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523만 몇 천 몇 개의 벽돌.’ 진보운동의 절정이었던 1990년대 초, 유학에서 돌아와 취직한 한 대학에서 발견한 팸플릿의 제목이었다. 운동권 학생회가 신입생들 교육을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건설현장 현지지도를 나와서 “저 공장을 짓는 데 (정확한 숫자는 잊어버렸지만) 523만 몇 천 몇 개의 벽돌이 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대로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건을 읽고 유치한 개인 숭배에 너무도 충격을 받았다. 이후 과거사 진상 조사 일을 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소위 주체사상파(주사파)들이 김일성 주석에게 충성 맹세문과 생일선물을 보낸 것이 조작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또 한번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건전한 지성과 상식이 마비..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살다보면 어떤 사건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어떤 막장드라마보다도 더 막장인 통합진보당 사태가 그러하다. 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대학 시절 군사독재에 저항하다가 투옥·제적·강제징집을 당한 일, 기자가 된 뒤 강제해직을 당해 유학을 떠나야 했던 시절, 교수가 된 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 등 궂은일을 맡아 현장을 뛰어다녀야 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실 대학에 들어가 정치의식을 가진 이후 개인적으로 “진보란 모든 억압, 착취, 차별, 배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진보적으로 살려 노력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정말 내가 진보라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물론 진보라는 것을 부끄럽게 느낀 것이 이..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이건 포기다. 그렇다. 민주통합당이 대선을 포기한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19대 총선에서 예상 밖의 참패를 하고도 뼈를 깎는 반성과 쇄신은커녕 더욱 오만과 나락 속으로 빠져들 수는 없는 일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민주통합당이 충격적인 패배 후에도 국민에게 반성하고 혁신하는 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쇼’조차 왜 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2004년 총선, 대통령 탄핵으로 역풍이 불어 한나라당은 개헌저지선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이 구원투수로 등장해 ‘천막당사’라는 배수진을 통해 예상 밖으로 121석을 건져냈다. 이번 총선에서도 “탄핵 때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 속에서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박 의원을 ..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파티는 끝났다. 그리고 이제 냉철한 평가의 시간이다.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기형적인 선거였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니고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정치란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실천이 변증법적으로 종합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 총선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객관적인 정치지형이다. 이명박 정부의 4년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다가 한국판 워터게이트사건인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까지 터져 나왔다. 이 같은 조건하에서 민주통합당이 승리하지 못하고 새누리당에 참패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민주통합당이 얼마나 바보짓을 했으면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가? 둘째로 기이한 것은 민주통합당이 ..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sonn@sogang.ac.kr 2012년 총선이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날 것 같았던 이번 총선은 짜증나는 문제 공천 등 민주통합당의 연이은 자살골로 판세가 애매해졌다. 이에 따라 관심은 선거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반MB, 반새누리당 연합과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진영 중 누가 승리할 것인지, 나아가 어느 쪽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2004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나라당의 자충수 덕으로 5·16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국회를 장악한 바 있는 진보개혁 진영이 다시 한번 국회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도 관심사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중장기적인 발전이라는 ..
손호철|서강대 교수·정치학 “사실 우리와 한나라당이 큰 차이가 없다.” 자신의 한나라당과의 연정 제안에 대해 열린우리당 내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특히 열린우리당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통합당을 이끌어 갈 새 지도부의 출범을 보면서, 문뜩 떠오른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이 고백이다. 민주통합당의 새 지도부 출범을 축하하면서도 동시에 당의 정체성과 관련해, 민주통합당이라는 자유주의 세력과 한나라당이라는 보수세력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가 하는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이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그리고 민주당을 이어받은 민주통합당이 자신들이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등 다행스럽게도 과거에 비해 좌클릭한 ..
‘결전의 새해’가 밝았다. 선거의 해인 올해 최대 관심사는 역시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개혁세력’이 승리해 5년간의 ‘어둠의 세월’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이다(이와 관련, 새로운 시대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김근태 선배의 명복을 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선거에서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에 파열을 낼 수 있을 것인지, ‘영남의 보수왕국’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이다. 사실 1987년 양김의 분열이 잠재되어 있던 지역주의를 폭발시킨 뒤, 한국 정치는 지금까지도 지역주의의 압도적인 우위 아래 약화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은 ‘민주 대 반민주’,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진보 대 보수’의 구도가 결합되어 있는 양상을 띠어 왔다. ..
손호철|서강대 교수·정치학 ‘어둠의 시절’은 끝나는 것일까? 그렇다. 정확히 1년 뒤인 내년 12월19일이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주도해온 ‘어둠의 시절’이 끝날 것인지, 아니면 5년 더 계속될 것인지가 판가름난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민심을 잃었고, 한나라당도 죽을 쓰고 있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 한국정치인 만큼 안심하기는 이르다.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뛰어들지, 누구도 모른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의 홍삼게이트 등으로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국민경선제로 바람을 일으켜 재집권에 성공한 새천년민주당과 노무현의 실험처럼, 박근혜 의원과 한나라당이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와 뼈를 깎는 자기혁신을 통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가능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