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구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침 무렵, 길가에 길게 차들이 늘어서 있고, 그 끝에 꽃상여가 있었다. 상여꾼이 스무 명도 넘게 있어야 할 것 같은, 희고 높은 포장이 눈부신 상여. 처음 봤다. 여기 내려와서는 십여 년 전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상여를 앞세워 걷는 것을 보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사이 다 없어진 줄만 알았다. 아직도 꽃상여를 메는 집이 있을 줄은 몰랐다. 시골에 내려오니 누가 죽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찾아갈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어도, 그런 소식을 들을 때는 돌아가신 이가 어찌 살았는가, 돌아가실 때는 어떠했는가 하는 것도 함께 듣게 마련이다.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벌써 우리집 아이들은 피붙이가 아닌 이웃의 장례에도 마지막까지..
언젠가부터 환경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불문율이 생겼다. 농사 없는 환경운동은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인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농업의 환경 역할이 크다는 방증이 되겠다. 이를 농사의 공익적 가치라고도 하고 환경보전적 기능이라고도 한다. 농경제학에서도 농업의 두 가지 측면을 중요시하는데, 하나가 농산물의 생산성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보전적 기능성이다. 환경보전적 기능이라는 개념이 그냥 등장한 게 아니다. 농업의 ‘타락’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 농업은 공익성을 많이 잃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농’이 등장하게 된다. 소농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농사의 본래 의미와 뜻을 되새기면서 농업이 가진 공익성과 환경보전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
나는 검정고시 출신이다. 1974년에 중학교학력인정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한양공업고등학교를 들어갔다. 졸업은 하지 못했다.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기도 했고,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2학년 1학기 때 자퇴를 해 버렸다. 그리고 공장이나 현장 노동일을 하면서 살았다.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데 자부심은 아니더라도 부끄럽지는 않았다. 누가 어느 학교 나왔냐고 물으면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했다. 그 당시 고등학교 교사들에게도, 동급생들에게도 무시당하지 않았다.(지금 생각하면 내가 사회생활을 하다 2년 늦게 들어갔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내버스를 20년 동안 운전했는데, 동료 기사들에게도 무시당하지 않았다.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못할 게 없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소식지도 펴냈고 글을 써서 시내버스 현장의 ..
단원고 2학년 10반’, 그 교실에 있던 친구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해 작가들이 그이들 자취를 좇아 글을 썼다. 앞으로 세상과 만날 책 제10권을 먼저 읽었다. 보현은 틈만 나면 아빠 볼에 쪽, 엄마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요리사에서 건축가를 거쳐 실내 장식가로 진로를 굳혔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온 고가구를 고친 솜씨가 제법이다. 지혜가 원하면 엄마는 발레든 노래든 피아노든 그림이든 힘닿는 대로 가르쳤다. 지혜는 쉽게 배우고 놀이처럼 즐겼다. 시립 합창단원이 되어 요양원으로 위문 공연도 다녔다. 다영은 호기심과 질문이 많았다. 말하기를 좋아해 ‘30분 말 않고 가만히 있기’ 벌을 힘들어 했다. 다영은 갖가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깨알 일기와 깨알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민정은 어릴 때 이마..
마을 어귀 방앗간 앞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방앗간보다 크고 높게 자란 나무. 곡식 가마니를 경운기에 싣고 방아를 찧으러 온 사람들은 흔히 그 나무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나락 찧는 것을 기다렸다. 그 나무가 얼마 전에 잘려 나갔다. 더운 봄날에 장정 셋이 엔진톱을 들고 한나절 꼬박 나무를 베어 날랐다. 그리고 이제 그늘 없는 방앗간도 머지않아 헐릴 것이다. 농사짓는 시골에서 마을 사람들이 때마다 드나드는 곳이 방앗간이다. 나락이나 보리를 찧고, 밀가루를 빻는다. 수수며 메밀 같은 잡곡도 방아를 찧어야 먹는다. 온 마을 한 해 곡식 농사가 방앗간을 거쳐 가야 마지막으로 갈무리되는 셈이다. 나락 거두는 때가 되면 방앗간 앞마당에는 나락 가마니들이 처마에 닿을 듯 쌓이고, 몇 날 며칠 늦은 밤까지 불..
한낮의 햇살이 뜨겁다. 풀매기 딱 좋은 날씬데 방해꾼이 생겼다. 마늘밭을 맬 때는 마늘밭을 짓밟았고 양파밭으로 옮겨 풀을 매면 또 그쪽으로 와서 여린 양파줄기를 밟아 부러뜨렸다. 괭이로 감자 골을 타니 어느새 세 놈이 감자 골을 하나씩 꿰차고 쭉 엎드려 앞발 위에 얼굴을 놓고 눈까지 감는다. 괭이로 엉덩짝을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고 덩치로 버틴다. 복실이, 까뭉이, 솔이. 이렇게 세 놈이다. 농장 빈터로 개집 두 개를 옮겨와서 큰 말뚝을 박고 두 놈을 매놨더니 세 놈이 다 거기서만 논다. 다행이다. 채식하는 주인을 닮아서인지 민들레 이파리도 먹고 세어빠진 냉이도 뜯어 먹는다. 기특하다. 밤에는 집을 지키게 하려고 솔이만 데려다 맛있는 음식을 줬는데 아침에 보니 복실이가 말뚝을 쓰러뜨리고 집으로 와서 솔이..
“난 왜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찔까?” 이 말만 하면,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이들이 나를 째려본다. 난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쌓여서 하는 소리다. 남들처럼 삼시 세끼 꼬박 챙겨 먹는데 53㎏이 뭔가. 보는 사람마다 나보고 말랐다며 어디 아프냐고 하니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을 수가 없다. 내 나이 올해 쉰아홉. 나는 5년여 동안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 딱히 아픈 데도 없고, 의료계를 고발한 책 몇 권을 본 뒤로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관리해 주기 위해 건강검진을 하는 게 아니라는 의심도 들었기 때문이다(최근에는 이라는 책도 나왔다). 무엇보다 국가가 그렇게 국민들 건강을 걱정해 준다면, 기업 환경부터 바꾸고 열악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부터 없앨 일이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면 건강한 이도 환자가 될 ..
3월 마지막 토요일 아침이었다. 9시 무렵 3학년 아이 둘이 십일시마을도서관에 왔다. 학교 가는 날은 엄마가 깨워야 일어나는데, 쉬는 날엔 절로 일찍 눈이 떠진단다. 달마다 한 번 그림·동화책 작가가 오는 ‘책놀이터’가 여섯 번째 열리는 날이다. 10시 시작을 앞두고 진도공공도서관에서 ‘책나눔’ 동아리로 만난 여성들이 자리 정리를 한다. 여러 사람과 이 일을 꾀한 동화작가 임정자씨가 오는 아이마다 이름을 불러준다. 5학년 아이가 노란 종이 이름표를 달며 묻는다. “○○○ 작가 선생님 오세요?” 석교초등학교 전체 89명 아이들에게 동화작가 89명이 지난해 가을과 겨울 책을 보냈다. 올해는 졸업한 6학년을 빼고 새로 들어온 1학년을 더해 78명 어린이와 78명 작가가 ‘책짝꿍’을 맺는다. 철마다 작가가 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