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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 교수


ㆍ금융위기 주요 원인 - 레버리지(차입) 효과


금융에 도입된 지렛대 원리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적당한 지렛대만 있으면 지구라도 들어 올리겠다”고 했다. 작은 힘을 큰 힘으로 바꾸는 막대 장치(지렛대, lever)는 고대 이집트에서 거대한 돌을 옮겨 피라미드를 쌓게 했다. 지렛대의 원리는 경제나 금융에서도 관철된다.

어떤 사람이 100만원으로 주식을 샀다고 하자. 한 달 후 주가가 20% 상승해 보유한 주식을 팔아 현금 120만원을 얻었다면, 투자수익률은 20%가 된다. 만약 이 사람이 자신의 돈 100만원에 더해 은행으로부터 400만원을 연리 12%의 금리로 빌린 뒤 총 500만원으로 같은 주식에 투자를 했다면? 한 달 후 주식을 처분하면 600만원의 현금이 들어온다. 은행에서 빌린 돈 400만원과 한 달 동안의 이자 4만원을 갚고 나면 수중에 196만원이 남는다. 즉 투자수익률이 96%로 올라간다. 경제학자들은 이처럼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린 돈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의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것을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라고 부르며, 자기자본 대비 총투자금액을 ‘레버리지 비율’이라고 정의한다.


차입의 이익은 가격 상승 때만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레버리지가 이익을 크게 늘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투자한 자산의 가격이 상승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레버리지에는 손실을 키울 위험도 수반한다. 주가가 20% 떨어지는 상황을 상정해 보자. 자기 돈 100만원만으로 투자를 할 경우에는 원금이 80만원으로 줄어 투자수익률은 마이너스 20%가 되고, 20만원만 손해를 본다. 그러나 레버리지 비율이 5일 때에는 손해가 훨씬 커진다. 총투자금 500만원이 400만원으로 줄어들고, 은행에 원리금 404만원을 갚기 위해서는 투자원금을 모두 날리고도 4만원을 더 가져와야 한다.

전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들로 금융사들의 탐욕, 감독기구의 무능,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투명한 신용파생상품, 금융사들의 도박행위를 부추긴 증권화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전모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레버리지에 주목해야 한다.


차입기계로 변한 월가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유례없는 강세장이 연출됐고, 금융사들도 고수익을 누렸다. 하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실물경제가 취약해졌다. 그럼에도 미국의 투자은행은 오히려 CDO와 CDS를 새 주력상품으로 삼아 사업 확장을 벌였다. 이들은 해당 상품의 중개를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 CDO와 CDS를 사들여 자신의 고유계정에 보유하는 한편 수수료 수입 이외에 투자 수입까지 노리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들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길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차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부채기계’가 되었다.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400억달러의 자기자본을 종잣돈 삼아 자산을 1조1000억달러까지 부풀렸고, 차입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는 300억달러의 자기자본으로 1조달러의 자산을 만들어냈다. 투자은행들의 레버리지 비율이 30~40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경기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레버리지의 자기강화적 속성 때문이었다. 투자은행들이 보유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담보로 잡힌 자산과 같은 종류의 증권들을 추가로 매입하게 되면, 이들 증권의 가격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가격이 올라간 만큼 그 가치가 커진 보유 자산을 담보로 다시 차입을 해 더 많은 CDO와 CDS를 매입해 수익을 더욱 키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거품은 부풀어 올랐고, 더 많은 CDO와 CDS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음악은 언젠가 멈춘다

