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민중의 싸움터에 힘을 주는, 나는 파견 미술가” 경기 안성시 보개면 시골마을에 이윤엽의 소박하지만 멋스러운 작업실 겸 집이 있다. 다 쓰러진 폐가를 이윤엽이 8개월이나 손수 매달려 살려낼 때 동네 사람들은 ‘밀고 다시 지으면 될 걸 왜 사서 고생을 해’라며 혀를 찼다. 그가 밖을 돌아다니다 눈에 띈, 온갖 버려진 물건들을 실어다 마당에 쌓아놓자 사람들은 그를 동네에서 내쫓을 걸 고민했다. 언제나 노동자와 농민을 그리는, 평택 대추리에 용산에 한진중공업에 이 나라 민중의 싸움터엔 어김없이 자신을 ‘파견’하는 그는 민중미술의 영락없는 계승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는 민중미술에 대해, 민중에 대해 끝없이 회의하고 질문한다. 목판화를 닮은 묘한 얼굴로. ▲ “민중이 특별히 건강하다 생각해본 적 없어” ▲ “..
ㆍ‘MB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이 자본이 바라는 상태 아닐까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1500일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들로서 사측과 정부에선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노동자라는 것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열명 남짓의 노동자들이 벌이는 외로운 싸움은 우리의 삶에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사람의 속내는 무엇일까.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지부장 유명자씨를 서울시청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노동자의 현실에선 노무현 정권도 잔혹 김규항 = 1500일이 되어간다. 유명자 = 곰도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데 우리 노동자들은 곰보다 못한 처지인 모양이다. 1500일이 돌이켜보면 참 길지만 하루하루 동지들과 함께할 일을 하다 보니..
ㆍ도가니? 장애인이 갇혀 사는 것에 대한 담론이 없었다 박경석은 스물다섯 살 때 행글라이더 사고를 당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지만 장애인으로 살 거라곤, 더구나 장애인 운동가로 살 거라곤 상상하지 않았다.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니면서 데모 한번 안한 ‘제법 놀 줄 아는 날라리’였던 그는 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청와대 행사에서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다 들려나오고, 국회의원 자리마저 고사하는 비타협적인 투사로 변신했다. 그러나 25일 혜화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난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김규항 = 장애인 운동에 굳이 ‘진보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가 뭔가. 박경석 = 장애인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시각들이 있는데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비장..
ㆍ“가난한 아이들 최면거는 ‘거짓 희망’ 대신 ‘아픈 현실’ 일깨워 줘” 김중미씨(48)는 1987년 빈민운동을 하기 위해 인천 동구 만석동에 들어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동 현장과 ‘민중의 삶’의 현장으로 투신했던 수많은 청년들처럼 말이다. 그로부터 25년, 대개의 청년들은 돌아와 중산층 시민으로 살아가거나 수구기득권 세력과 정권, 사회적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하는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김중미씨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김중미씨는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한 채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김규항 = 1987년에 만석동에 들어왔으니 25년째다. 운동의 의미를 넘어 여기서 계속 살 만한 어떤 가치가 발생했다는 건데. 김중미 = 처음 들어올 생각을 할 때 빈민운동 쪽 선배가 그런..
ㆍ“나만이라도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겠다” 1970년대 이후 40여년을 한결같이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온 ‘길위의 신부’ 문정현. 한국 사회운동의 산증인이자 가장 열정적인 현역 활동가이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인터뷰하고 돌아온 지 이틀 뒤 그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규항(이하 김)=부모님이 늘 순교자 정신을 가르치셨다고 들었다. 문정현(이하 문)=활동하다가 사제들 중에 구속이 되었을 때 그 부모님들이 동료 사제를 원망하고 감옥간 아들 원망하고 하는 걸 보면서 우리 부모님이 다르다는 걸 절감했다. 난 도리어 ‘흔들리지 말라고 대건 순교자처럼 의연하라’는 응원을 받곤 했다. 김=어릴 적 일상에서는 어떠한 가르침을 주셨나...
ㆍ희망은, 가진 자들이 만든 질서를 넘어서는 용기다 희망버스 기획하고 진행한 송경동 시인을 19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야간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자 생활을 하고 있다. 김규항 = 이곳에 갇혀 지낸 지 얼마나 되었나. 송경동 = 석 달쯤 지났다. 공식 수배 상태가 된 건 두 달 좀 지났다.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은 “비정규직이 900만명인 세상에 ‘운동’이 꿈과 이상, 그리고 다른 세상에 대한 확신을 접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김규항 = 어찌 보면 송경동이 갇혀 있는 건지, 세상이 갇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송경동은 해방되어 있고 밖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는 사람들이 자본의 감옥, 체제의 감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