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3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12월이 내뿜는 스산한 냉기(冷氣)처럼 한반도 위기 정세를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방중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정상회담이 양국 관계 개선 흐름을 강화, 발전시켜나가는 데 변곡점이 될지도 불투명하다. 표면적 이유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때문에 준공된 지 25년이 지난 ‘한·중수교 댐’의 안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중국 환구시보는 지난 한·중 외교장관 회담(11·22)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한·미·일 안보협력의 군사동맹 반대)1한(限)’을 언급했다”며 “1한은 이미 배치된 사드 ..
권토중래라는 말은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다. 직역하면 ‘땅을 말아서 다시 오다’인데, 패배 또는 실패한 후에 재기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권토’는 기병부대가 말을 달릴 때 흙먼지가 나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땅을 말아 올리는 것과 같다고 해서 시간을 되돌린다는 표현으로 썼다. 유래는 초한전쟁의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다. 유방에게 속아서 패한 뒤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진 항우는, 도주하다 오강(烏江)에 닿았을 때, 강을 건너 후일을 도모하라는 부하의 애원을 거절하고 자결해버렸다. 항우는 당시 9개 군을 통치하고 있었는데 자살하기 직전까지도 5개 군이 남아있었다. 따라서 후대 사람들은 항우가 강을 건너 재기를 노렸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시를 통해 항우가 권토중래하지 않았다..
“소성리는 처음 가십니까? 골짜기라예, 산골짜기.” KTX 김천 구미역에서 나를 태운 택시 기사는 비닐하우스들이 늘어선 좁은 마을 길을 달리며 그렇게 말했다. 참외 수확철이 지나 텅 빈 비닐하우스의 겉면에는 여기저기 붉은 래커로 ‘사드 반대’라고 쓰여 있었다. 가을하늘이 높고 푸르던 토요일 오후, 동행 하나 없이 숨어들 듯 소성리를 찾아 나선 이유는 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서였다. 6차 핵실험을 한 지 채 2주일도 안돼 불꽃놀이하듯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리는 북한 앞에서, 사드의 전쟁 억지력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 같은 것들은 말 많은 페이스북 담벼락에서조차 뜸해졌다. 지구 반대쪽에 사는 브라질인 친구가 “탈출 계획이라도 세워 놓았냐”고 걱정스레 보내온 메시지에 “괜찮아, 우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로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토지를 포함한 환경은 공공재로서 이것을 이용해 내가 이익을 보려 하면 불특정 다수가 손해를 보게 되며, 반대로 나의 헌신으로 인한 환경 개선은 불특정 다수의 이익으로 보상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얻는 이익보다 불특정 다수가 받는 총손해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크다는 것이며, 반대로 불특정 다수가 얻는 총이익은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손해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엔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핵심인 ‘생태계서비스’ 개념이기도 하다. 낙동강 페놀 방류 사건으로 특정 기업이 얻은 이익은 수많은 주민이 짊어져야 할 총손해에 비해 형편없이 미미한 것이며, 4대강 사..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했다. 문 대통령은 G20 회의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여느 때 같으면 두 정상 간 상견례가 되겠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한·중 정상회담을 위한 의제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만큼 긴장감이 감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에 대한 입장은 문 대통령의 사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지시로 부드러워지다 최근 다시 강경해졌다. 시 주석은 그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을 통해 사드 철수를 강하게 요구했..
촛불혁명으로 국정농단세력을 물러나게 했지만 지난 한 달 반을 반추하면 적폐세력들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기득권세력이 한순간에 바뀌거나 적폐들이 저절로 청산되는 것은 아니며,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가 정도는 각오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그들의 저항이 아주 빠르고, 대담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국정진행에 대한 비상식적 방해에 나선 야당의 공세는 물론이고, 최근에 불거진 사드 조기배치와 대북정책 논란은 구세력들의 조직적 저항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따지고 보면 사드 배치 문제는 처음부터 박근혜 정권의 안보 포퓰리즘의 일환이었으며, 대통령 선거와 연동해 지지자 결집을 위한 수단이었다. 이후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자 가속화에 나섰던 것이다. 심지어 탄핵된 이후에도 정해진 절차를 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미국과 중국, 일본을 다녀온 특사단과 간담회를 열고 활동 결과를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특사단 활동에 대해 “(정국이 혼란 상태에 빠지면서 생긴) 오랜 외교공백을 일거에 다 메우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도 그렇고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그렇고 우리가 할 말을 좀 제대로 했다고 생각이 든다”고 자평했다. 이번 특사 활동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특사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미 행정부에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설명, 새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상당히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가 홍석현 특사에게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로 (북한과)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평화’라는 말을 처음 ..
인간에 대한 폭력은 신체에 대한 물리적인 구속이나 상해를 가하는 것으로 흔히 이해된다. 그러나 이와 매우 다르게, 그리고 더욱 교묘하게 작동하는 폭력이 우리에게 상존한다. ‘담론적 폭력’이 그것이다. 미셸 푸코는 일찍이 에서 담론의 폐쇄적 속성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과를 폭력이라는 측면으로 논한 바 있다. 푸코에 따르면 담론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발휘한다. 첫째, 특정한 발화자와 언표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둘째, 이를 통해 향후에 발생할 수 있는 담론의 ‘무대’를 규정하여 셋째, 새로운 시각이나 대안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만든다. 요컨대 담론은 무엇이 발화되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언표들의 ‘형성체계와 규칙’을 만들어냄으로써 일종의 ‘규율적’ 도구가 되는 것이다. 무엇이 발화될 수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