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는 허세도 중요한 전략이다. 적을 공포로 몰아넣고 아군의 사기는 북돋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일까. 전쟁판에서는 병력 부풀리기가 일반화돼 있다. 예컨대 삼국지연의를 보면 주요 전투의 동원 병력이 100만명을 넘기 일쑤다. 적벽대전에는 120만명이 투입됐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당시 위와 촉, 오나라의 동원가능 병력은 모두 합해 87만명 정도였다. 소설가가 재미를 위해 숫자를 부풀렸겠지만 장수들의 허풍도 한몫했을 것이다. 허풍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가 북한이다. 김정일은 1990년대 초 미국에 대한 핵공격을 공언하곤 했다. 당시 북한은 조악한 형태의 핵폭탄 제조도 불가능했다. 북 외교관들이 플루토늄을 러시아로부터 밀수하다 적발되는 형편이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다르지 않다. 휴전선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두 정상은 북핵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의 충실한 이행에 뜻을 같이했지만 가시적인 해법은 도출하지 못했다. 북핵 위기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데도 단순한 상황관리에만 치중하는 중국과, 중국 역할론에만 몰두하는 미국의 태도가 실망스럽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중국이 북핵 해결에 협력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우리는 독자적인 방도를 마련할 것이고, 마련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면서도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다면 대화는 없다고 못 박았다. 미국은 회담 전에도 독자 대응 의사를 밝혔지만 이번에는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를 미사일로..
북한이 어제 서해 동창리에서 동해 쪽으로 중거리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4발을 동시에 발사했다. 지난달 ‘북극성 2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 22일 만이다. 이는 한반도 및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자 유엔 안보리 결의의 중대 위반이다. 지역 평화를 깨뜨리고 국제규범을 거듭 파괴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저울질하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보란 듯이 이뤄졌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은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면서 대북 선제타격, 대중국 세컨더리 보이콧과 함께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하나가 한반도의 운명과 직결되는 사..
북핵 문제는 상당 부분 북·미 간 문제다. 북·미 간 타협과 갈등으로 점철된 북핵 문제의 긴 역사가 잘 말해준다. 그런데도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이 쉽게 끝낼 수 있다며 중국에 떠넘겼다. 그런데 그건 미국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미국은 선제타격으로 북한을 무릎 꿇릴 수도 있고, 대북 경제 지원으로 북한 태도를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두 그게 전략적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오바마가 북핵 문제를 북·중 간의 문제로 바꿔치기하려 갖은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한 이유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과 트럼프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은은 손을 뻗어 트럼프의 옷깃을 ..
온 국민이 특검 수사에 몰입하고 있던 지난 며칠 사이, 두 개의 섬뜩한 국제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트럼프 시대의 개막이다. ‘미국 우선!’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그 첫 번째 결실을 보았다는 기사이다. 중국 저장성 이우시에서 출발한 화물열차가 17일간 1만2500㎞를 달려 영국 런던에 도착한 것이다. 중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 벨기에, 프랑스를 거쳐 마침내 영국에 도착했다. 트럼프 시대에 예상되는 변화는 언론을 통해 비교적 많이 소개되었으니 여기서는 일대일로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육로와 해로 두 개의 길을 통해 중국과 유라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거쳐 스칸디나비아까지 연결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중화인민공화국 수..
‘미국판 이명박’이라는 별명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현지시간 20일 취임하자 한국 누리꾼들은 ‘미국 사람들, 비슷한 지도자를 우리는 이미 겪어보았소’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가 취임사에서 “민중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며 배트맨 시리즈 (2012)의 악당 베인의 연설을 ‘복붙’하고, 빈자리가 숭숭했던 취임식에 ‘150만명’이 참석했다고 숫자까지 제멋대로 부풀리자 미국인들은 황당해했다. 미 중앙정보부(CIA) 본부 공석에서 기자를 콕 찍어서 인신공격하는 트럼프의 비민주적 행태는 한국 언론이 이미 지난 8년간 지나온 길고 어두운 터널의 ‘초입’을 연상시켰다. 트럼프의 취임식 케이크가 4년 전 버락 오바마의 두 번째 취임 때 사용됐던 케이크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며 요리사가..
하마터면 박근혜-트럼프 조합의 이중 위기에 처할 뻔했다. 미국 우선주의, 예측불가의 도널드 트럼프는 20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런데 한국 외교를 벼랑으로 몬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직전이다. 덕분에 박근혜 리스크와 트럼프 리스크가 동시에 발호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까. 한국 외교의 재앙적 상황이 해소된 건 아니다. 박근혜 리스크는 유령처럼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방침을 확인하면서 “중국이 반대해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불에 기름을 끼얹자는 것인가. ‘사드 보복’ 행태는 불만스럽지만 공연히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당장 “한국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트럼프의 ‘경제교사’로 알려진 ..
며칠 전 어느 단체의 송년 모임에서 간단한 강의를 했다. 나는 ‘올해 지구촌 뉴스’를 전하면서 “박근혜, 트럼프보다 더한 인물이 다음 우리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중석에서 비명 소리가 나왔다. 박근혜·최순실도 충분히 끔찍한데, 더 나쁜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놀란 모양이다. ‘박·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국정파탄, 부정부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구토를 부르는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분노보다는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한계와 절망을 느꼈다. 독점한다는 의미의 ‘농단(壟斷)’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최순실씨 일가가 박태환 선수 협박부터 무기 구입까지 손을 뻗지 않은 곳이 없으나, 그들이 집어 삼킨 것은 좁은 의미의 국가권력(청와대)이 아니라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