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볼리바르혁명의 주역인 차베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선 21세기형 사회주의 모델로 주목을 받아온 볼리바르혁명의 미래이다. 다행히 그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르 임시대통령이 차베스 유고로 실시한 대통령 재선거에서 승리해 혁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승리해 재검표 요구에 시달리고 있는 등 그 미래가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이를 넘어서 정치와 혁명에서 인물의 역할에 대해, 나아가 혁명의 제도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개인적 경험과 관련해 그러하다. 2004년 12월 나는 베네수엘라정부의 초청으로 신자유주의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한 세계지식인과 예술가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후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베..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디오게네스라는 그리스 철학자가 있다. 옷 한 벌, 지팡이, 빵 자루 이 외에 가진 것 없이 길 가의 통 속에서 사는 그는 어느 날, 늘 그러하듯이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때 그의 명성을 듣고 알렉산더 대제가 찾아 왔다. 알렉산더가 “당신에게 무엇인가 해주고 싶은데,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그는 “내 앞에 비치는 햇볕이나 가리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답했다고 한다. 요즈음 자주 떠오르는 것이 이 디오게네스다. 그의 또 다른 일화 때문이다. 그가 훤한 대낮에 등불을 손에 들고 다니기에 사람들이 의아해서 물어보자 “사람을 찾습니다. 어디 사람 없습니까?”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렇다. 사람 같은 사람이 없는 현실이 그로 하여금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게 만든 것과 비슷한 상황이 우리..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유시민 전 의원이 정계를 은퇴했다. 이로써 3김 정치에 의해 사당정치와 지역주의로 왜곡된 한국의 자유주의를 아래로부터 당원이 움직이는, 제대로 된 근대적 정당과 탈지역주의로 바로잡으려던 ‘유시민 실험’도 실패로 끝났다. 사당정치와 지역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적 문제의식의 정당성,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여러 재주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유시민 실험의 실패는 자초한 면이 많다. 구체적으로, 진정성보다는 단순히 재주에 의존하고, 긴 호흡을 가지고 옳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감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했던 ‘소탐대실 정치’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그는 아래로부터 당원이 결정하는 정당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정치..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박근혜와 링컨. 언뜻 보기에 잘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링컨처럼 역사에 남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링컨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노예를 해방시킨 진보적인 정치인이었다면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 출신의 대표적인 보수적 정치인이라는 등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 엉뚱하게도 링컨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박 대통령이 취임하는 바로 그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에서 링컨 대통령 역을 열연한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박 대통령의 취임식을 바라보면서 왜 하필 링컨 대통령이 떠올랐을까? 그 이유는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 때문이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소련·동구 멸망과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이후 유행한 것이 ‘제3의 길’이다.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블레어로 대변되는 이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도, 사회민주주의도 아닌 그 중간노선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실상 사회민주주의의 포기와 신자유주의로의 투항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제3의 길은 그 같은 우경적 노선이 아니라 자본주의도, 그렇다고 문제가 많은 현실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대안을 의미하는 급진적 노선이라 할 수 있다. 그 같은 노선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1955년에 열린, 흔히 반둥회의라고 부르는 ‘아시아 아프리카(AA)회의’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신생국들이 모인 이 회의는 서구 자본주의와 이의 다른 얼굴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소련의 관료적 사회주의와 ..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대선이 끝난 지 한 달 남짓이 지났다. 박근혜 정부는 아직 출범하지 않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거의 한 달이나 남아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해서 상당기간이 지나간 기분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도 하지 않았건만 벌써 걱정이 태산 같다. 요즘 내가 갖고 있는 걱정은 민주통합당 지지자 등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바랐던 48% 중 많은 사람들이 하는 ‘앞으로 박근혜 정부 5년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 하는 걱정이 아니다. 가장 큰 걱정은 앞으로 박근혜 정부 5년이 아니라 오히려 그 5년 뒤인 2017년 대선이다. 아니 2017년 대선 패배 후 또 한 차례의 5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의 걱정이다. 5년 뒤에 희망이 있다면 5년을 참고 견딜 만하다. 그러나 ‘희망 없는 기..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현대 사회과학의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는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가 역사를 움직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의 TV토론이 좋은 예이다. 이 후보는 대선토론이 지지자들을 위한 카타르시스의 장이 아니라 부동층을 설득해 유인하는 장이라는 것을 망각한 채,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공언하는 등 지나치게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 결과 의도와는 정반대로 박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이 되고 말았다. 이는 한 여론조사 결과 그의 공격적인 TV토론 태도가 보수표심 집결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 결과에는 이 후보의 공격적 태도를 넘어서 한국진보정당의 문제점, 나아가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추구해온 연합정치..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기이하다. 민주당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당이 바로 얼마 전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인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말로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저버린 역사의 죄인” 운운하며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성도, 절박감도 느낄 수 없다. 당권 등을 놓고 벌어지는 친노-비노의 대립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경기에서 이긴 승자들이 전리품을 놓고 벌이는 싸움으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대선 이후 민주통합당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패배의 원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입장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 같지 않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안철수와 관련한 공방이다. 안 후보 측이 안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