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의 보석을 허가한다. 10월에는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다. 관련 사건을 맡은 다른 법관들도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려보자고 한다. 다급해진 신영철 당시 법원장은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내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라”고 압박한다. 재판 개입이자 법관의 독립 훼손이다. 이듬해 2월 신 법원장이 대법관에 임명되자 이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한다. 법관 500여명이 각급 법원별로 판사회의를 열어 “재판권 침해”를 비판하고 사퇴를 촉구한다. 대법원장까지 나서 “대법관으로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신 대법관은 6년 임기를 ‘감내’한다. 법원을 떠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징계 결정이 또다시 미뤄졌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지난 3일 징계가 청구된 고법 부장판사 4명, 지법 부장판사 7명, 평판사 2명 등 13명에 대해 3차 심의를 진행했으나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법관징계위는 이달 중순 4차 심의기일을 열어 올해 안에 징계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헌법과 법률로 신분을 보장받는 법관에 대한 징계절차가 신중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징계를 청구한 시점이 지난 6월인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징계심의를 3차례나 진행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법관징계위의 행태는 신중을 기하는 차원을 넘어 ‘고의 지연’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법관 탄핵을 의식했기 때문이..
전국법관대표회의(이하 법관회의)가 사법농단 관여 법관들의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언론이 ‘탄핵 저지’ 총공세에 나섰다.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취지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해 제 살을 도려내겠다는 법관들의 충정을 폄훼하고 있다. 법관 탄핵 반대 논리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탄핵은 헌법상 국회 권한이므로 법관회의가 관여하는 것은 삼권분립 위반이라는 논리다. 법관회의는 “(사법농단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국회를 향해 직접적으로 탄핵을 요구한 것이 아니며, 의결 내용도 대법원장에게 전달했을 뿐 국회엔 보내지 않았다. 이런 의견표명이 삼권분립 위반이면, 한국당이 ..
27일 구속된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에 대한 구속영장에는 ‘양승태 대법원’ 당시 법원행정처가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유동수의 2심 재판 전략을 짜줬다는 혐의가 적혀 있다. 유동수는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벌금 90만원이 나와 의원직을 유지했다. 특허 무효제도를 도입하려던 특허청장을 국정감사장에서 혼내달라는 요청을 유동수가 수행한 대가로 법원행정처가 재판 전략을 써 제공한 것이다. 임종헌은 상고법원 법안을 발의한 자유한국당 의원 홍일표에게도 ‘법률 서비스’를 제공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을 때 임종헌이 법원행정처 양형위원회 판사에게 대응 전략을 짜주라고 지시한 혐의도 영장에 적혔다. 사법농단 사태에서 다시 확인한 건 ‘양승태 대법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을 거론하면서 “서울중앙지법에서 부패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합의부 7곳 중 5곳이 사법농단 조사 대상이자 피해자”라며 “현 시스템으로는 공정한 (사건) 배당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했다. 이어 “사법농단과 관계없는 재판관으로 구성된 특별재판부 도입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당연하고 시급한 얘기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형사합의사건 재판부가 27곳 있다. 사법농단 사건이 배당될 담당 형사부는 13곳이다. 이 중 2곳 재판부의 재판장은 과거 영장전담판사 시절 수사기밀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로 알려졌다. 다른 2곳 형사부의 재판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 ..
한국 사법부가 13일 일흔 돌을 맞았다. 그러나 ‘양승태 사법농단’의 짙은 그늘 속에 법원도, 법관도 축하받지 못했다.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삼가온 문 대통령이 ‘재판거래’라는 용어까지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수사 방해’에 가까운 법원의 행태로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질타로 봐야 할 것이다. 사법의 위기는 총체적이다. 정의와 인권의 보루여야 할 법원이 온 나라의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관사찰·재판거래 의혹으로 전·현직 법관들이 검찰 수사선..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앞서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을 출국금지한 검찰은 두 사람이 재임 당시 임 전 차장의 ‘윗선’으로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된 각종 조치를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대법관에 대한 출금 조치는 극히 이례적이다. 법원이 두 사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자, 검찰 자체적으로 강수를 둔 것으로 본다. 대법원은 인권과 정의의 최후 보루이며, 대법원장은 그 수장이자 표상이다. 전직 대법원장이 재임기간 권력을 남용한 혐의로 출금된 것은 사법부의 불행이고 수치다. 물론 모두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고구마 줄기 캐듯 쏟아지는 의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