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연희문학창작촌에서는 이색 파티가 열렸다. ‘문학, 번지다’ 프로그램의 일환인 ‘문학키친’의 종강 자리였다. 독자 10명이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을 직접 요리해 음미하며 주인공의 심리와 서사의 흐름을 체험하는 기획이었는데, 마지막 시간에 재현한 식탁은 나의 단편 였다. 음식이 소설에서 의미심장하게 등장하게 된 것은 21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예비평가인 E M 포스터의 견해에 따르면, 소설에서 음식의 역할은 등장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미미한 정도에 불과했다. 포스터가 대상으로 삼은 소설들이 20세기 전후에 생산된 작품들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드물었다. 음식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고 서사의 흐름을 진전시키는 유럽의 인상적인 소설들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와..
내가 소설가가 된 것은 진로에는 없던 전혀 뜻밖의 사건이었다. 불문학도였던 나는 책상에서 외국어와 씨름하며 공책이나 종이쪽지에 무엇인가를 끄적거리곤 했다. 어느 날, 어떤 충동에 이끌려 시(詩) 같은 것을 썼다. 마침 대학문학상이 공모 중이어서 투고했다. 그리고 잊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그것을 계기로 문예지의 청탁을 받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고백하자면, 그날까지 나는 세상에 문예지라는 것이 있는 줄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글을 써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일찌감치 점지되어 있었던 것인지, 대학문학상이 매개가 되어 나는 문예지라는 미지의 영토에 발을 들였다. 거기에서 한국문학이라는 살아 꿈틀거리는 세상을 만났고, 압도당했다. 그 한가운데에 김윤식이라는 거목이 자리잡고 있..
파리에 가면, 찾아가는 집이 있다. 그 집에는 시인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살고 있다. 방금 쓴 이 문장은 어감(語感)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시인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남편’이라 했으니. 처음 주소를 들고 찾아갔을 때, 그 집에 시인만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주소지에 이르자 기대했던 문패가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위를 빙빙 돌았다. 낮이 긴 여름날 오후였고, 나는 20대 청춘 시절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다. 그곳을 꿈꾼 지 십년이 되어가는 즈음이었다. 나를 그리로 이끈 그의 외침이 귓전에 메아리쳤다.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이어 사르트르의 속삭임도 따라붙었다. ‘그는 자신에게 합당한 삶을 영위하지 못했다.’ 헛발길로 끝낼 수는 없었다. 나..
구월이면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다. 시처럼 음악처럼 소설의 한 대목 음송하다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이다. 해가 뜨는 부산 동쪽 해운대의 집에서 노을이 아름다운 서쪽 낙동강 하구의 학교까지, 터널 셋과 바다다리와 2차선 고가도로를 달려 35㎞의 거리를 오갈 때, 부산역에서 KTX를 타고 경상도와 충청도와 경기도를 지나 서울역까지 450㎞의 장거리를 오갈 때, 시처럼 음악처럼 음송하는 대목들이다. “사방 100리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멀리 기차에서 바라보면, 콩브레는 오로지 마을을 요약하고 대표하며 먼 곳을 향해, 마을에 대해, 마을을 위해 말하는 하나의 성당에 지나지 않았고, 또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성당은 들판 한가운데에서 바람에 맞서, 마치 양 치는 소녀가 양들을 감싸듯이, 주위에 모여 있는 집들의 ..
최근 개봉한 난니 모레티 감독의 는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안겨주었다. 창작자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그리고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현실이란 어떤 것인가. 이런 질문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와 죽음의 문제는 창작자에게 창작의 동력인 원체험(原體驗)의 영역이다. 창작자들은 원체험의 내용을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작품으로 풀어내거나 대표작의 질료로 삼으면서 세상과 소통을 꾀하고, 나아가 불멸을 꿈꾼다. 작가의 어머니가 작품 안팎에서 동고동락하는 일화들을 기억한다. 이청준의 단편 ‘눈길’에는 눈 내린 날 이른 아침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나가 아들을 떠나보내고 아들의 발자국을 되밟아 오면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소리쳐 부르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이 ..
전쟁이 나도 목포나 벌교, 담양에 살면 최소 하루 이틀은 더 목숨이 붙어있겠지. 핵폭탄이 터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날마다 벌어먹고 사는 일이 전쟁 같아서 총칼 든 군인들이 대치하는 것만 전쟁은 아니지. 치매 걸린 영감 대문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할매는 영감을 방에 가둬놓고 열쇠를 채운 뒤에 밭일을 나선다. 남의 동네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동네 이야기. 아저씨가 쇠똥을 싫어해 마당에다가 똥무더기를 놓아두기도 한대. 지뢰가 따로 없지. 다음주 압구정에서 개인전이라 문 닫아걸고 그림만 그렸는데 친구들이 계곡에 가 낮술을 마시잔다. 울화증에 못 이긴 척 끌려 나갔지. 밖에서 열쇠를 채우기 전, 자주 밖으로 나가 놀아야지. 계곡으로 물놀이 가는 여인들 속에 사내는 나 혼자. 바리바리 짐도 많고 수박은 뭘..
계곡을 넘어가자 드넓은 바다를 향해 자그마한 포구 마을이 고즈넉이 펼쳐졌다. 대정(大靜), 안덕(安德)계곡, 대평(大坪)이라고 쓰인 도로표지판을 따라온 길이었다. 큰 고요, 안락한 계곡, 평평하게 뻗은 들. 눈으로는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좇고, 머릿속으로는 한자(漢字)의 뜻을 새기며 나아갔다. 장미는 어김없이 집 앞에 나와 길모퉁이 쪽으로 목을 비스듬히 빼고 나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알려준 주소를 향해 길 이쪽 저쪽 집들과 마을의 형세를 가늠하며 코너를 돌던 중이었다. 장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반가움을 압도하는 친밀하면서도 낯선 아득함이 밀려 왔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부산도 아니고, 서울도 아닌, 제주도의 작은 포구마을의 허름한 농가에 장미와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이. 집은 마을길에 ..
제주도에는 10년 만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면서 보고 싶은 한 사람을 생각했다. 부산에 내려가 만난 인연이었다. 소설 쓰는 선생과 제자로 대학원에서 몇 년을 동고동락했는데,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 편집자가 되었다. 성은 장이고 이름은 미였다. 그러나 누구도 성과 이름을 따로 떼지 않고, 장미라고 불렀다. 장미는 꽃이 품은 매혹적인 향과 고귀한 화려함보다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들꽃처럼 싱그러움과 소박함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장미를 만나고 나면 그동안 알았던 도도한 꽃 장미는 잊어버리고 주변을 환하게 해주는 기분 좋은 표정을 기억했다. 제주로 향하는 비행시간 동안 장미가 그동안 내게 보낸 편지들을 떠올렸다. 홍대 앞에 등을 대고 누울 방을 구했다는 편지, 첫 기획을 맡았다는 편지, 첫 책을 만들었다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