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기업이 부담되더라도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찬성 79.1%, 반대 20.9%) “우리가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찬성 82.8%, 반대 17.2%) 어떤 여론조사 결과일까? 놀라지 마시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겨레가 실시한 국민 이념조사 결과이다. 다른 여론조사와 달리 ‘다소 부담되더라도’ ‘다소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를 지지하는지를 물어본 것인데, 우리 국민들 5명 중 4명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10년이 지나 2017년 대선을 앞둔 지금 다시 한번 조사해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생업을 잠시 접고 국정농단 세력 단죄에 나서고,..
박근혜·최순실 사건은 역사적인 법치주의 학교이다. 부패한 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가짜 법치를 내세워 법으로 민중을 억눌렀다. 하도 당하다 보니 시민들은 법을 지배자의 채찍이며 칼처럼 여기게 되었다. 문정현 신부가 목판에 조각한 ‘법보다 밥입니다’라는 글귀도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문 신부의 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법은 사람들의 밥그릇을 걷어차는 군홧발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법의 지배란 권력이 시민을 법으로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권력의 행사는 법에서 정한 절차와 내용을 따라야 한다는 것, 즉 권력이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이나 탄핵이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최종적 해결은 아니다. 이 땅에 권력자가 법을 지키는 법치를 튼튼하게 세울 때 비로소 해결되..
대통령은 거짓의 가면을 쓰고 ‘망국의 춤’을 췄다. 비선 실세와 문고리 3인방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경제정책이 아닌 ‘기업 목조르기’를 설계했다. 일부 고위 관료들은 권력놀음에 취해 ‘최순실 부역자’를 자처했다. 재벌은 부패한 정권에 뒷돈을 대며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런 지난 4년은 야만의 시절이었다. 박근혜는 거짓으로 무너졌다.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공약부터 거짓이었다. 경제민주화는 취임 6개월도 안돼 폐기됐다. 기초연금·반값 등록금·4대 중증질환 100% 보장 등 복지공약은 파기 또는 축소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엔 틈만 나면 규제완화를 주술처럼 외쳐댔다. “규제는 암덩어리다. 단두대에 올려 규제 혁명을 ..
자고 나면 또 무슨 일이 터질까 겁이 난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는 ‘막장극’이나 다름없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어제 면세점 인허가와 관련해 롯데와 SK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지난해 하반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롯데 관계자와 만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롯데면세점이 지난해 11월 소공동점의 재승인허가를 받는 과정에 최 의원이 연루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검찰은 기획재정부와 관세청도 압수수색했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은 지난해 청와대 근무 시절 최씨 의혹과 관련해 전경련 관계자들과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장이 여러 정부부처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
미술계의 갖가지 추문을 단박에 잠재운 강력한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다. 이 사건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 등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간 박근혜 정권 아래 이루어진 모든 일과 맞물려있다. ‘문화융성’이란 모토 아래 추진된 여러 행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지 문화예술 관련 기관장 선임이 최순실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졌다. 그 무리들에 의해 온갖 비리가 저질러졌고 블랙리스트도 작성되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당시 정무장관이었던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의심을 사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 작성한 리스트란다. 2014년부터 2015..
발단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발언 한 토막이었다. 어쩌다 ‘최순실의 폭주’가 가능한 사회가 됐는가를 고민하던 터였다. 채 전 총장은 며칠 전 김어준의 팟캐스트에 나와 3년 전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 내쳐진 과정을 토로했다. ‘왜 잘렸나’라고 묻자 “법대로 하다가”라고 대답했다. 검찰이 권력 말을 왜 잘 듣느냐는 물음에는 “말 잘 들으면 승진시키고 말 안 들으면 물먹이고. 검찰총장까지 탈탈 털어 몰아내고. 뭐 그러면서 엎드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검사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갔기 때문 아닌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성과 당부가 가슴에 닿는 술회다. 조직이 샐러리맨화하면서 사회 전체가 초식동물화하고 있다는 얘기는 검찰뿐 아니라 관계, 정계, 언론계에서 늘 농담처럼 듣는 얘기다. 채 전 총장의 말처럼 이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어제 검찰에 소환됐다. 우 전 수석 조사를 위한 특별수사팀이 출범한 지 두 달 보름 만이다. 우 전 수석은 변호사 시절 ‘몰래 변론’, 가족회사 자금 횡령, 강남 처가땅 특혜 매각, 경기 화성땅 차명 보유, 공직자 재산 허위신고, 의경 아들의 ‘꽃보직’ 압력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그동안 우 전 수석 수사에 손을 놓고 있었다. 검찰 수사는 오히려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이나 우 전 수석의 비리 의혹을 보도한 경향신문과 조선일보를 겨냥했다. 윤갑근 대구고검장 등 이른바 ‘우병우 사단’이 수사를 맡은 것부터가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우병우의 ‘셀프수사’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검찰은 이미 우 전 수석에게 면죄부를..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은 법조계 이너서클의 실체를 파헤친 역저다. 출간 시기는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이다. 지금쯤 속편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경준·홍만표 이야기가 아니다. 청와대 주변 부나방들 얘기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법학자인 손기병 교수(가명)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때문에 일어난다고 지적합니다. 실력주의, 업적주의로 번역되는 메리토크라시는 능력을 스스로 증명한 사람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체제입니다.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마이클 영에 따르면 메리토크라시는 지능지수와 노력에 의해 수월성(merit)을 획득한 사람들에 의한 지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메리트를 오직 시험에 의해서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