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아르바이트·단시간 일자리 등은 청년층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낮은 임금, 낮은 고용의 질, 낮은 삶의 질 등은 청년층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가 돼 버렸다. 소득양극화와 취업난,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은 ‘N포 세대’를 넘어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1일 내놓은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는 청년세대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하위 20%)의 한 달 소득은 80만7000원으로 집계됐다. 취업난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탓이다. 한때 저소득 청년층을 일컫던 ‘88만원 세대’가..
2년 전 한 비정규직 여직원이 약속된 정규직 전환 대신 해고통보를 받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공개된 유서에 따르면 그녀는 정규직 전환을 위해 중년 남성들의 성희롱을 참아왔다고 한다. 같은 해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로 고생하다 자살을 선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자살하기 몇 년 전부터 복지급여를 지원받으려 했으나 대상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2015년에는 롯데호텔에서 일하던 청년의 쪼개기 계약 실상이 드러났는데, 이 청년은 3개월 19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을 갱신하다가 어느 날 해고당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19세 청년이 근무 중 사고로 사망했다. 미숙련의 비정규직 계약직인 이 청년은 밥 ..
대기업 비정규직의 증가가 몰고 올 암울한 미래상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지난 29일 한국은행은 65세 이상 고령층을 제외한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2020년부터 취업자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정규· 비정규직 간 극심한 격차가 지속될 경우 청년층의 경제참여를 위축시켜 고용여건은 더욱 나빠진다고 진단했다. 30일 고용노동부의 상시고용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형태 공시 결과 발표도 이 한은의 경고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이 20%로 지난해보다 0.1%포인트 높아졌고 기간제 비율까지 합치면 대기업 노동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었다. 기아차 모닝 생산공장이나 롯데 영등포역 백화점처럼 운영 인력이 100% 간접고용이지만 정규직이 ..
나는 십 년도 더 한결같이 비정규직 철폐 싸움을 하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가노을빛’ 그런다. 가노을빛이라니…, 서로 사랑하고 있건만 만날 길이 없어 한 번도 속내를 내대보질 못하다가 문뜩 들녘에서 마주쳤을 때 저도 모르게 바알갛게 달아오르는 얼굴빛을 일러 가노을빛 그런다. 그 빛은 그 어떤 하늘빛하고도 다르다. 들녘의 갖가지 꽃닢하고도 달라 그림으로도 아니 드러나는 빛이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고 따라서 절로 피울 수도 있는 빛이라, 그 누구도 이를 짓이겨선 안 된다는 순결과 거룩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2008년 캄캄한 새벽녘이었다. 송경동 시인으로부터 기륭전자로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어제도 갔었는데 또? 송 시인의 숨이 먼저 넘어가는 듯해 달려가니 그 캄캄한 새벽에도 눈이 어지러웠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이 말을 믿었다. 불편만 감수한다면, 돈이 없어도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돈은 세상을 조종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돈 많은 대기업들의 영향력을 보면서다. 특히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며칠 전 판결이 하나 나왔다. ‘이마트는 대형마트가 아니다’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이다. 재판부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 중 하나는 이렇다. “시장경영진흥원이나 소상공인진흥원의 조사 결과는 영업 제한에 우호적인 단체가 단기간 조사한 결과인 반면, 연세대 정진욱·최윤정 교수가 집필한 ‘대형 소매점 영업 제한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광범위한 조사를 거친 객관적, 과학적 연구..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해가 바뀌면 내가 해고된 지도 만 30년이 된다. 어제 만난 사람의 이름도 까먹고, 사무실 전화번호가 가물거릴 만큼 기억력이 떨어졌지만 해고되던 날의 날씨, 하늘빛, 대문 앞에서 해고장을 읽던 근로과 대리의 이름, 목소리, 그의 입에서 나오던 말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 1직 사원, 사번 23733 김진숙을 명령불복종으로 인한 해고에 처한다.” 그 말을 들으며 영도다리보다 튼실하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직각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단련된 스물여섯 살의 내 다리가 주저앉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옴짝달싹 못하고 30년을 살았다. 아버진 실향민이었다. 명절이면 술을 마시고 “오마이, 순진아, 순남아” 끼익끽 울던 아버지. 난 그래서 명절이 싫었다. 아귀 ..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관련해 기업 부담을 줄인다며 정규직의 해고 요건 완화 검토 방침을 거론했다. 노동계가 격앙된 반응을 내놓자 입장을 번복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친기업 기조의 정부가 출범 때부터 이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운 데다 재계가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와 허약한 사회안전망을 감안할 때 해고 요건을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완화라니 절대 안될 말이다. 틈만 나면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몰고가는 행태도 지겹다.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정부와 기업의 자체 노력이 우선 필요한 것 아닌가. 정부의 해고 요건 완화 검토 방침은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사유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폭넓게 해석하려는 재계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 경영이 당장 ..
“정말 이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싸워보니 우리가 현대차라는 회사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를 상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 판결하자 “그럼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현대차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말도 안되는 소송이라 기각함이 당연한데도 헌법재판소는 4년째 판결을 미루고 있다. 비슷한 취지의 기간제법 헌법소원은 이미 1년 전에 기각한 헌재는, 유독 현대차가 제기한 소송만 ‘쥐고 있다’. 불법파견은 범죄행위가 분명하니 정몽구 회장 등 회사 임원을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대검이 직접 회의까지 주재하며 작년 연말까지 결론을 내겠다고 해놓고, 4년이 지난 오늘까지 기소조차 안 하고 있다. 1000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