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 폭로가 정치권으로 옮겨간 뒤, 미투를 둘러싼 정치공작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실현하기라도 하듯 사건 당사자들 간의 진실 공방이 뜨겁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폭로할 만한 미투와 그렇지 못한 미투가 있다는 ‘진짜 미투, 가짜 미투 가리기’류의 갑론을박이 포털의 댓글 공간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달군다. 공개폭로를 한 피해자들에게는 악의적인 루머 유포나 혐오 표현, 신상 털기로 적극적인 2차 피해를 입히면서, 익명의 폭로자들에게는 “진실이라면 무엇이 두려운가, 얼굴 드러내고 증거 대고 말하라”고 실명 피해 입증을 압박한다. 어느새 피해자의 절대적인 고통의 무게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희석되고, 피해자도 아닌 사람들이 “미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단서를 앞세워 가해자 중에 단죄받아 마땅..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2008년 자신에게 성추행당했다는 한 여성의 주장이 제기되자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민 의원이 당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퇴할 경우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 본격화 이후 현역 의원의 첫 낙마 사례가 된다. 문화예술계의 고은 시인·이윤택 연극 연출가 등에 이어 정치권에서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정봉주 전 의원 등 진보진영 인사들을 향해 미투가 집중되는 형국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선 이를 틈타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더니 부메랑을 맞았다’는 식의 공세를 퍼붓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투는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젠더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서지현 검사의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지위나 계급과도 무관하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진보 쪽에서 미투가..
지금 대한민국은 여성들이 주도하는 커다란 운동의 물결에 휩싸여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피해 폭로 이후, 전방위적으로 여성들의 고백과 지지, 동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여간 제가 가장 많이 받았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이 지면을 빌려 답하면서 운동의 의미를 살펴보려 합니다. 우선 한국의 ‘미투’ 운동이 할리우드발 ‘#MeToo’ 운동의 후속, 아류 혹은 변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길게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부터 진행된 동등권운동, 반식민지독립운동, 짧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본격화된 진보여성운동 단체들의 형성과 반성폭력운동, 여성인권운동, 더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 2015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진행된 ‘성폭력 필리버스터’, ‘#○○계_내..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정호승 시, ‘산산조각’ 중에서). ‘미투’(#MeToo)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어느 서울대 교수에 대한 조교의 고발이 성희롱을 공론의 의제이자 사법 사안으로 만든 후, 권력관계 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과 성토, 개선책 요구가 지속됐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직종의 여성들이, 각급 학교의 여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의 성폭력에 노출되는 사건들이 반복되었고 폭로도 계속되었다. 2016년 봇물처럼 쏟아졌던 문단, 영화계, 예술계의 성폭력 폭로에 어떤 실효가 있었는지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폭로는 제도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자 최후의 수단으로 끈질기게 이어져왔다. ..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선수들의 값진 승리와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는 온 나라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국가대표 컬링팀인 ‘갈릭 걸스’(애칭)가 일으킨 ‘영미 신드롬’까지 재밌고 유쾌했다. 그러나 모두들 온전히 흥겹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성폭력을 고발하는 문화예술계 ‘미투(#MeToo)’가 연일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사랑받아온 유명 배우가 제자들에게 가한 성폭력이나, 문화계 거장으로 불리던 연출가들의 성폭력 은폐 시도와 침묵은 분노를 일으켰다. 2년 전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나왔지만 검찰 조직 내 성폭력 폭로로 다시 촉발된 미투는 문학에서 시작돼 연극, 영화, 방송 등은 물론 종교계까지 그 민낯을 드러냈다. 깊이를 잴 수 없는 ‘검푸른 심연’처럼 성폭..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 물결이 거세다. 시인 고은, 연극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민기씨 등의 ‘과거’가 잇달아 폭로됐다. 인간문화재 하용부, 연극 연출가 오태석씨를 둘러싼 의혹도 불거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피해자들의 증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부인하거나, 침묵하거나, 형식적 사과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인사는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대책회의까지 열었다고 한다. 은폐·조작 시도에 다름 아니다. 더 이상은 피해자들의 용기에만 기댈 수 없다. 범사회적 차원에서 대처방안을 모색할 때다.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해온 오동식씨의 내부고발은 충격적이다. 오씨는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연희단거리패를 이끌어온 이윤택씨의 성추행이 공개 폭로된 후 극단..
설 연휴, 연극계는 ‘미투(#MeToo)’ 운동으로 뜨거웠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던 유명 연출가 이윤택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전직 단원 등의 증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성추행을 넘어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연극인들의 모임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씨 외 또 다른 가해자들의 성폭력을 증언하는 글도 잇따랐다. 피해자들은 수업이나 연기지도를 빙자한 성희롱,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의 성추행 사례 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이윤택씨가 저질러온 성폭력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씨는 연희단거리패 시절 여성 배우들을 심야에 극단 별채인 황토방으로 불러 부적절한 안마를 시켰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배우 개개인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검찰 조직 내 성폭력, 성추행 사건이 한 여검사에 의해 드러났다. 한국 최고의 권력 조직 내, 최상의 전문직이라 여겨지는 검사도 성폭력의 대상이 되어 고통받고 차별받는 현실을 폭로한 이번 사건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계급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한 것이다. ‘여성’은 여전히 상수처럼 존재하는 가장 열등한 계급이다. 사회적으로 많이 진출했다 하지만 실제 여성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남성의 충실한 내조자 혹은 부속품, 육아와 양육을 전담하는 존재, 남성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용기’라는 인식은 그 뿌리가 흔들리지 않은 채 각종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변주되고 발전해 왔다. 예전의 ‘빨간책’은 디지털화되어 폭력적 이미지들을 쏟아내고 여성은 발가벗겨진 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남성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