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회학과에서 문화사회학 같은 과목을 강의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현상의 다양한 맥락을 이론적 틀을 가지고 설명해주고, 되도록이면 개인들, 특히 소수자에 대한 꼬리표를 붙이지 않고 함께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의. 컴퓨터 코드와 그래프, 바둑판 모양의 표만 보는 수업의 한계는 분명하다.그럼에도 대학에서 통계와 통계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은 흥미롭다. 수학을 싫어하거나 수학 때문에 고통받았던 학생들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학생들에게 이원 연립일차방정식, 일원 이차방정식과 근의 공식, 함수, 수열, 행렬 등 간단한 수학 문제를 진단 차원에서 낸다. 많은 학생들은 중학교 2학년..
학교에서 교수로서 해야 하는 면담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취업 면담이다. ‘스펙’이 어느 정도 갖춰진 3~4학년 여학생과 만날 때 가장 난감하다. 내가 서울 소재 대학의 교수라면 “공모전을 열심히 해라, 학점과 토익 점수를 좀 더 높여라, 자소서를 직무역량에 맞춰서 정성껏 써라” “교환학생도 가고, 인턴십도 더 해라” 말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경우 그렇게 말을 하지만, 이따금 공허할 때가 있다.적당한 스펙이라면 현실적으로 지역의 적당한 중소기업 사무보조직이나 시민사회단체, 사회적기업, 도시재생센터, 또는 학교의 조교나 계약직 행정직원이라도 찾아보라고 권할 것이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했던 학생들이라면 21세기 직장인의 키워드인 ‘커리어패스’(직업경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직업을..
대학 입시는 한국에서 온 국민의 관심사다. 언론은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 1등이 누구인지를 찾아내 공개해왔고, 수능 오답이 나오면 관련 분야 석학끼리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교육부가 입시 방향을 정할 때마다 여론은 매섭게 편을 가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입시 문제가 이슈가 되고 여론의 뭇매를 맞자 문재인 대통령은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했다. 논쟁에 또 한번 불이 붙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파와 정시파의 논쟁이 시작됐다.1980년대까지 대학은 20% 이내가 가는 곳이었다. 대입제도에 대한 논쟁이 있을지언정 교육 전반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고교 성적 상위 20%의 줄을 어떻게 세우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신설대학이 늘면서 50%가 가는..
기후변화에 맞서는 환경파업 집회가 서울에서 21일,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27일 열렸다.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뉴욕에서 23일 열린 2019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연사로 나와 시민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세계의 청소년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주도하면서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저탄소 경제로 조기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녹색기후기금 공여액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내년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발전 목표 달성을 위한 민관협력회의인 P4G 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다. ‘세계 푸른 하늘의 날’도 제안했다. 2022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6기를 더 감축할 예정임도 전했다.기후과학자들의 예측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
대학에서 처음 만난 제자들이 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교수가 하자는 대로 통계 프로그램을 ‘돌리고’, 공대 수학 수업을 듣고, 공모전을 하느라 밤을 불사른 첫 제자가 취업을 했다. 처음 합격한 회사는 중소기업이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로 연봉의 얼마간을 보조금으로 지원받는 회사였다. 중소기업 가면 일 많이 하고 임금은 적어 주저하는 제자에게 “더 좋은 회사 붙기 전까지만 한다고 생각해” 하며 달랬지만, 계약직 연구원 일자리가 나자 그리로 자리를 옮겼다. 박봉이지만 시간 여유가 있어 일하면서 대학원을 다녀보겠다고 한다. 식사를 같이한 학생들은 동기가 회사에서 월급을 300만원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300만원. 10년 전 대기업 신입사원 세전 월급이다. 국민총소득(GNI)이 3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 30..
한·일 경제대전이 시작됐다. 8월2일 일본은 27개국으로 지정하고 있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일본에서 전략물자에 해당하는 1100여개의 제품을 한국으로 수출할 경우, 3년에 한 번 묶음 단위로 심사하던 것을 매번 각 품목별 개별 심사를 거쳐야만 가능하고 심사기간도 일주일에서 석 달여로 늘게 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 수출규제에 이은 후속 조치다. 부품·소재·장비를 주로 일본에서 조달해온 한국의 제조업체, 특히 중소기업들에 큰 제약이 될 전망이다. 일본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임을 언급해왔다.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 현금화 절차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에서도 행정부가 사법부의 결정에 개입하는 것이 헌법적 가치에 비춰 옳지 않..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7조원이 넘는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대우조선이 지난해 흑자로 전환했고, 내부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어 가던 올해 현대중공업(이하 현중)의 대우조선 인수·합병이 시작했다. 본계약이 완료됐고 5월31일 현중 주주총회(이하 주총)에서는 물적 분할을 통해 산업은행(이하 산은)과 현중이 공동출자하는 형태의 한국조선해양이라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회사가 탄생했다. 공정위와 해외에서의 기업결합 심사만 남았다. 최종 성패는 아직 알 수 없다. 공정위가 부적격 판정을 내릴 수 있고, 해외에서 LNG선 세계시장 수주잔량의 57%를 차지하는 대우조선과 현중의 결합을 독점으로 진단할 경우 부적격 판정이 날 수도 있다. 물론 준비를 잘하면 ‘운용의 묘’를 통해 성사될 수 있다.생채기가 나..
기초통계와 데이터 프로그래밍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친 지 5학기째다. 매 학기 지자체나 정부부처 공공데이터를 통해 멋진 그래프를 그리고 분석도 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 약속하지만, 많은 문과 학생들은 통계학의 간단한 수식 몇 개만 띄워도 질겁하기 일쑤다. 그래도 매 학기 몇몇은 두각을 나타내곤 한다. 혼자 씨름해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친구들이다. 높은 수준의 분석능력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알고리즘과 높은 수준의 통계학인데, 그것까지 사회학과 수업에서 다루긴 어렵다. 미적분학, 선형대수, 확률통계론, 이산수학 같은 공대의 수학 수업을 학생들에게 추천했다. 학과에서 날고 긴다는 학생들임에도 공대 수업이어서 겁이 났는지 성적은 기대하지도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