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문재인 의원이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이는 여러 면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문 후보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인 1년여 전에 쓴 한 글에서 문 의원이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측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문 의원이 가진 여러 자질에 연유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지역주의가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의 정서적 지역주의로부터 상대방을 이기기에 어느 후보가 유리한가라는 전략적 지역주의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적 지역주의 때문에 호남 등 민주통합당의 지지세력이 역설적이게도 호남 출신 정치인들을 지지하지 않고 지역적 확장성이 있는 타 지역 출신 후보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적..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과연 역사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고 전진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대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건만 정책논쟁은 사라지고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이전투구뿐이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직선제가 다시 도입된 1987년 이후 치러진 역대 대통령선거 중 이 같은 선거는 없었던 것 같다. 세계는 지금 레이건과 대처 이후 추진해 온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의 결과로 경제가 파탄이 나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역시 그 전망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게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초석을 닦고 이명박 정부가 가속화시킨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
결국 2008년의 완벽한 반복이다. 그렇다. 통합진보당의 쇄신파가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라는 분당의 길을 선택했다. 결말까지도 2008년 민주노동당의 소수파와 마찬가지로 분당을 택한 것이다. 이로써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략적 필요성에서 추진한 통합은 1년도 못 가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됐다. 이제 문제는 분당 이후이다. 주목할 것은 진보신당의 선택이다. 진보신당은 분당을 결정한 쇄신파의 한 축인 노회찬·심상정 의원 등 통합연대와 2008년 분당 이후 당을 같이해온 세력으로서 통합진보당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맹주인 경기동부연합 등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를 이유로 합류를 거부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4월 총선에서 독자노선을 걸었지만 1%대의 지지율로 정당 해산을 당하고 재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
“어디에선가 헤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그가 빠트린 것이 있다. 그것은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자주 인용되는 이 구절은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정치적 혼란 덕분에 나폴레옹에 이어 황제에 오른 것을 목도하면서 마르크스가 쓴 명문장이다. 김제남 의원의 배신으로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등 당 쇄신이 물 건너가면서 분당 사태에 직면한 통합진보당을 바라보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이 구절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 번 반복된다는 헤겔의 주장처럼,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는 2008년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의 반복에 다름 아니다. 즉 2008년의 분당 사태 이후 4년이란 세월이 지..
정승일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 재벌그룹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규제에 반대하면서 경제민주화보다 복지국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장하준과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최근의 비판은 ‘왜 이건희 가문과 타협해서 복지국가를 만들려 하냐’는 물음으로 요약되는 듯하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재벌과 비타협적으로 싸워야 하고, 더구나 재벌 가문이 뭐가 아쉬워서 복지국가와 타협하겠느냐는 것이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유하며 더구나 정치, 경제를 좌우하는 재력을 가진 대재벌 가문의 권세와 영향력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대결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난 6월20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복지국가는 재벌과의 타협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백만, 수천..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얼마 전 난생처음으로 위 내시경 검사를 했다. 수면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자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암인가 보다’라며 덜컥 겁이 난 나에게 의사는 ‘암 선고’만큼이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 왜 그렇게 박정희 욕을 하세요?” 마취를 하면 무의식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던데, 마취가 되자 박정희 욕을 계속 뱉어낸 것이다. 물론 대학 시절 고문도 당하고 투옥도 되고 제적도 당하고 군대에도 끌려갔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나이가 되도록 깊은 무의식 속에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증오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고 부끄러웠다. 이처럼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한국현대사에서 피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다. 이 뜨거운 감자는 새누리당 박근..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지나친 것은 모자람과 같다.” 의 이 주장처럼 지나친 욕심은 많은 불행을 불러온다. 특히 정치에서 그러하다. 지나친 욕심에 의한 ‘과욕의 정치’는 개인, 나아가 공동체를 불행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임기말이 다가오면서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는 이명박 정부 실세들의 모습은 과욕의 정치의 비극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래 권력’인 박근혜 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의 경선 룰 개정 요구를 일축하는 등 일방통행으로 나가고 있는 과욕의 정치는 박 의원의 불통 이미지를 강화시킴으로써 그에게 오히려 해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다. 일부 세력의 과욕이 이해찬 당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라는 밀실 담합을 야기했고 이는 지난 당 대표 선거에서 보듯 역풍으로 ..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때로는 적당한 거리가 사물을 보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미인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무슨 미인으로 보이겠는가? 오랜만에 학교일로 긴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한국학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서강대가 올봄에 국내 최초로 한국학을 영어로 가르치는 국제한국학과를 만듦에 따라 유럽의 한국학 실태를 조사하고 한국학을 공부하는 유럽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매일 부딪치던 일상과 한국 정치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가지게 된 만큼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특히 역사를 많이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된 것은 출장 초반에 런던에서 유학 중이던 제자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때문이었다. “교수님, 교수님 수업 시간에 읽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