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벚꽃 대선을 치르면서 시민들은 새로운 미래에 기대가 부풀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보면서 ‘대통령이 복이 많다’고 했다. 성장률도 높아지는 데다 시민들의 높은 지지까지 있으니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수요를 일으키고, 혁신성장으로 공급을 확대하며 이를 뒷받침하도록 경제시스템도 공정하게 고치겠다고 했다. 소득 증가를 수요와 공급, 투자로 이어지도록 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일자리 늘리기’를 청와대 1호 사업으로 정하고 일자리 전광판까지 세웠다.그런 뒤 2년이 흘렀다. 기대는 빗나갔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 과속에 따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혁신성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실상 ‘공회전’..
경제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유명했던 고 정운영씨(1944~2005)를 나는 교수로 기억한다. 큰 키에 중후한 목소리, 조리 있는 말솜씨. “결혼은 하셨나요”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가 결혼도 못했을 것처럼 보이나요”라고 유머로 답하던 여유까지. 30여년 전 강의실에서 본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한국의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던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무슨 얘기를 했을까. 요즘의 상황이 답답해 인터넷을 찾아보는데 그가 1988년 8월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이 눈에 띄었다. ‘성장, 안정, 복지…그래서?’라는 제목이다.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에게 각기 딸을 시집보낸 부모가 가지는 걱정, 그것은 경제정책의 입안자들이 지닌 고민의 내용을 아주 잘 설명해 준다. 우산과 나막신을 파는 데 고..
홍남기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보고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로 등에 관해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면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기자들에게 “내년 3월까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최저임금이 고용 악화에 미친 영향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대통령과 경제정책 수장이 한목소리로 속도조절론을 꺼내든 게 심상치 않다. 정부는 지난 7월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사실상 접었다. 이번에는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늦추려 한다. 재계와 소상공인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재계는 고용 악화의 책임을 최저임금에 돌..
지난달 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치는 등 고용 부진이 심화되고 있다. 급기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저임금 속도조절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의 고용 악화는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의 구조조정과 불황이 서비스업으로까지 번지는 경기적 요인에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요인,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같은 원인에 맞춰 당장의 추락한 고용지표를 회복시킬 단기적 처방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용 여건을 개선할 중장기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는 3000명으로 지난 7월 5000명에 이어 사실상 제자리걸음..
정부의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대한 일부 소상공인들의 우려에 보수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지난달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소상공인단체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최저시급 1만원을 주장하는 노동자는 소상공인의 적이 아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본질을 외면하고 해법을 잘못 짚었다. 소상공인 생존권이 위태해진 근본적인 원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소득격차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60% 수준이다. 외환위기 시절 77% 수준에서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심각하다. 그 원인의 단초는 외환위기 때로 거..
관료들은 내부적으로 치열한 토론이 오갈지라도 이견 자체를 밖으로 잘 표출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관료들 간 갈등이 뉴스의 중심에 서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문 정부에서는 예외적인 현상이 빚어지면서 한국경제의 한 리스크 요인이 돼 왔다. ‘늘공’(늘 공무원)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어공’(어쩌다 공무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얘기다. 앞서 청와대 개편에서 자리를 지킨 장 실장에 이어 8·30 개각에서 김 부총리가 유임되면서 둘의 갈등은 일단 봉합된 모양새다. 그럼에도 충돌지점을 찾아내고 교정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두 사람을 ‘김&장 갈등’의 프레임에 가둬놓으려는 세력이 엄존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 정부 출범 초부터 두 사람 간 갈등은 예고된 측면이 있었다. 김..
“대전에서 자식을 키우는 50대 여성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의 소득주도 경제성장이 잘 안 되고 있음을 인정하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던진 발언이었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다시 한번 이 사건을 언급했다. 같은 당의 김용태 사무총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괴물이 노동취약계층의 국민들을 죽이고 있는데도, 청와대는 눈 하나 깜짝 않는다”라고 한탄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 사연의 주인공이 가공의 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김성태 원내대표 발언의 근거는 8월24일자 한국경제신문 기사였는데, 오마이뉴스가 대전의 검·경찰에 확..
지난 19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7월 고용쇼크와 관련, “청와대가 현 고용부진 상황을 엄중히 직시하고 있다”며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입장을 밝히자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메시지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윗선에서 국민들의 체감을 강조하면 부처들은 대책들을 한꺼번에 내놓는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재정지출은 늘리겠다는 식이다. 최저임금은 올리면서 가격이 지역 평균보다 낮은 식당을 ‘착한식당’으로 지정해 홍보해주려 한다. 공평과세를 강조하면서 비과세 혜택을 늘리고 자영업자 세무조사 면제라는 정책을 내놓는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면서 소상공인을 몰아낼 혁신을 가져올 창업은 장려한다. 정부가 눈앞의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