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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환경운동을 업으로 삼는 필자에게 몇 가지 바람이 있다. 우울과 불면의 밤은 지나고 환한 빛 찬란한 아침이 오기를. 2018년 새해 첫날에 희망한다. 굴뚝에 오른 노동자와 모든 양심수의 가슴에도 꽃이 피기를, 70년 전 제주 4·3과 태평양전쟁의 희생자 이름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세상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의와 생태의 두 축은 언제나 함께 발전하거나 퇴보한다고 믿는다. 환경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삶이 없기를. 여성과 사회적 약자라서, 개발이 덜 된 야생이라서, 제3세계 착취를 위해서 그들의 삶과 생명을 마음대로 찢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난 1년, 숱한 환경 불평등과 고통을 마주했다. 경제와 안보 논리, 개발의 명분 때문이었다. 환경과 생명은 늘 뒷전이었다. 과학기술의 맹신으로 사회 정의를 설명하는 천박함이 지배했다. 40년간 평균 1만2000개의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의 건강은 위협받았다. 일상에 노출된 화학물질의 위해성은 위험한 비밀이다. 매일 먹는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심지어 1962년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경고한 DDT가 검출되었다. 2016년 경주, 2017년 포항을 뒤흔든 지진의 진폭 속에도 핵발전소 안전 신화는 여전히 굳건하다. 평택기지로 이전할 예정인 용산과 부평 미군기지는 폭발 직전의 거대한 뇌관이다. 유해 독성물질과 폐기물의 취급, 오염 처리 기록, 오염원 정화 책임은 암흑 속이다.

기원전 350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기술과 탐구, 또 모든 행동과 추구는 어떤 선을 목표로 삼는 것” “최고선이나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썼다. 우리는 과연 행복한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지, 미래 세대에게 정의로운지 질문한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통합, 안정, 아름다움, 신보다 많은 사랑이 있는가. 이제라도 수문을 활짝 열고, 강의 흐름을 상상하며 재자연화하자.

몇 년 전, 한겨레신문 남종영 기자는 국내 최초 오랑우탄 거울실험을 통해 동물의 자의식을 확인하면서, “이제 비인간인격체라고 부릅시다”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는 일본 다이지의 돌고래 집단 학살과 포획을 정당화하는 ‘아쿠아리움 돌고래쇼’를 즐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75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웅담을 목적으로 케이지에서 사육된다. 문득 생각난다. 제주 함덕바다에 방류된 포획 돌고래 ‘금등’과 ‘대포’는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올해는 꼭 친구들과 합류하길. 사육곰을 위한 보호센터가 만들어지길. 백령도 점박이물범도, 제주바다 연산호도 제 모습대로 살아가길.

2018년, 몇 가지는 단단히 매듭을 풀자. 단 3일의 활강경기를 위해 나무 10만그루를 베어낸 평창 동계올림픽 톱질의 야만, “빨랫줄 하나 치는 게 뭔 대수야”라고 말하던 설악산 케이블카 개발의 탐욕, 굽이굽이 흐르던 4대강을 16개의 댐으로 멈춘 위정자의 만행, 흑산도 공항과 제주 제2공항을 기어이 추진하려는 정치인의 망령. 이제 정의롭지 않은 문을 닫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 문을 닫아야 삶의 공존이 열리고 깊은 우울과 불면에서도 헤어날 수 있다. 영국의 한 극작가의 말처럼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2018년 첫날을 열며 바란다. ‘해도 안 된다’는 절망을 주지 말자. ‘한 번쯤 살아볼 삶이다’라는 희망을 주자. 촛불로 선 정부는 생명의 뿌리를 단단히 내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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