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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소식이 반가워라. “네가 형제를 만났는데, 둘 다 벌써 종이 무더기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던 터라, 이제 와서는 뭔가 새롭고 특별한 것을 말하고자 해도 할 말이 없다.” 남태평양 사모아 섬마을 추장 투비아비가 이방인 빠빠라기에게 남긴 말. 이 글도 신문에 실린다만, 잠시 종이 무더기를 덮고 창문 밖의 만추와 황홀한 첫눈을 내다볼 일이다. 산골엔 온종일 기다려도 인기척도 없고, 대신 새들이나 들고양이,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유기견의 일가만이 보일 뿐. 추위가 찾아오니 대비하느라 좀 바빴으며 출타도 빈번. 개신교 교회협과 천주교, 정교회가 함께하는 문화제의 ‘예술감독’을 작년부터 맡고 있는데, 일로 서울행이 잦았다. 그림을 걸고 떼고 하다가 정작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산골 풍경과 멀어지고 말았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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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지인이 고구마를 캤다고 한 상자 보내왔다. 상자를 열자마자 흙냄새부터 났다. 토실토실한 자줏빛 고구마. 옛사람들이 겨울이면 주식으로 먹기도 했지. 반가워서 한 소쿠리 일단 찌고 물김치를 꺼내 호호 불며 맛봤다. 밤엔 난롯불에 구워 먹어보기도 했는데, 올해 첫 군고구마였다. 군고구마 장수들이 도회지 골목마다 지키고 섰던 기억들. 이젠 마트에서 기계로 구운 군고구마를 팔기도 하더군. 맛은 그대로인데 분위기 운치는 영 아니었어.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엔 일본 시골에서 고구마와 토란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가을이면 토란 모임을 만들어 모이고, 토란 쪄서 된장국을 해 먹었대. ‘토란, 무, 당근, 우엉, 파, 버섯, 돼지고기를 넣고 육수로 끓여서 간장이나 된장으로 간을 한 토란국.’ 최근 대학생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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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거나, 귀를 틀어막고 사는 자들을 보면 배짱이 두둑한 건지 아니면 무시를 하는 건지. 귀가 있으나 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들을 가리켜 사막의 예수는 “들을 귀가 없는 자들”이라 별명을 붙여줌. 장애인이거나 병으로 인해 소리를 잃은 이들은 예외겠지. 음악계의 청각장애인은 베토벤이 유명해. 미술계엔 그렇다면 고야가 있겠다. 사진이 없던 시대 초상화의 대가는 단연코 고야였다. 고야가 먼저 귀머거리 신세가 되고 10년 후에 베토벤이 따라서 청각을 잃었다. 귀를 잃고 고야는 악몽과 환상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명과 두통 현기증에 시달렸다. 시골에 집을 구해 요양을 했는데, 아예 집 이름을 ‘귀머거리의 집’이라고 써서 붙였다지. 귀를 사용하지 않는 방면의 대표는 사오정.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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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밭은 수시변동. 요샌 감밭. 보통 새들에게 다 내주는데, 올핸 제법 감이 많이 달려 절반을 땄다. ‘든부자난거지’ 식으로다가 속배가 부르네. 벌바람이 불더니 밤엔 기온이 뚝. 더위와 추위가 일주일 간격을 두고 물똥싸움. 고구마를 캐낸 황토 구릉을 보니 아는 스님 두상만 같구나. 친구 스님 얘기, 동자승 시절 때때중이라 놀렸는데,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고. 어른이 되니 이젠 민머리를 보고 때까중이라 놀리는 애들까지 있더란다. 웃어버릴 법력을 얻은 스님은 누구에게나 합장하고 성불을 빌었지. 어릴 때 마을회관과 교회에만 전화기가 있었다. 산속 가난한 암자엔 전화기가 아직 없었다. 