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는 매화나무가 몇 그루 있다. 매화가 한송이씩 피기 시작하는 것에 맞추어 봄 밭일을 시작한다. 봄맞이로 맨 처음 하는 일은 겨울을 뚫고 저절로 올라온 밭에 난 나물을 캐는 일이다. 그러니까 씨앗을 뿌리기도 전에 자연이 선물한 봄 선물을 잔뜩 얻어 들고 오는 것부터 하는 셈이다. 아이들도 밭에 나와 호미를 쥐고 쪼그려 앉았다. 온통 냉이밭이다. 하나둘 꽃대 올라오는 것도 있으니 보이는 족족 캔다. 냉이 향이 달곰하다. 가을에 씨 뿌려 놓은 시금치도 캐고,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겨울 난 상추며 봄동 몇 포기 남겨 두었던 것도 마저 해 왔다. 시금치와 냉이를 커다란 고무 대야에 쏟아 놓고 하나씩 다듬는다. 조금 구부정하게 앉았다. 저녁에는 찬바람이 불어서 아궁이에 불을 때 방바닥은 절절 끓게 했다. 엉덩이..
언젠가부터 걸려오는 전화의 많은 수가 뭘 사라는 상품광고 전화거나 돈 싸게 빌려주겠다는 대부업체 전화다. 자동차보험에 들라는 전화는 대충 대답하고 넘기면 어김없이 다른 직원이 전화를 또 한다. 계약을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런 전화들은 뚝 그친다. 얼마 전에 전화가 왔는데 올해도 고추농사 하느냐고 했다. 면사무소와 농협, 옆 동네 아는 사람을 떠올렸지만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전화판매 직원이었다. 전 국민에게 이런 전화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농업경영체 등록을 할 때 고추농사 짓는다고 써냈던 것 같은데 그걸 알아낸 걸까? 우리 집에 고추건조기 없는 것을 농기계회사 직원이 안다는 게 께름칙하다. 농기계나 자동차가 아니라 치질 약이나 에이즈 약을 먹는다고 했을 때, 그걸 누군가 다 꿰고 있다고 생각..
집에 책을 쌓아 놓을 곳이 없어 작은방 앉은뱅이책상에도 잔뜩 쌓아 놓았다. 어느 날 보니 위 판이 휘어버렸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책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 구석구석에도 책이 쌓여 있어 어디 한 곳 쌓아 놓을 데가 없다. 침대가 문제다. 내 방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침대만 없으면 그곳에 책장을 들여놓아 깨끗하게 정리하면 될 텐데 저걸 어떻게 없앨까. 침대는 1998년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산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침대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아니, 딱 3일 잠을 잤다. 그런데 따뜻하지도 않고 허리가 아팠다. 결국 침대와 장롱 사이 옆 좁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기 시작해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그러니까 거의 20년 가까이 사용하지 않는 침대가 내 방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
무기력하고 못났다.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제 1야당의 모습은 딱 이랬다. 거대여당에 끌려다니기만 했다. 협상다운 협상도, 싸움다운 싸움도 본 지가 언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과반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그들의 모습은 ‘아무것도 못한다’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에 가까웠다. 그 과정에서 진보적인 사람들 역시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정치가 가능은 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소수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미래를 위해 지지하지만 현재의 선거제도와 사회적 환경에서 한두 석을 얻기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다.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제 1야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들이 무기력하게 물러나기..
“양치기는 조그만 자루를 가지고 와서 도토리 한 무더기를 탁자 위에 쏟아놓았다. 그는 도토리 하나 하나를 아주 주의 깊게 살펴보더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골라놓았다. 그는 아주 굵은 도토리 한 무더기를 모으더니 그것들을 열 개씩 세어 나누었다. 그러면서 그는 도토리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 중에서도 작은 것이나 금이 간 것들을 다시 골라냈다. 그렇게 해서 완벽한 상태의 도토리가 100개 모아졌을 때 그는 일을 멈추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프랑스 자연주의 작가 장 지오노가 쓴 의 첫 장면이다. 스무 해 전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은 이래 이 첫 장면은 내 머리에 깊이 각인되어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나를 깊은 명상의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단지 기억과 인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와 똑같은 일을 ..
어머머머.” 박순희 선생(전 섬유노조 원풍모방지부 부지부장)이 사진 한 장을 내밀자 황선금 선생(원풍동지회 회장)이 놀란다. 책갈피에서 발견했다는데, ‘직단 뜬올 바디 착오 방지’라는 표어를 새긴 직조기 앞에 ‘1975년 스물여덟 살 박순희’가 서 있다. 다림질한 작업복, 풀 먹인 옷깃, 부드러운 미소가 당당하다. 기계 네 대를 다룬 기술자였다. 40년이 지났건만 흑백 사진이 하나도 낡지 않았다. 두 선생에게도 민주노조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또렷하다. 이들이 마주 앉은 곳은 32년 된 원풍 노동자의 집이다. 영등포역에서 신길동 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데, 1982년 정권이 폭력으로 강제 해산시키고 해고한 원풍노조 여성 노동자들이 1984년에 마련했다. 200여 조합원을 모이게 하고 곳곳에서 활동하게 한 터..
세 아이와 함께 학교까지 걷는다. 큰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고 둘째는 그 학교에 딸린 유치원에 다닌다. 갓 두 돌이 지난 막내는 누나와 형이 학교 가는 길에 함께 따라 나서서는 언제나 제가 앞장 서 걷는다.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갈 채비를 하느라 아이들을 윽박지르거나 다그치다가도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서면 금세 웃고 떠들면서 학교까지 걸었다. 이곳 학교는 시골 학교 치고는 아이들이 많이 다닌다. 초등 전교생이 100명쯤.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가 꾸준히 새로 이사를 온다. 그런데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집도 시간이 늦거나 하면 차를 타고 나오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학교까지 걷는 아이는 손으로 꼽을 만큼이다. 자동차가 많아진 까닭에 ‘걸어서 어디에 간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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