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논문으로 나온 이 책으로 얼마 전 출간됐다.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라는 부제가 인상적이었으나, 내용은 절규보다는 가족에게 기댄 청년들의 세계 이야기였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가족, 가족들이 바라보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지방대생은 공부로 성취를 하기는 어려웠기에 청년세대 모두가 도전하는 경쟁에서 이길 생각은 도무지 못한다. 공무원 시험도 도전은 해보지만 집중력 있게 돌파하기는 어렵다. 토익을 치르라고 권해도 해봐야 안된다는 생각에 고득점을 올릴 만큼 집중하지 못한다. 결국 지인을 통해 지역사회에 열려 있는 열악한 일자리를 찾게 된다. 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가르치고 상담을 통해 만나는 학생들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들이 생각하..
기말고사가 끝났다. 학교 정문 앞 광장에 ‘컴활(컴퓨터 활용능력)’ 부스가 생겼다.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는 비용이 공짜란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전한다. 의 장그래가 인턴을 시작할 때 갖고 있던 자격증이다. 공무원시험에서 컴활 1급은 1%, 2급은 0.5% 가산점을 줬는데 지난해부터 가산점이 없어져 사장된 자격증에 가깝다. 면담에 찾아온 학생들에게는 공부를 좀 해야 하는 다른 ‘영양가 있는 자격증’ 몇 개를 일러줬다. 고용노동부와 함께하는 사업도 기억에 남는다. ‘문과생을 위한 개발자’ 프로그램이다. 자바 스크립트 같은 프로그래밍 코딩을 배워 ‘반응형 웹프로그래밍’ 일자리까지 얻게 하는 것이 목표다. 취업 실적이 ‘쏠쏠했다’고 한다. 고학년 몇몇에게 들어보라 했는데 결..
출퇴근길에 간식거리를 살 때마다 학생들과 마주친다. 편의점 한곳에는 우리 과 학생 중 둘이 각각 주말 전일, 주중 저녁 릴레이로 알바를 한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학교 앞에서도 알바 하는 학생을 찾을 수 있다. 일식주점에는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시끌시끌한 복학생이 저녁시간을 책임지고 있고, 해장을 위해 들르는 카페에는 수줍은 신입생 남학생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먹자골목 전체를 뒤지면 줄잡아 우리 과 학생 십 수 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지난해에 비해 16.4%, 1060원이 오른 7530원이다. 실제 알바생들의 최저임금은 어떨까? 편의점 알바생들은 시간당 1000원 이상 덜 받는다고 한다. 그마저도 더 깎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부당하지 않으냐”며 “노동청에 신고하는 ..
오늘은 생산직의 교육과 숙련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생산직은 IT산업, 서비스산업과 금융산업 위주로 재편된 수도권에서는 잊혀진 이름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산업화 경제를 이끌었던 ‘산업 역군’이었고, 민주화를 이룰 때 앞장선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대형 사업장의 ‘대기업 귀족노조’라는 이름이거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말썽꾸러기나 한국 사회의 문제가 집약된 피해자로만 등장하게 돼버렸다. 풀어야 할 문제들은 방치되는 중이다. 우선 한국 사회에서 생산직에 대해 미디어가 연출한 장면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울산이나 창원 등 산업도시에서 경기침체나 기업의 위기가 올 때, 가장 먼저 미디어에서 뽑아내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불 꺼진 ○○○”. 불 꺼..
얼마 전 책 읽기 모임에 다녀왔다. 라는 소설집을 읽고 느낀 점을 30~40대들이 토론하는 자리였다. 소설은 연애, 결혼준비, 결혼, 육아 등을 여성의 시선에서 풀어낸 내용을 담았다. 성차별적인 직장과 가부장적인 가족 때문에 한국이 여성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일하며 살기에 가혹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몫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여전히 많지만, 조직은 인정해주지 않는다. 가정에서 느끼는 책임감은 조직생활에서 무책임으로 해석되고 만다. 보육시설은 부족하고 문제가 많기 일쑤다. 남성 육아휴직도 걸음마 중이다. 이런 구도를 간파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이 결혼, 출산, 육아를 부담스러워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농경사회’에 태어난 세대의 전통적 가족관은 여전하다...
지난달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된다는 소리가 돌았다. GM 본사 신차 물량 배정에서 군산공장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최근 가동률이 20% 남짓했다는 말에 앞으로도 선전이 힘들겠다 싶었다. 생산라인 중 80%가 섰다는 이야기다. 지난해에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가동을 중단했다. 군산 사람들의 설연휴가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기사를 읽다가 괜히 댓글창을 열어 봤다. 추천수가 많은 댓글들은 모조리 날이 서 있었다. 가장 많은 댓글은 “귀족노조 지원 결사 반대” “혈세지원은 국민투표로 하자”였다. 댓글을 넘기려니 숨이 가빴다. 이제 한국에서 더 이상 수출대기업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일말의 동정도 얻기 힘들 것 같다. 1987년 즈음 전국의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기본권을 지키..
얼마 전 종영한 그리고 지난주에 다시 시작한 을 열심히 보는 중이다. 요식업 사업가이자 요리 전문가인 백종원이 창업하려는 청년이나, 식당을 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방송이다. 이 소자본으로 창업하려는 청년층을 타깃으로 삼았다면, 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후 쇠락한 서울 이화여대 앞 골목 가게들을 찾는다. 두 가지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먼저 에서 ‘안 좋은 의미’에서 화제가 된 청년 출연자의 표정이다. 푸드트럭에서 팔려고 내놓은 메뉴와 그 식재료에 대한 질문을 받고 중언부언하고 변명하다 굳어버린 그의 모습은, 결국 참지 못해 화를 내버리고 마는 백종원의 표정과 함께 공유됐다. 방송 이후 청년의 태도를 향한 비난이 많았다. 들으려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는 비난받기..
연구실에 있을 때 면담하러 오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들은 진로를 묻기보다, 책벌레 선생에게 책 이야기를 묻고, 연애 상담을 하고,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가곤 한다. 찾아오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왜 남학생들은 배낭여행을 잘 가지 않을까?” 몇몇은 외국에 간단다.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번 돈과 용돈으로 방학이 끝날 무렵 삼삼오오 일본이나 중국을 갈 거라고 했다. 극소수지만 부모와 함께라면 여행거리는 좀 더 길어진다. 싱가포르나 호주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방학 하기 전까지 줄창 안 가본 나라에 꼭 가보라고 당부했지만, 개강 후 물으면 정작 해외에 나간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여학생들이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잠시 귀국한 선배는 비행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