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노동자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지난 11일 자정 무렵 사망한 서부발전 사내하청 노동자 김용균씨다. 어둡고 비좁은 컨베이어벨트 아래서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나는 김용균씨에게 사과하고 싶다.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전문가협의회에 내가 전문가 위원으로 1년간 참여해 왔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 논의가 빨리 마무리됐더라면, 그래서 작업환경이 개선됐더라면, 어쩌면 김용균씨는 생을 달리하는 대신 연말에 가족과 함께 소박하지만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발전5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가 가장 더딘 사업장이다. 연료운전 분야는 1년 동안 논의하고 있지만 결론을 못 내리고 있고 경상정비 분야는 정규직화 논의를 시작도 못했다. 특히, 김용균씨의 ..
컵라면과 과자, 손전등, 건전지, 작업복…. 지난 15일 공개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씨의 유품은 비정규직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컵라면은 김씨가 식사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손전등은 열악한 작업장을 대변한다. 김씨는 어두운 작업장 근무에 투입됐지만 헤드랜턴조차 지급받지 못했다. 컵라면 유품은 2년 전 지하철 구의역 사고로 숨진 김모군의 가방에서도 나왔다. 컵라면은 비정규직의 고단한 삶을 상징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에게 더 무서운 것은 죽음이다. 기업이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외주화가 만연하면서 비정규직들이 죽어가고 있다. 2012~2016년 발생한 발전소 사고 346건 가운데 337건(97%)이 하청 비정규직 업무에서 발생했다. 2008~2016년 산재 사망자 4..
또 한 명의 청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홀로 작업 중 목숨을 잃었다. 지난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현장운전원 김용균씨(24)가 석탄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발전소 운영을 담당하는 하청 민간회사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밖에 안됐다. 10일 오후 6시30분 근무에 투입돼 11일 오전 7시30분까지 혼자서 4~5㎞를 순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날 청와대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대표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서는 김씨가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찍은 인증샷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2010년 이후 태안화력발전소에서만 12명의 하청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고 한다. 2012~2016년 346건의..
어느덧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지 10년이다. 아직도 기억이 선하다. 2007년 7월 법 시행을 둘러싸고 노사정은 물론 사회적 논란이 컸다. 법의 필요성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제도의 미흡함 때문이었다. 사실 비정규직보호법 도입 취지는 고용불안과 차별해소 목적이 명확했다. 직장에서 2년 된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과 불합리한 차별의 방지였다. 그렇다면 과연 지난 10년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일부 정책 효과도 확인된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이나 퇴직금 적용 비율이 다소 증가했다. 그나마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의 성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보수정부 시기 고용의 질 악화가 문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5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지하철 2호선을 탔다. 구의역에 가기 위해서였다. 날씨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이 맑았고, 초록 잎들은 빛났다. 이렇게 찬란한 5월에 살아 있었으면 스무 살이 되었을 청년의 1주기라니, 그 역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구의역 9-4번 승강장 스크린도어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하루 전날인 27일 추모제가 열렸을 때는 김군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스크린도어 여기저기에 붙고 바닥에는 흰 국화가 놓였다는데 28일에는 흔적도 없었다. 한적한 휴일 오후이다 보니 10-4번으로 끝나는 역사의 뒤쪽까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오는 승객들도 없어, 9-4번 승강장 앞은 고즈넉했다. 그래도 일부러 9-4번 승강장을 찾아온 사람들은 눈에 띄었다. “1호선을 주로 타고 다니는 중학생”이라고 밝힌 한 ..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1호 과제인 일자리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어제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는 취임 13일 만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됐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기획재정부에 신속한 추경 편성을 주문하는 등 일자리 추경도 시야에 들어왔다. 6월 임시국회에 10조원 규모의 추경안이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위원회도 산하에 공공·민간·사회경제 등 3개 소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업무영역 조정과 인선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자리 상황이 최악이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실제 일자리 부족은 양극화 심화, 소비부진, 가계부채 악화, 결혼 기피 등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신속한 대응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문 대통령의 일자리 ..
한국지엠 부평공장 노동조합의 추악한 채용 비리 행태가 드러났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본사 정규직으로 발탁하는 과정에 개입해 거액의 뒷돈을 챙긴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전·현직 노조위원장 3명 등 노조 간부 17명이 총 8억7300만원을 받았다고 하니 일부 노조원의 우발적인 일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규 생산직에 결원이 생기면 하청업체 비정규직 중에서 매년 40~110명가량을 발탁하는 기회를 악용한 전직 노조 간부들이 취업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 1개당 7000만원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돈을 받은 전직 노조 간부들이 노조 집행부나 사측 노무담당 임원에게 청탁하면 인사팀 실무자들이 지원자의 성적과 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키는 수법을 썼다. 이렇게 해서 이 회사에서는 2012년부터 ..
“다소 기업이 부담되더라도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찬성 79.1%, 반대 20.9%) “우리가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찬성 82.8%, 반대 17.2%) 어떤 여론조사 결과일까? 놀라지 마시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겨레가 실시한 국민 이념조사 결과이다. 다른 여론조사와 달리 ‘다소 부담되더라도’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를 지지하는지를 물어본 것인데, 우리 국민들 5명 중 4명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10년이 지나 2017년 대선을 앞둔 지금 다시 한번 조사해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생업을 잠시 접고 국정농단 세력 단죄에 나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