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미꾸라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건으로 결국 꼬리가 밟혔다. 이들의 지시를 받아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명단을 작성하고 정부 지원에서 배제한 공무원들은 이미 일부 구속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과나 사퇴는 고사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 변명을 늘어놓으며 주권자인 시민을 우롱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즉각 구속하고, 이들의 다른 의혹도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 김 전 실장의 비위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모두의 관심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집중됐다. 매일같이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사람들은 흥분하고 분노했다. 그래서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고, 이번 사태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이 TV 앞에 나섰을 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여기에 고정되었다. 몇몇 증인들의 용감한 증언이 나올 때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관련된 대부분의 증인들은 ‘모른다’ ‘아니다’ ‘기억에 없다’로 일관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유의미한 정보를 얻는 데는 실패하였기 때문에 청문회 무용론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대화를 할 때 언어뿐만 아니라 손짓, 몸짓, 자..
당시 사무관 ㄱ씨의 표정은 어두웠고, 눈빛은 다소 지치고 불안해 보였다. ㄱ씨는 서류가방에서 꺼낸 파일을 매우 조심히 은밀하게 다뤘다. 제대로 펼쳐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엑셀 파일을 프린트한 서류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ㄱ씨는 급기야 한 카페에서 불만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배들도 ‘이런 것’은 처음이어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앞으로 지침에 따라 어떻게 문화예술 현장에서 적용할지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 ㄱ씨는 상급자에게서 건네받은 그 리스트를 산하기관 현장에 가져와 전달하고 적용토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을 각종 지원공모에서 떨어뜨려 배제시키려면 최종 심사 결과를 조작해야 하는 난관이 있었다. 수십명, 수백명도 아닌 수천명의 사람들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검찰의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권의 통치 수단으로 전락한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비리에 눈감아 오늘의 대혼란 사태를 야기했다. 김기춘·우병우 같은 검사 출신 인사들은 갖은 공작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홍만표·진경준 같은 전·현직 검사장은 공익의 대표자와 사회의 거악이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시민이 꿈꾸는 세상과 검찰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자명해졌다. 시민의 감시에서 벗어난 검찰,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검찰은 부패한 폭압기구에 불과하다. 한국 검찰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2200여명의 검사와 7000여명의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검찰은 그 자체로 직접적인 수사권을 갖고 있는 거대 권력이다. 검찰은 경찰의 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가 일단락됐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핵심 증인인 최순실씨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은 공개된 청문회장에 끝내 나서지 않는 등 시민 우롱으로 일관했다. 어제 국정조사특위는 19년 만에 구치소 현장 청문회를 했다. 최씨는 청문회장까지 나오기를 거부했고, 의원들은 수감동을 찾아가 비공개 신문을 했다. 검찰 출두 당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울던 최씨는 이날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속 짜증을 냈다고 의원들은 전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아느냐”는 질의에 최씨는 “모른다”고 잡아뗐고,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에서 “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 정유라씨 부정입학 의혹에는 “딸은 이화여대에 정..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2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했다. 법 지식을 악용해 출석요구서와 동행명령장 수령을 피하는 방법으로 국회를 농락한 그는 인터넷에 수배 전단이 돌고,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리자 결국 청문회장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게이트 연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위원들의 질의에 “모른다” “아니다”로 일관했다. 대통령 측근과 고위 관료들의 비리 감시 등 민정수석 업무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사판이다. 민정수석이라는 자가 이렇게 뻔뻔하고 무책임하니 박 대통령이 그렇게 됐는지, 아니면 밑에서 일하다보니 상사를 닮아서 그렇게 됐는지는 확실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날,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대통령과 단둘이 만나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창조경제에 대해 30~40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대답했다. 안민석 의원이 말한다. “대통령의 머리로는 창조경제에 대해 30~40분 동안 이야기할 만한 그런 지식이 없으세요. 무슨 얘기 했습니까, 30~40분 동안?” 새누리당은 ‘금도를 넘는 인신공격’이라고 비난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없다시피 했다. 안 의원의 발언에 대부분 동의했기 때문이리라. 대통령이 3차례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질문을 받지 않은 것,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질의응답을 통해 자신의 지적 수준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
돌이켜보면 의심스러운 대목은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양에 관한 얘기는 그가 정계 입문한 18년 내내 입방아에 올랐다. 박근혜는 늘 짧게 말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동생이 아니라면 아니다”. 간단명료하다.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알고 보니 그게 다였다.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선 정책 현안을 묻는 문재인의 질문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선 ‘경제회생론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계속되자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했다. 본질인 정책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그간 보여준 행적과 언행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수단과 방법은 전무했다. “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