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괴물이 탄생하고, 수단과 방법이 절대화되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정당한 수단이 아닌 반칙이 절대화되면 목적을 상실한 괴물들의 세상이 오게 된다.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려면 목적과 이상이 바르고 뚜렷해야 하고, 절차와 규범과 윤리와 법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는 괴물과 그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그 청산의 과정은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정당한 수단과 방법, 그리고 바른 목적을 향하여 청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을 잡기 위해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한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은 반칙과 특권을 혐오하는 지도층과 자기 성찰이 이루어지는 강고한 지지층이 나와야 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이게 나라냐”며 시민들이 촛불을 든 지 29일로 꼭 2주년을 맞았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비리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진행됐다. 하지만 그동안 촛불시민들이 요구한 가치가 얼마나 구현되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적폐청산은 지지부진해 국정농단의 잔재를 다 걷어내지 못했다. 서민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는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목소리는 사그라들고 있다. 전 세계를 감동시킨 ‘촛불혁명’의 성과로서는 너무나 초라하다. 촛불집회는 단순히 정권 하나를 바꾸자는 게 아니었다. 촛불집회는 이 사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없애고 반칙과 특권을 해소해 달라는 사회개혁 운동이었다. 무능한 정치권을 대신해 시민이 집단지성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한 명예혁명이었다. 하지만 2주년을 맞..
문재인 대통령이 1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 수뇌부가 모두 참석한 첫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2기 개각과 민주당 지도부 교체 등 여권이 새로운 진용을 갖춘 것을 계기로 국정운영에 대한 기조와 의지를 재확인했다. 적폐청산을 둘러싼 상황이 엄중하다고 보고 당·정·청이 다시 한번 힘을 실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4개월이 지났지만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촛불시민의 열망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연일 드러나고 있는 대법원의 사법농단이나 국군기무사령부의 불법행위만 봐도 공권력의 적폐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일부 대기업과 경제적 강자들이 힘으로 약자..
적폐청산은 선악의 문제였다. 대통령이 선을 선택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이었고, 정당성은 즉각 힘을 발생시켜 문제 해결에 작용했다. 민생문제는 다르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선의는 자영업자에게는 악의로 받아들여진다. 이익과 이익이 충돌하는 생존 경쟁의 장에서 선악의 구분선은 희미하다. 물론 민생문제에도 적폐와 같은 공동의 적이 있다. 경제 기득권이다. 하지만 쉬운 상대가 아니다. 불패의 신화를 자랑한다. 가난한 자들끼리 생존 경쟁에 내몰려도 그 원인을 제공한 경제 기득권은 미동이 없다. 적폐 청산에 선의가 작동하는 방식이 민생 문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개혁의 주체가 바로 서지 못하고 있다. 과거 청산을 위해 하나로 뭉쳤던 세력이, 지방선거 이후 세상의 관심이 삶의 문제로 옮겨가..
유난히 눈이 많은 올해다. 밤새 소복이 쌓인 눈처럼 12월의 밤들도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한 해의 끝에 닿고 있다. 지난 한 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들 마음속 시간들을 포근히 감싸는 하얀 위로들이다. 지난 26일자 경향신문의 1면 첫 화두는 ‘77만원세대’였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 한 달 소득이 78만원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여름 우석훈·박권일이 저서 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청년의 불안한 삶을 공론화한 지 꼭 10년 만이다. ‘88만원세대’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면, ‘77만원세대’는 스스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고 한다. ‘생’ 자체를 부정하는 허깨비 같은 삶들의 절망이 가슴에 박힌다. 2..
문무일 검찰총장이 5일 주요 ‘적폐청산’ 수사를 연내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문 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수사가 본래 그 기한을 정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안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모든 검찰 업무가 적폐 관련 수사에 집중되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은 연내에 마치는 걸로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댓글조작·사법방해·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및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 등의 수사를 이달 안에 끝낼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총장은 “같은 말을 여러 번 들으면 지치지 않느냐. 사회 전체가 한 가지 이슈에 매달려왔는데,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것도 사회 발전에 도움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연내 마무리 방침의 이유를 설명했다. 적폐청산 수사가 장기화하면..
이명박 정부 당시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이어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도 지난 24일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법원은 지난 11일 검찰이 임 전 실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으나 이번 구속적부심에서는 “일부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석방했다. 법원은 또 25일 검찰이 문재인 정부 인사인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를 향하던 ‘댓글 수사’와 전 전 수석의 뇌물수사가 모두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검찰은 임 전 실장이 석방된 데 이어 전 전 수석의 영장까지 기각되자 “(법원의 판단을)납득할 수 없다”고 ..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소위 ‘적폐청산’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대북·통일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통일부는 최근 ‘정책점검 TF’ 활동을 사실상 종료하면서 외부 전문가들로 이뤄진 ‘정책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통일부는 정책혁신위원회가 정책점검 TF의 활동 결과를 토대로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 결정 과정 및 결과를 점검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연말까지 ‘정책혁신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과오를 바로잡고 개선하겠다는 통일부의 의지에는 격려를 보내지만, 몇 가지 우려 사항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책혁신위원회’와 ‘정책점검 TF’라는 명칭이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촛불혁명의 주체인 국민들은 적폐청산을 통해 대한민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