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검사가 검찰총장과 검사장급 고위간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대국민 고발’을 했다. 한국 검찰 사상 최초일 터다. 2월18일자 경향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는 칼럼을 쓴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이야기다. 임 부장검사는 검사장 3인이 2015년 서울남부지검의 성폭력 사건을 덮었고, 문무일 총장은 이들을 징계·처벌하지 않았다며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없는 검사들을 고발합니다. 주권자 국민 여러분이 고발 내용을 판단하여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더 놀라운 건 그 이후다. 시민 반응은 뜨거웠으나, 검찰은 조용하다. 어떠한 공식 반응도 없다. 검찰 내부망에도 수사관 2인이 글을 올렸을 뿐, 검사의 글은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임 부장검사는 전화 통화에서 “반응이 전혀 없어 당혹스럽다. 검찰 조직의..
지난해 1월29일, 현직 여성 검사가 생방송에 출연해 검찰 고위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인사 불이익까지 겪었다고 폭로했다. 서지현 검사의 증언은 국내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본격 발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도도한 미투의 물결은 문화예술계와 정치권, 대학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빙상·유도·축구 등 체육계에서도 미투가 이어지고 있다. 고통 속에 침묵해오던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가해자 연대’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23일 법원이 서 검사에게 성추행·인사보복을 한 안태근 전 검사장을 엄중히 단죄한 것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대한 응답으로 읽힌다.서울중앙지법은 안 전 검사장에 대한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안 전 검사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이..
올해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온 사건들 중 하나로 서지현 검사의 미투 선언을 돌아본다. 이 사건은 검찰의 성불평등과 폭력적 관행을 폭로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런 문제제기가 얼마나 뿌리 깊은 조직적·대중적 저항에 부딪히는지를 보여주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의미가 더 크다. 그의 고발이 큰 반향과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서 검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검찰 조사단은 공소시효가 지나 사실상 수사를 할 수 없는 추행 사건에 집중했고, 애초의 문제제기 후 자신에게 가해졌던 부당한 인사조치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상화된 추행도 문제였지만, 서 검사가 말하는 사건의 핵심은 남성 권위와 성폭력적 문화에 반발하는 구성원에 대한 조직적 억압과 응징이다. 그는 ..
빙상종목에서 국가대표를 지낸 한 선수는 지난여름을 해외에서 보냈다. 폭염을 피해 출국한 게 아니다. 앞서 그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개혁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참여했다.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연맹 부회장)로 대표되는 기득권세력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결국 홀로 외국으로 떠났다. 개인훈련을 하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서야 귀국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컬링 전 국가대표 ‘팀킴’이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의 딸·사위인 김민정·장반석 감독으로부터 폭언과 사생활 통제,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겨울동화’에 열광하던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컬링계 내부를 아는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라고 했다. 팀킴은 “가족이라 칭하는 틀 안에서 억압, 부당함, 부조리에 불..
변호사·의료인·언론인·교수·회계사 등 전문직 여성들의 상당수가 직장에서 각종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5일 전문직 여성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올해 불붙은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은 현직 검사인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상급자의 성추행 사건에서 시작됐다.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성폭력이 전문직이자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검사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번 조사결과는 이 같은 잘못된 성문화가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41명)이 ‘외모, 옷차림, 몸매 등을 성적으로 희롱·비하·평가받는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당..
차기 국가인권위원장에 최영애 서울시 인권위원장이 내정됐다. 최 내정자는 한국 최초의 성폭력 전담 상담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설립을 주도하는 등 여성 인권 신장에 힘써왔고 인권위 사무총장과 상임위원을 지냈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추천위의 공모·심사를 거쳐 내정된 첫 사례다. 최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절차를 거쳐 임명되면 첫 여성 국가인권위원장이 된다. 역대 인권위원장은 모두 남성 법조인이거나 법학자였다. 최초의 여성·시민운동가 출신 인권위원장 내정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여성 인권위원장이라고 여성만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 전반적인 인권과 민주적 절차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 취지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성폭력특별법 제정 추진위원장..
설 연휴, 연극계는 ‘미투(#MeToo)’ 운동으로 뜨거웠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던 유명 연출가 이윤택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전직 단원 등의 증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성추행을 넘어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연극인들의 모임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씨 외 또 다른 가해자들의 성폭력을 증언하는 글도 잇따랐다. 피해자들은 수업이나 연기지도를 빙자한 성희롱,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의 성추행 사례 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이윤택씨가 저질러온 성폭력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씨는 연희단거리패 시절 여성 배우들을 심야에 극단 별채인 황토방으로 불러 부적절한 안마를 시켰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배우 개개인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성들이 분노를 넘어 행동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를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다. 피해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온·오프라인에서 ‘역대급’ 광풍이 불고 있다. 8년 만에 용기를 낸 서지현 검사의 발언이 여성들에게 힘을 준 결과이다.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세상에 나오는 데 8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처럼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발 미투(#Me Too)는 아니었지만 1983년 여성의전화 핫라인 상담전화를 통해 여성들은 납득할 수 없는 피해, 있어서는 안되는 일에 대해 이미 말하기 시작했다.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개소했을 때 성폭력의 피해를 말하는, 계속 울려대던 전화 소리를 필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