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를 결심한 그날 밤에 아내가 아들을 출산했다는 전갈이 왔다. (…) 태자는 아내의 침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었다. 아기와 산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일 저 팔을 치우면 아내가 깨어나겠지. 성불한 뒤 돌아와 내 자식을 안아보리라.’ 태자는 왕궁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달렸다. 성문이 저절로 열리고 말은 발굽을 땅에 딛지 않고 달렸다. 강을 건넌 뒤, 수행하던 시종에게 옷을 벗어주며 작별했다. 싯다르타는 칼을 집어 머리칼을 잘라 허공으로 던졌다.” 본격 휴가철이 시작된 주말, 를 읽으며 더위를 식힌다. ‘20세기의 창조자’라고도 불리는 저 남미의 환상적 리얼리스트가 정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풀어내는 불교 강의는 여러 차례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마다 자주 눈길이 머무..
1. “누가 그걸 모르나?” 정부의 한 핵심 실세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이 보였다는 반응이다. 이 핵심 실세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를 이끌며 현 정부의 국정 밑그림을 그린 이로 알려져 있다. 김 원장이 6월27일 경주에서 열린 대학교육협의회 대학총장 세미나에서 했다는 기조 강연의 요지는 공자 말씀에 가깝다. “창조산업에선 문화 콘텐츠가 중요하다. 현재 시장 수요가 적다고 전통 인문학인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을 가볍게 생각하는 흐름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한다. 문사철에 바탕을 둬야 깊이 있고 차별성 있는 내용을 만들 수 있다.” 그는 강연 뒤 기자들과 만나 일부 대학들이 인문학과 통폐합을 하면서 너무 상업적으로 간다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 학력은 대학 졸업이다. 무리해서 최종 학력을 끌어 올려봐야 대학원 중퇴가 전부다. 신문기자 시절, 대학에 몸담고 있던 선배의 호의와 강권으로 자의반 타의반 언론홍보대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야간 대학원이었지만 주경야독하는 이들 특유의 열정은 없었다. 강의는 형식적이었고 학생들은 학위 때문에 마지못해 출석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굳이 학위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학비도 안 내니 그냥 다니기만 하면 되는데도 머잖아 그만두었다. 그곳에서 강의를 듣고 학위를 받는 게 내 삶에도, 일에도, 공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학력, 이력을 지닌 내가 지난해 대안연구공동체 학자들과 힘을 모아 대안 대학원을 개설했다. 철학과정과 저술과정을 둔 ‘파이데이아 대학원’이다. 학기마다 신입생을 받..
산골 밤은 소란스럽다. 하루 종일 골짜기를 맴돌던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잦아들고 소쩍새 소리가 들리더니 이제 호랑지빠귀 소리가 밤하늘을 가른다. 밤이 깊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강원도 제법 깊은 산골에 있는 오두막. 마포 아닌 곳에서 쓰는 ‘마포 스캔들’이다. 부처님오신날로 시작된 연휴를 맞이해 모처럼 서울을 벗어난 참이다. 오늘 낮에는 얼마간 밭을 일구고 다소 철이 지난 고추며 오이, 가지, 호박, 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언젠가 귀농을 하겠다며 산골에 제법 너른 밭을 마련하고 농사를 지은 지 벌써 10년이 더 지났다. 귀농은 못한 채 주말 농사, 휴가 농사만 부지런히 지은 셈이다. 그러다 지쳐 올 한해 농사는 쉬리라 마음먹었다. 요 몇 년, 멧돼지와 고라니 가족들이 출몰해 농사를 망치면서 농사 재미가 덜해..
“그것은 코끼리와 호랑이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만일 호랑이가 가만히 서 있는다면 코끼리가 그 막강한 엄니로 호랑이를 짓누르겠지요. 그러나 호랑이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낮에는 밀림에 숨어 있고 밤에 다시 나타납니다. 호랑이는 코끼리 등에 뛰어올라 코끼리의 가죽을 찢어놓고 다시 어두운 밀림으로 뛰어들어갑니다. 그러면 코끼리는 천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갑니다. 이것이 인도차이나의 전쟁이 될 것입니다.” 베트남 혁명가 호찌민이 1946년 9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주말, 윌리엄 듀이커의 을 읽으며 게릴라전을 생각했다. 장 코르미에의 에 이어 일주일 동안 두 권째 읽은 혁명가 평전이다. 바쁜 가운데 이들 전기를 읽으며 게릴라전을 떠올린 계기가 있다. 최근 발표된 서울시의 인문학 중심..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1. 겨울이 그리 길고 춥더니 다시 봄이다. 봄은 북한산 등산 인구가 늘어난 것만 봐도 확연하다. 지난 주말엔 꽤 쌀쌀했는데도 산에는 등산복을 입은 인파로 넘쳐났다. 근교의 산을 오르더라도 제대로 갖춰 입는 것, 예전과 다른 풍경이다. 언젠가부터 북한산은 가히 등산복 패션의 경연장이라 할 만하다. 산에서 달라진 풍경이 하나 더 있다. 평일에 산을 오르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직장인이건, 은퇴나 실직한 이건 심신을 달래며 오를 산이 있다는 건 우리의 복이다. 문제는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 하는 이들이 긴 세월 산만 오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은퇴한 이들이 옛 친구들과 어울리며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는 것도 그렇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해 기초노령연금 논란이 거듭되고..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는 여성이 아니다. 다른 성이다. 아줌마는 기혼여성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미혼여성뿐 아니라 기혼여성조차도 동의하는 모욕적인 호칭이다. 지하철에서 다이빙하듯 몸을 던지며 자리다툼을 벌이는 뻔뻔스러운 여성, 세련되지 못한 파마와 화장에 뚱뚱하고 탐욕스러운 여성, 음식점이고 버스고 가릴 것 없이 큰 소리로 떠들면서도 창피함을 모르는 여성. 치맛바람을 휘날리며 사교육 열풍을 불러온 것도 아줌마고 부동산 투기의 주범인 복부인도 아줌마다. 오죽하면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이 들통 난 고위공직 후보자가 가장 많이 둘러대는 말이 “아내가 한 일로, 나는 모르는 일”일까. 아줌마를 보는 시선은 대안 인문학 공동체라고 해서 그리 다르지 않다. 재작년 인문학 공동..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jrkkk@nate.com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뉴스를 외면하고 산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다. 50대의 일원으로, 지난 대선 때 이런 선택에 내몰렸던 불안한 세대가 안쓰럽다. 춥고 우울하다. 얼마 전 개설된 공동체의 논어집주(論語集注) 강독반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오래전부터 한문의 문리를 트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던 터다. 처음부터 강독에 참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시작하기 전 10명이 채 못 되던 강독 참여 희망자는 30~40대가 주축에 50대가 둘. 그런데 강독이 시작되자 일단의 대학생들이 무리지어 왔다. 정확하게 서른 살이나 어린 친구들이었다. 나이와 직급의 위계가 엄격한 집단에서 잔뼈가 굵었음인가. 아들의 동갑내기와 클래스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