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보고 외국인들이 많이 하던 말은 “빨리빨리!”였다고 한다. 동작도 빠르고, 성격도 급하고, 빨리 먹고 등등의 예시가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과연 “빨리빨리!”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몸이 굼뜨거나 말이 느릴 때 혹은 밥을 천천히 먹는다고 “빨리빨리!”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서다.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느릿느릿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답답한’ 것을 싫어한다. 답답하다는 것은 뭘까? 국어사전에 ‘답답하다’를 표제어로 입력하면 “애가 타고 갑갑하다”와 “융통성이 없이 고지식하다”고 풀이한다. 애타는 데 답을 안 줄 때를 떠올리면 “속이 터진다” 혹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떠오른다. 빨리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융통성 없이 고지식한 사람..
조선산업 빅딜, 수소경제, 삼성르노자동차 파업. 최근 경제 현안에서 제조업 이야기를 빼놓긴 어렵다. 중요한데 늘 빠져 있는 것은 내부에서 일하는, 특히 기술과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좋은 일자리라는 평판을 좌우하는 것 중 큰 건 임금이다. 노동사회학 연구들을 살펴보면 임금은 크게 두 가지의 구조적 영향을 받는다. 먼저는 직장의 크기이다. 계약직, 촉탁직 등 비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회사가 크면 임금이 더 크다. 그래서 부모들과 선배들은 대기업에 가라고 한다. 두번째는 노동조합의 유무다. 노조원이면 임금단체협상을 통해서 노조가 없는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임금 차원에서 손해를 덜 볼 수 있다. 고용 보장을 위해서도 노조가 있는 게 낫다. 시간이 누적될수록 노조가 있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 편차를 만..
정부가 수소경제 선도를 천명했다. 수소경제는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경제시스템이다. 수소는 흔하다. 우주의 75%를 차지하며, 지구상에 10번째로 많은 원소다. 백금 등을 촉매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백금보다 훨씬 싼 루테늄 촉매 개발도 초입이다. 수소는 방전이 있는 배터리 보관과 달리 액화 상태로 부피를 줄여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동력원으로 쓸 때 탄소 배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1월17일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2040년까지 수소(연료)자동차 620만대를 생산하고 그중 330만대를 수출해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겠단다. 내수 비중이 절반에 가깝다는 이야기는 국내 시장에서 구동률을 높여서 테스트베드로 활용한 후 시행착오를 개선해 세계시장에서 선발주..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집중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단 한번도 뒤집히지 않았다. 통계청 2017년 지역소득(잠정) 추계 자료와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2017년과 2018년 시·도 인구통계를 봤다. 인구를 보자. 서울의 인구 중 약 10만명(0.9%)이 한 해에 줄어들었으나 경기도의 인구는 20만명(1.53%)이 늘었다. 인천도 0.2% 정도 늘었다. 수도권 인구비중은 대한민국 인구의 50%를 채우고 있었다. 사실 더 크다고 봐야 한다. KTX와 국철로 1시간 거리로 연결된 충청권을 포함하면 인구 중 60%가 된다. 충남은 1만명(0.5%)의 인구가 늘었다. 충북도 5000명(0.3%)의 인구가 늘었다. 행정기관이 대거 이전한 세종시에는 3만명(12%)의 인구가 늘었다. 그사이 호남(광주·전북·전남)은 3..
학생 몇 명이 겨울방학 공기업 인턴십에 참여하고 싶다고 자기소개서를 보여줬다. 대학 입학할 때도 자기소개서를 써보지 않은 학생들의 글은 손댈 곳이 많았다. 지원동기, 자신의 강점과 약점, 인생에서 어려웠던 경험 등을 분량에 맞춰 써내는 일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몇 가지 조언을 해주니 그런 대로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가능하면 대학 입학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주요한 일들을 표로 만들고, 자격증이나 교내 수상 실적이라도 있으면 하나도 잊지 말고 챙겨두라고 했다. 합격한 선배의 조언이 가장 좋지만 접하기 어려우니, 아쉬운 대로 다니다 온 선생이 있으니 얼마든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모두 원하는 일자리 채용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시험에 상처 입었거나..
스마트폰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기능 중 하나는 가계부 앱이다. 술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에 계획성 없는 소비를 좀 통제하고 싶어서다. 예전에는 은행과 카드사에서 문자가 오면 그 내용을 복사해 앱에 붙여 넣는 방식으로 가계부에 기입할 수 있었다. 이제는 공인인증서를 등록하면, 매 시간 쓴 돈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고 자산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신규 기능이 가끔 마음을 불쾌하게 한다. 앱은 돈 쓰고 저축하고 투자하고 대출받는 상황을 통해 내 신용등급을 예측한다. 식당 이름이나 서점 이름 등을 통해 지출 카테고리를 추정한다. 좀 지나면 거의 모든 지출 출처와 범주를 빅데이터를 활용해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지출 기록도 데이터베이스에 누적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 회..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생계형 자영업’이 늘어났다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상식에 가까웠다. 회사에서 명예퇴직해 치킨집을 차렸다 망하고 편의점을 부부 맞교대로 운영하다가 병에 걸리고 빚이 생겼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의 반론 중 하나는 자영업자들에게 지대한 타격을 준다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 역경을 딛고 일어난 ‘흙수저’ 청년 창업가의 신화가 있다. 그런데 논의를 위한 기초적인 질문은 누락되어 있는 것 같다. 자영업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누가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하는가? 자영업자의 비중과 숫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비슷한 소득 수준의 국가 대비 자영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아직도 구조적으로 더 줄어들 여지가 많다. 최병천 전 국회의원 보좌관이 공개한 국회 토론..
영국 여행을 다녀왔다. 누군가는 드라마 의 배경인 런던 베이커가(街)를, 현대미술의 성지인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을 권했지만 정말 가고 싶은 곳은 따로 있었다. 술꾼인 내게는 펍(pub)이 그랬다. 매일 아침과 점심을 포만감 있게 챙겨 먹었는데, 그건 펍에서 맥주, 정확히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주조한 지역 수제 맥주(크래프트 비어)만 줄곧 마실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에 5박6일 머무는 동안 런던과 옥스퍼드의 펍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락날락거렸다. 펍. 퍼블릭 하우스의 약자다. 서민과 여행자들의 술집이다. 예전 펍들은 숙박을 겸해 ‘여관(tavern)’이라는 이름을 붙인 경우도 많다. 단층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2층 이상일 경우 위층에서는 요리와 간단한 맥주 한두 종이나 와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