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타락상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의 ‘돈봉투 만찬 사건’은 검찰의 도덕적 인식이 일반인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검찰개혁 여론이 들끓어도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음을 이 사건 하나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은 18일 사의를 표명했지만 법무부와 검찰의 감찰을 받고 있다. 사표 수리로 사건을 덮지 않고 일벌백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최측근인 안태근 국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관장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2년 넘게 맡고 있다. 안 국장은 검찰 수사 대상이던 우 전 수석과 수백차례 통화한 사실이 특검 수사에서 드러났다. 정상적인 검찰이라면 안..
작년에 한 인터뷰에서 나는 현 정부를 ‘유랑도적단’에 빗댄 바 있다. 유랑도적단이란 경제학자 맨커 올슨이 이라는 저서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그는 정치권력과 경제적 번영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어차피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닐 바에는 ‘유랑도적단’보다 차라리 ‘정주도적단’이 낫다고 지적하였다. 정주도적단은 이듬해에도 수탈해야 하기 때문에 씨앗이라도 남기지만, 한 번 털고 떠나는 유랑도적단은 씨앗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단임제 정부가 1987년에 가졌던 역사적 효용성을 차츰 잃어버린 끝에 이제는 유랑도적단과 같은 대통령 무책임제의 폐해만 남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표현을 빌려 쓰면서 이것은 나의 표현이 아니라 올슨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에 대한 건강한 풍자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검찰을 비판하고, 검찰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수사든 유무죄는 법원에서 가려진다. 법원의 최종적인 승인 없이 검찰만의 전횡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권력은 반드시 법원권력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법원권력의 한가운데에는 대법원이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법원은 정권의 외압을 받지 않는다. 지금의 대법원은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서 대법원이 보여준 권력지향성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2015년 1월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대법관에 임명제청된 것부터 이상했다. 박 원장은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의 담당검사 출신이다. 아무리 검찰 출신이 대법관에 임명될 차례라고는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과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이 태극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3·1운동은 민족 전체가 계급·지역·이념·종교를 초월해 일으킨 독립운동이었다. 선열들은 한마음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동단결했다. 꼭 98년이 지난 지금 서울 도심에선 3·1정신과는 정반대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견 3·1절은 둘로 쪼개진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현 시국을 촛불과 태극기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건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촛불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헌법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한 시민의 분노에서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 불평등·불공정·불의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였을 뿐이다..
하나금융이 설립한 하나고의 입시 비리를 고발했다가 해임된 이 학교 전경원 교사에 대해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어제 해임취소 결정을 내렸다. 전 교사는 2015년 8월 서울시의회에 출석해 하나고가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남학생을 더 많이 뽑기 위해 지원자들의 성적을 조작했다고 증언했다. 교육청 감사 결과 전 교사의 폭로는 사실로 확인됐지만 학교법인은 전 교사가 학교장 허가 없이 외부 강연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해 10월 해임했다. 비리 고발에 보복한 것이다. 학교법인의 처분이 잘못됐다는 소청심사위 결정은 사필귀정이다. 의로운 행동으로 상을 받기는커녕 해직의 고통을 겪은 전 교사는 새 학기부터 교단에 다시 서게 됐다. 선생님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며 안타까워했을 학생·학부모들도 소청심사위의 이번 결정이 위..
탄핵심판에 임하는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16차 변론에서는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변인’이라고 모독하고, 재판관 기피 신청을 내는 막장극을 벌였다. 강 재판관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질문 등을 많이 한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탄핵 위기에 몰렸다 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인들까지 무더기로 신청을 한 장본인은 바로 박 대통령 측이다. 증인들이 나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거짓 가능성이 높은 발언을 하면 재판관이 사실 확인을 위해 물어보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헌재가 박 대통령 측의 재판관 기피 신청을 각하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재판을 파행으로 이끌고, 최종 선고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 정국,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이 사회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자주 접하는 단어는 ‘여성혐오’ ‘표현의 자유’ ‘검열’ 등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른 그림 ‘더러운 잠’이나 DJ DOC의 ‘수취인 분명’도 비슷한 논란 구조를 가졌다. ‘여성혐오 표현’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검열 아니냐?’는 반응이 그것이다. 이런 논란 구조와 논의 방식은 ‘표현의 자유’와 ‘성평등’이라는 가치가 마치 공존 불가능한 이항대립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누구는 옳고 누구는 틀리다는 결론을 요구한다. 여성혐오라는 문제제기를 곧바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연결한다. 이분법적 사고의 결과다. 여성들의 문제제기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려서 그른 것은 삭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주말과 설 연휴까지 반납하며 최선을 다해왔지만 실체 규명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 수사는 손도 못 댔다. 게이트 주범 격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이기도 한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관제 데모’ 의혹 역시 청와대가 재벌의 돈을 뜯어 극우·보수단체에 지원했다는 큰 그림만 나왔을 뿐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야 할 것이 많다. 특검 수사 와중에도 최씨의 미얀마 대사 인사개입 등 새로운 의혹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포스코 등에 최씨가 인사 민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