를 만들어 ‘원금은 49억원이며 5년 만기로 원금과 이자를 받는다’고 쓰고, ‘연부도율 5%, 상관계수 10%, 회수율 0%일 때 전체 차용증서 묶음에 손실이 생기더라도 이 증서소유자는 약속한 만큼의 돈을 99%의 확률로 받을 수 있다’라는 내용을 붙인다. 그러면 이 파생상품은 신용평가회사의 검증을 거쳐 AAA 등급이 매겨질 가능성이 크다.


피라미드형으로 위험 수준을 구분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묶음 가운데 다시 최악의 ‘경우의 수’를 뽑아내 증서를 쓰고 등급을 받아낸다. 물론 안전성과 등급은 점차 낮아진다. 이렇게 해 보니, 100억원 가운데 49억원어치를 최상급으로 만들어 팔 수 있었다. 이 경우 원리금 보전 확률이 99%이다. 그 다음으로 위험도가 낮은 상품은 9억원어치를 팔 수 있다. 이 경우 원리금 보전 확률은 95%로 낮아진다. 위험도가 더 낮은 상품은 8억원어치(원금보전확률 85%)다. 나머지 34억원어치는 원금보전확률을 따로 계산할 수 없다. 가장 위험한 상품인 것이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상품도 ‘기대손실액’을 근거로 안전성을 따질 수는 있다. 기대손실액이란 원리금 손실 ‘경우의 수’를 등급별로 합산해 평균을 낸 것이다. 마지막 등급의 34억원어치의 기대손실액은 21억6400만원이었다. 최상등급 기대손실액은 500만원이었고 그 아래 등급은 차례로 2300만원, 7200만원이었다.

이렇게 쪼갠 파생상품은 차용증서 묶음에서 손실이 나면 가장 아래 등급부터 손실 금액을 흡수하게 되는 구조가 된다. 대신 안전성이 낮은 등급의 상품들은 위험이 큰 만큼 이자를 듬뿍 얹어준다. 상품별로 이자를 얼마나 얹어줘야 하는지도 수학모델을 통해 구한다. 투자자들은 위험도와 수익률을 고려하면서 자기 입맛에 따라 상품을 골라 살 수 있다.

이를테면 마지막 등급과 같이 가장 위험한 상품들은 차용증서 전체 묶음의 손실을 그대로 흡수한다. 그러나 차용증서 전체 묶음에서 손실이 별로 생기지 않을 경우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잘 팔리는 위험상품은 위험이 준다?

이같은 고위험 상품은 별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 같지만 교토대 명예교수인 모토야마 요시히코에 따르면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그는 저서 <금융권력>을 통해 “종류가 많고 잘 팔리는 정크본드(위험도가 매우 높은 상품)는 그 위험도가 AAA등급과 같은 정도로 작아진다고 하는 히크만의 투자이론이 투자가들로 하여금 ‘고위험·고보상’의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주로 고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들이 이런 상품에 많이 투자했다.

위험도 계산의 핵심은 ‘가정의 현실성’이다. 이 모든 계산은 맨 처음 구했던 ‘연간 부도율, 상관관계가 현실에 부합한다면’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연간 부도율과 상관관계가 가정과 다르게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림-2>는 연간 부도율을 5%가 아닌 10%로, 상관관계를 10%가 아닌 30%로 놓고 다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다. 한눈에 봐도 앞서 구한 <그림-1>과 차이가 크다. 최상위 등급 49억원어치는 99%였던 원금보전확률이 67.7%로 떨어졌다. AAA 등급은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 그 아래 등급도 원금보전확률은 95%에서 54.8%로, 그 다음 등급은 85%에서 42.3%로 떨어졌다. 이것이 각 투자은행들이 처한 ‘모기지 파생상품의 부실화’ 원리다.