이장이 출타해서 다급한 스님은 교회를 찾아와 전화 한 통 청했는데, 목사인 아버지와 두 분이 차담을 나누는 걸 신기하게 구경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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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마다 평생교육원, 산학협력단 같은 게 있어서 한 과목씩 가르치는 기회가 생긴다. 나는 음악 선생인데, 클래식과 월드뮤직을 나눔. 이래 봬도 엄마 배 속에서부터 태교를 클래식 음악과 바흐의 찬송가로 한 몸이시다. 말이 음악이지 관련된 이들을 만나 인생 상담까지 해준다. 수염과 머리를 길게 땋고, 고양이가 제 털을 핥듯 자주 쓰다듬으면서 정치인의 멘토를 자처하는 얼치기 도사 따위는 아니니 염려 마시길. 청년들에게 어떻게 살고 싶냐 물으면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대답들 한다. 그러나 평범하게 살다 죽기가 어디 쉽간디? 평범한 얼굴과 평범한 몸으로 평범한 학벌에 평범한 직장, 평범한 연애결혼, 아니면 평범한 솔로. 평범한 자녀들과 평범한 중년의 안온한 삶. 평범한 노인네의 평범한 죽음이 그게 말대로 쉽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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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은 하나하나 별처럼 총총해. 어둡다고 하면 뒤따라 밝다고 하는 말이 떠오르지. ‘어둡’ 하면 입을 다물지만 ‘밝’이라고 하면 입을 열지. 콜드플레이와 BTS가 요즘 같이 입을 열어 노래해. “어둠이 내겐 더 편했었지. 길어진 그림자 속에서… 그들은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거라 했지. 우리가 다른 곳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내 별이자 나의 우주. 지금 이 시련도 결국엔 잠시. 너는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밝게만 빛나줘. 우리는 너를 따라 이 긴 밤을 수놓을 거야.” 낯선 이방인들까지도 품어주는 별과 별빛들. 마음을 모으면 이 시련도 이길 수 있어. 가을비가 내린 산골엔 밤톨이 굴러다닌다. 먹는 밤과 어둔 밤이 더불어 살지. 마당에 모닥불, 밤을 던지면 뚝딱 군밤으로 변신해. 군밤을 까먹으며 불멍 별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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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였던 누나는 5·18 때 적십자병원에서 총상을 입은 부상자를 돌봤다. 내 아래 누이는 수간호사 소리를 듣다가 이직. 또 엄마랑 닮은 막내 이모는 간호부장 출신이었는데, 이모부는 개인병원 원장.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풍기는 집안이었다. 그래선지 ‘믿숩니다’ 안수기도 같은 거 안 믿는 목사 집안. 처음 러시아 여행을 갔을 때 탈이 나서 병원을 찾았다. ‘스바시바’ 욕 같은 인사말이 아는 전부인데, 병원이라니. “앗꾸다?(어디서 왔나요) 프럼 프럼.” “아~ 프럼 유즈나야 카레야(남한).” 러시아 사람들은 ‘세베르나야 카레야’ 북한이랑 더 친하지만 ‘유즈나야’라고 밝히면 고생을 시키든 잘해주든 신경을 더 쓸 거라고 누가 코치.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며칠 고생이었는데 주사 처방. 유리로 된 주사기를 팔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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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꼴 수행자와 제자가 길을 가는데 시장통 어귀에서 왈패들이 시비. 조롱하며 욕지거리를 해대는데 스승은 퍼허 웃기만 했어. “스승님. 저런 험한 욕을 듣고도 웃음이 나오십니까?” “얌마. 저들이 금덩어리를 내게 주었다면 냉큼 받겠지. 고작 욕이나 주는데 내가 받겠냐? 안 받기로 마음먹으니 웃음부터 나오덩만.” 여행을 하다 보면 기분 잡치는 일이 생기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쏙 흘리면 되는 문제. 하기 싫은 일을 누가 자꾸 시키면 “넵. 할게요” 크게 대답만 해 놓고 안 하면 된다. 나 참 좋은 거 가르치지? 다음 어디로 갈 건지 목적지를 정한 뒤엔 한눈팔지 말아야 해. 북한에선 병아리도 태어날 때 평양에 가고 싶어서, 삐양 삐양 하면서 운다더군. 당신은 시방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목적지를 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