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눈이 많은 올해다. 밤새 소복이 쌓인 눈처럼 12월의 밤들도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한 해의 끝에 닿고 있다. 지난 한 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들 마음속 시간들을 포근히 감싸는 하얀 위로들이다. 지난 26일자 경향신문의 1면 첫 화두는 ‘77만원세대’였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 한 달 소득이 78만원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여름 우석훈·박권일이 저서 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청년의 불안한 삶을 공론화한 지 꼭 10년 만이다. ‘88만원세대’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면, ‘77만원세대’는 스스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고 한다. ‘생’ 자체를 부정하는 허깨비 같은 삶들의 절망이 가슴에 박힌다. 2..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민주당은 어제 서울 고척스카이돔 구장에서 마지막으로 수도권·강원·제주 지역 순회경선을 치른 결과, 누적 투표율 57%를 기록하며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압도적인 표차로 제친 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오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선출되면 원내 5개 정당 대선후보들이 모두 정해지면서 19대 대선 본선이 시작된다. 두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선 문 후보는 어제 대세론을 확인하면서 대선 경쟁의 선두에 섰지만 그와 민주당에 주어진 과제는 무겁다. 우선 문 후보에게는 대선 본선을 정책 중심의 레이스가 되도록 이끌어야 할 책무가 있다. 촉박한 대선 일정으로 정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그랬겠지만, 후보들이 국정운영의 방향을 놓고 제대로 ..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29일 전격 회동했다. 정 전 총리는 “우리나라가 이래 갖곤 안되겠다, 좀 더 잘 만들기 위해선 정치구도, 지형이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화합과 통합으로 가야 한다. 통합·공동·화합정부를 하는 것에 대해 얘기해 봤다”고도 했다. 김 전 대표는 대권 도전 결심을 굳히고 다음주 대선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리도 출마 선언 이후 독자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 홍 전 회장은 이번 대선에서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회동에서 세 사람은 나라 걱정을 했다고 한다. 결국 보수·중도 대연합의 필요성을 공유했을 것으로 사람들은 보고 있다. 이미..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후보 간 경쟁이 정책 대결이 아니라 말꼬리 잡기와 흠집 내기로 흐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표창장’ 논란이 대표적이다. 문 후보가 토론회에서 특전사 복무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받기도 했다”고 소개하자 민주당 안팎의 대선후보들이 융단폭격하듯 비판을 쏟아냈다. 비판의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크게 문제 삼을 일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또 자유한국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 끝에 별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문 후보 아들의 대기업 입사에 대해 연일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정책 토론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경제와 민생, 외교안보, 노동 등 해결이 시급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후보 간 치열한 토론을 통해 공약을 검증해야 ..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선거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며 토론하는 마당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은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다.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심각한 독소 조항이 있는 선거법을 방치한 결과다. 앞으로 촛불집회나 친박단체의 집회에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입장을 밝히는 등 정치 현안에 대한 통상적인 발언은 괜찮지만 입후보 예정자를 지지·반대하는 발언은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탄핵 환영(규탄)’이나 ‘사드 배치 반대(찬성)’라는 구호는 허용되는데, ‘정권을 교체하자’거나 ‘사드 배치 반대하는 ○○당을 선거에서 심판하자’를 외치면 불법이다. 지금까지 광장에서 맘껏 의사 표현을 하던 것은 이제 범죄행위가 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중앙선거..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원내대표가 어제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3당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골자로 한 단일 헌법개정안 초안을 마련하고 다음주 초까지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도 개헌 대열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어지러운 판에 느닷없이 개헌 합의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개헌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선 국면에서 헌법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는 시민 사이에 일정한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개헌을 추진할 의사가 있다면 대선 이후 시민의 뜻을 모으고 충분한 공론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권 일부가 뚝딱 합의해 추진할 일이 결코 아니다. 3..
안녕하십니까? 문재인 전 대표님과 안희정 도지사님, 그리고 안철수 의원님, 유승민 의원님. 물론 이재명 시장님과 남경필 도지사님께도 인사드립니다.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으시죠? 얼마 전에 대선정책자문단 참여를 제안한 언론사로부터, 이번 대선의 중요 의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 검찰 개혁, 국정원 개혁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도 당연히 떠올랐습니다. 대선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분들이니, 이 모든 것에 대해 ‘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하겠노라고 말씀하느라 바쁘시겠습니다. 어느 분이든 국민의 직접투표를 통해 대통령이 되실 수 있으니, 당선된 후에 할 일을 꼼꼼히 밝혀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 그런데 대선에 나오겠다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
30년 전 민주화는 대통령을 시민이 직접 뽑는 변화를 일궈냈다. 그러나 그 밖의 많은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뒤 권위주의적 생산체제에 맞선 노동운동의 도전도 있었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도 겪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이는 ‘박정희 시대의 발전모델’, 즉 정부가 재벌과 동맹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체제가 여전히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압도했음을 의미했다. 박근혜 정부의 출현이 가능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박근혜 정부의 몰락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전개된 것은 흥미롭다. 대안세력의 성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의도하지 않은 행위’의 결과로 구체제의 재생산이 위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터진 2016 촛불집회가 대통령 개인의 거취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