2. 위험 제거용 상품, 신용부도스와프(CDS) 만들기

‘동전의 양면’을 분리하는 기술 개발

앞서 만든 CDO 상품에서 위험도와 수익률은 동전의 양면이다. 위험이 크면 수익도 크다. 그러나 CDS는 이 ‘동전의 양면’을 떼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파생상품이다. ‘당신이 갖고 있는 금융 상품이 만약 부실화할 경우 보상해줄 테니 대신 내게 정기적으로 수수료를 내라’는 것이 CDS 상품의 핵심 아이디어다. 1998년 투자은행 JP모건의 젊은 금융공학자가 고안해냈다.

만약 CDS 발행자가 혹시라도 대규모 보상요구를 받게 된다면?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이런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CDS의 대상이 되는 파생상품이 손실이 날 가능성을 계산해 그보다 웃돈을 얹어 수수료를 올려 받으면 수익이 생긴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투자은행들이 CDS를 발행할 때 어떤 계산을 했는지 그 원리를 적용해 봤다. 앞에서 제시한 대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은행은 100개의 차용증서를 통째로 담보로 잡아 하나의 증서를 만들어 팔 수 있다. 이것이 모기지담보채권(MBS)다. 이 파생상품을 사들인 은행이 이 상품에 담겨있는 위험에 대한 일종의 보험을 ㄴ은행에게 들려고 한다. 이때의 보험상품이 CDS다.


경우의 수에 바탕한 계산





그러면 ㄴ은행은 어떤 계산으로 이 상품의 위험도를 평가해 CDS를 발행할까.

먼저 채권의 바탕이 되는 차용증서 묶음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연간부도율 5%, 상관관계 10% 등 앞에서와 같은 조건이라고 해두자. 회수율은 80%로 상정했다. 이 세 가지 값을 바탕으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그림-3>과 같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경우의 수 10만개를 구했다.

5년 동안 손실을 전혀보지 않는 경우는 0번, 손실을 2억원 정도 보는 경우는 1800번…손실을 10억원 보는 경우는 200번…손실을 20억원 보는 경우는 0번 나왔다. 회수율을 80%로 맞췄으므로, 최대 손실은 전체의 20%를 넘지 않았다. 즉 손실이 20억을 넘어가는 ‘경우의 수’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경우의 수 10만개를 놓고 손실액 평균을 따져보니 약 4억5000만원이었다. ㄴ은행은 이 예상 손실액 평균을 근거로 ‘우리가 유사시 줘야 할 돈은 4억5000만원 수준이니까 채권 만기일까지 이보다 더 받아내면 우리가 이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ㄴ은행이 조심성이 많으면 예상 손실액을 평균보다 더 높여서 잡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의 수’ 1000개(1%)를 살펴보니 12억원부터 20억원까지 잃을 수 있었다. ㄷ은행은 이 것을 기준으로 해서 예상가능 손실액을 12억원으로 잡고, ㄴ은행으로부터 만기 5년 내 받아야할 보험료를 12억원 이상으로 살짝 올려 잡으면 된다. 이렇게 되면 ㄴ은행은 12억~20억원 손실을 보상해줄 가능성 1%를 뺀 99%의 가능성으로 대비를 철저히 한 셈이다. 물론 세 가지 확률값, 즉 연간부도율 5%, 회수율 80%, 상관관계 10% 아래서의 얘기다.


가정은 실제와 다르다는 평범한 진리

그러나 가정과 달리 실제로는 연부도율이 10%, 회수율이 50%, 상관계수가 30%로 나타났다고 보자. 이 경우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그림-4>와 같았다.

앞서 ㄴ은행은 99%의 가능성 내에서는 이 MBS의 12억원 이상 손실에 대해 보상해 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MBS가 12억원 이상 손실볼 확률은 이 경우 절반을 넘었다.

만약 ㄴ은행이 다른 은행과 CDS계약을 할 때 실제 손실이 난 경우에만 그만큼을 보전해주기로 한 것이 아니라, 부도율이 일정하게 높아질 때, 혹은 그에 따라 등급이 낮아질 때도 이와 연동해 보상액을 지급하기로 했다면, ㄴ은행은 큰 손실을 보게 된다.

CDS사업을 한 AIG가 MBS와 같은 파생상품의 손실률이 높아지면서 투자은행들로부터 대규모 ‘보상액’ 지급 요청에 시달린 것은 바로 이런 원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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