한동안은 모두가 좋았다. 사람들은 목돈 없이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고 건설회사는 주택판매를 늘릴 수 있었다. 또 여러 금융기관들은 저금리 시대임에도 높은 수익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모두가 증권화와 레버리지의 춤판에 동참한 셈이다. 문제는 음악이 언젠가는 멈춘다는 데 있었다. 일단 음악이 멈추면 과도한 신용을 낳았던 바로 그 메커니즘이 불어난 신용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정반대의 과정, 곧 역레버리지(deleveraging)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수요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을 때도 있다. 특히 시장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진 경우가 그렇다. 사람들이 가격 하락을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란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가격 하락은 매수를 늘리는 대신, 오히려 매도의 증가로 연결된다. 투자은행의 경우에도 보유한 자산들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레버리지 축소 압력 속에서 보유 자산을 매각하게 된다. 이는 유가증권의 가격을 낮추고 보유 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려 추가 매도를 낳는다.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호전되기 전까지는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산과 부채 사이 불일치가 가장 큰 문제

많은 이들의 짐작과 달리 투자은행의 파산과 이번에 문제가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직접적 관련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에 대한 전체 위험노출 비중은 보험사 23%, 상업은행 18%, 헤지펀드 17%의 순이었으며, 투자은행은 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파산은 환매조건부채권(Repo)이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같은 단기부채를 통해 저리로 조달한 과도한 레버리지 자금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약속하는 장기자산의 보유비중을 높였던 이들 고유의 사업 모델에서 설명될 필요가 있다.

대차대조표의 자산 측면(CDO 투자)보다는 부채 측면(과다한 차입과 단기성 채무), 그리고 자산과 부채 사이의 만기 불일치가 가장 큰 문제였다. 과도한 차입이나 만기불일치는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 부채의 만기가 순식간에 돌아오지만, 기존의 계약이 순조롭게 갱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버리지 비율이 30을 넘는 투자은행들의 경우 보유자산의 가치 하락과 주 고객인 헤지펀드의 파산 속에서 지급능력에 대한 신뢰에 손상이 가기 시작하면, 하루에서 1주일 간격으로 부채의 만기를 연장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게 된다.




저금리가 과도한 차입 유인

과도한 레버리지를 가능케 한 1차적 요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낮았던 저금리 기조를 들 수 있다. 이는 오랜 기간 인플레이션율이 낮았고 경제도 안정돼 있어 투자자들의 리스크 평가 또한 낮아졌기 때문이었지만,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오랫동안 너무 낮게 유지한 결과이기도 했다. 헤지펀드와 투자은행은 저금리 덕에 더 쉽게 차입을 했으며, 이렇게 조달한 돈은 부채의 증권화와 신용파생상품의 증가로 이어졌다. 또 늘어난 신용파생상품은 위험자산의 신용위험을 더 낮추고 결국에는 차입을 한층 키우는 눈덩이 효과를 낳았다.

신용파생상품의 등장으로 신용위험이 분산됨에 따라 다시 위험의 값이 낮아졌고, 그 결과 중앙은행이 1%였던 정책금리를 2004년부터 5.25%로까지 올렸음에도 국채나 회사채의 수익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차입행태를 더욱 부추겼기 때문이다. 특히 헤지펀드 등 투자자들은 투자자산의 낮은 수익률을 높은 자기자본 수익률로 전환하기 위해 레버리지 비율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부채의 증권화는 잘못된 금융감독정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신용파생상품의 발달로 금융시스템의 위험관리 능력이 커졌다고 믿었던 규제당국은 2004년 들어 대형 투자은행의 부채총액을 순자본의 15배 이내로 제한하던 기존 적용을 면제해 줌으로써 레버리지를 키울 합법적 통로를 열어주었다.


차입이 아니라, 나쁜 차입이 문제

과도한 레버리지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면 레버리지 자체를 막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레버리지란 금융의 본질적 속성이며,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은 레버리지를 활용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나쁜 레버리지가 좋은 레버리지를 몰아내고 레버리지가 과도하게 확대되는 상황이다.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통한 현금 흐름이 개연성 있게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차입이 좋은 레버리지라면, 생산적 활동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되는 차입은 나쁜 레버리지이다. 좋은 레버리지와 나쁜 레버리지를 사전에 가려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옥석을 가려내 나쁜 레버리지에 대해서는 크게 제한을 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 금융이 지나치게 번성해 실물경제를 압도하게 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난 세기 케인스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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