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고 ‘희귀종’이란다. 그만큼 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기껏 손전화(스마트폰) 하나 없다고 희귀종이라니 좀 심한 것 아닌가? 손전화가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다. 처음에 ‘벽돌’ 또는 ‘냉장고’라는 별명으로 나왔던 큼지막한 휴대폰부터 날렵한 스마트폰까지 줄곧 손전화를 썼다. 여러 가지 앱을 깔고 지하철 시간,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2012년 여름 없애 버렸다. 마주 앉은 이와 진정성이 통하는 소통을 해야 한다든가, 현대 문명의 이기에서 좀 벗어나 보겠다는 등, 거창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손전화가 없으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전북 부안 변산공동체에서 몇 개월 머물 때였다. 둘레에 아무도 없는 시골집이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집 전화도 없었다...
만나지는 못하나 알게 된 아이들이 있다. 민정이는 해마다 어버이날과 엄마 생일에 편지를 썼다. 또박또박한 글씨는 초등학생 때나 중·고생 때나 한결같다. 5학년 때 쓴 편지를 함께 읽고 싶다. “아니 글쎄 내가 이번에 엄마 생일도 모르고 넘어갈 뻔한 것 있지. 엄마 갑작스럽지만 퀴즈야. 나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랑, 돈, 지위, 명예, 친구? 아니 물론 이것도 소중하긴 하지만 오로지 정답은 No.1 엄마 하나뿐이란 거 알지? 엄마를 태어나게 해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려. 엄마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세상에게 감사드려. 엄마를 웃게 한 에 감사해.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한 엄마에게 감사해. 나를 이 행복한 세상에 두 발을 디디게 해준 엄마에게 감사해.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시골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아이가 생겼죠. 아이를 서울에서 낳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생각보다 일찍 내려오게 됐어요. 악양에서 봄이가 태어났지요.” 2008년 가을 경남 악양으로 왔다. 악양에서 나고 자란 첫째 아이는 겨울이 지나면 초등 2학년이 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년에, 이곳 경남은 도민과 ‘여민동락’하신다는 홍준표 도지사님께서 무상급식을 탁 끊었다.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호기로운 것은 감히 배우지 못하고 마음만 쪼그라들었다. 지갑도 마찬가지. 결국 교육청 예산으로 되는 만큼만 급식비를 지원하기로 해서, 전교생이 100명이 넘지 않는 작은 학교 아이들만 급식비를 내지 않고 밥을 먹었다. 이 방침이 결정되던 작년 1학기,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98명이었..
쌀쌀한 날이지만 하늘은 맑고 볕이 따뜻하다. 모든 것들이 숨도 안 쉬는 듯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산촌 마을이 거울처럼 고요하다.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던 햇살은 샛노란 커튼이 차르르 흘러내리듯 산허리를 휘감더니 이제는 앞마당까지 내려왔다. 까뭉이와 복실이도 기지개를 쭉 켜면서 개집에서 나와 양지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문득 그의 안부가 궁금했다. 큰 담장을 등지고 북동쪽으로 나 있는 그의 잠자리에도 볕이 들었을까. 햇살 비치는 곳을 따라서 앉은 자리를 옮기고 있을까. 이미 도시의 분주함이 그를 삼켰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해가 떴는지 햇살이 비치는지 느낄 겨를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관심은 대기의 온도다. 한겨울에 텐트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근 한 달째 노숙생활을 하는 그 역시 날이 흐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