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필자는 두 개의 원칙, 즉 게임전략과 협상 네트워크에 입각해서 지난 몇 달간의 진전을 지켜봐왔다. 주어진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려는 전략을 게임전략, 주어진 입지 자체를 바꾸려는 전략을 네트워크전략이라고 한다. 먼저 게임전략을 보자. 트럼프는 게임이론의 교과서와 같이 행동해왔고, 따라서 대단히 예측 가능한 사람이다. 물론 그는 스스로 했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뒤집어왔다는 점에서 예측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그가 한 말의 ‘내용’에 집중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그가 왜 말을 뒤집는지 ‘의사결정의 원칙’에 집중해보면 그는 매우 예측 가능하다. 그는 이미 20년 전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금 구사하고 있는 대북 전략을 설명한 바 있다. 첫..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해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주장하기 바란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미국의 파상적 무역공세에 문 대통령이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상황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는 뜻일 게다. 실제 미국은 지난달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최고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발동을 시작으로 상무부가 철강수출에 대한 고강도 수입규제 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등 압박의 강도를 높여왔다.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응 주문은 안보와 통상을 분리해 대응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7~8일 한국을 방문한다. 정상회담을 하고 국회연설도 한다. 트럼프 방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를 예측해 가면서, 방한을 기회로 우리가 그에게 전할 말을 준비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언동을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언론이 평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이익을 내기 위해 이악스럽게 계산하고, 상대방이 물건을 사도록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는 ‘실속형’ 정치인으로 보인다. 그의 말폭탄 뒤에는 고도의 계산과 의도가 숨어 있다. 지난 9일 트럼프는 지금까지의 말폭탄과는 결이 다른 말을 했다. “지난 25년간 북한에 수십억달러를 줬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잉크가 마르기 전 합의가 위반됐다.” 이 말에는 무슨 복선이 깔려 있을까? 우선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미국..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3일 광화문광장은 휴일 나들이 인파로 북적였다. 눈부신 초가을 햇살 아래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아이들은 달리고 소리치고 웃었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안보불감증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엄중한 정세라고 해도 이 정도의 행복과 평화조차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은 과도한 엄숙주의다. 70년 가까이 머리띠 두르고 북한 규탄 구호를 외쳤어도 달라진 것은 없지 않은가. 1주일 전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이 일본 상공을 통과해 날아갔을 때 일본은 발칵 뒤집어졌다. 학교가 휴교하고 신칸센이 멈춰서고 신문들은 앞다퉈 호외를 냈다. 일본 정부는 긴급 대피령인 ‘J얼러트’를 발령했다. 지진 때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반대로 한국인은 지진을 더 두려워한다. 북핵을 머..
분단 이후 한반도가 지니는 지정학적 의미는 강대국들 간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에서 특정 국가에 의한 한반도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힘겨루기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강제적인 기술이전 요구 등 부당한 무역관행을 조사토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실상 무역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중국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 상무부는 15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다자간 무역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극우 성향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나서서 “중국과의 경제 전쟁은 모..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1950년 11월30일 “핵무기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아마 이 협박이 북핵 개발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1956년 2월23일 북한이 소련의 드브나 핵연구소에 30여명의 연구원을 파견한 것이 핵개발의 기원일 수도 있다. 그 기원이 무엇이든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한 지 올해 60년이 넘는다. 이 60여년은 한마디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핵 대장정의 시기였다. 때로는 경제붕괴 상황에 직면하고, 때로는 선제공격의 위험이 닥쳐도 중단 없이 행진한 시간이었다. 오랜 고립과 제재를 견디고, 온갖 난관을 헤쳐온 끝에 드디어 핵 보유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북한이다. 제재를 더 강화하거나 추가한다고 핵 국가의 꿈을 포기할 리 없다.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해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로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미특사인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과 접견한 자리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과 관련해 ‘평화’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최근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유연한 대북 태도와 맥을 같이한다. 북한 핵실험 중단 시 대화 용의가 있다는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나 북한 붕괴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발언이 그것이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대북 압박 기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화 조건을 비핵화 약속에서 핵실험 동결로 문턱을 낮춘 것도 변화다. 북한의 핵능력이 완성단계에 이른 것을 감안한 현실적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달라진 북핵..
한·미 양국 군당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기습 배치했다. 어제 새벽 경북 성주골프장에 사격통제레이더와 발사대 6기, 요격미사일 등 핵심 장비 상당수를 반입했다. 국방부는 “가용한 사드의 일부 전력을 배치해 우선적으로 작전운용 능력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한 대낮을 놔두고 한밤중에 도둑 배치한 이유로 충분치 않다. 북한이 당장 핵미사일 공격을 할 것이란 징후도 없는데 서둘러 배치한 의도가 궁금하다. 특히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선거 쟁점인 사드 배치를 강행한 저의가 뭔지 묻고 싶다. 대선판에 뛰어들려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다. 사드 배치는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선출되든 되돌릴 수 없도록 ‘알박기’하려는 목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미묘한 배치 시점을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