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국가대항전이다. 국가나 집단에 대한 유대감은 누구나 있는 성향이다. 소속감은 의도적으로 동원되었을 때 문제가 된다. 월드컵을 중계하는 영상은 국기, 전통의상, 민족 정체성 상징물을 자주 비춘다.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의도된 연출이자, ‘승부와 경쟁’을 자극하기 위해 기획된 배치이다. 월드컵에서 국가 간 대결 때보다는 인간애의 공통성을 발견할 때 더 깊이 감동한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약소국가를 응원하는 진정 어린 마음에서 1954년의 한국 축구대표팀을 만난다. 축구를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증명해내는 이변의 주역들에게서는 1966년 런던 월드컵의 북한 대표팀 모습이 그려진다. 국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의 대표선수들이 자국민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려는 투혼에서 2002년 한국..
2016~2017년 ‘촛불항쟁’ 때 반블랙리스트 운동에 나선 문화예술인들은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를 꾸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검열과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탄압을 조사했다. 그 결과 블랙리스트로 직간접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이 무려 8931명, 단체는 342개로 집계됐다. 마음을 크게 다친 문화예술인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는 단지 일부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가 아니라 정권이 ‘좌파 척결’ 따위를 명분으로 거의 전 장르에 걸친 문화예술계에 개입하여 자율성을 갖는 문화예술계를 인위적으로 바꾸고, 또 이런 작용을 통해 전체 국민에 대해 극우 이데올로기를 선전·유포하려던 ‘국가범죄’였다. 그래서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책동 같은 사안과도 ..
공공부문 총파업이 줄줄이 예고된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볼모론과 불법 규정, 침소봉대와 강경 대응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나 때 대통령 기자회견에서는 기자들이 넥타이 매고 정자세로 경청했다’는 말만큼이나 식상하다. 식상한 대응은 적절한 대응이 궁할 때 나오는 행동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총파업을 ‘국가 경제를 볼모로 한 이기적 행동’으로 규정하면서 이로 인해 국가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처럼 과장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사실상 정권 퇴진 운동’이라며 확대해 이번 총파업을 정치적 파업으로 규정했다. 과연 우리나라 경제가 일부 공공부문 총파업으로 위기에 처할 수준인가. 물론 굳이 왜 이 어려운 시기에 파업을 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지는 정평이 나 있다. 정치중립이 생명인 검찰총장직을 박차고 나와 전격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한 명분이 헌법수호였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내려는 당시 정권으로부터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결단임을 역설하였다. 자유삭제라는 인위적 설정이나 검찰을 정치화하여 헌법질서를 훼손한 본인의 행적을 연상하면 뜨악하기는 했지만 여하튼 헌법수호의 구호만은 분명히 각인되었다. 가까스로 당선된 후 취임사에서 애써 강조한 핵심요지도 그러했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윤 대통령이 수호한다는 헌법의 정체성이다. 반지성주의를..
한국의 정치 이미지 안에는 아직도 전근대적 절대권력의 망령이 서려 있다. 정치인들은 국가를 오직 권력으로만 이해하며, 통치자는 그 위에 군림하는 군주쯤으로 여긴다. 그 부인을 국모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악의 축으로 여긴다. 또한 재벌과 결탁하며 사회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간다. 여기에 검찰과 경찰을 장악함으로써 일찍이 알투세가 말한 ‘억압적 국가장치’를 완성한다. 그런 정치에게도 언론은 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이번 MBC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이 잘못되었거나 ‘속이 좁아서’ 생긴 일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언론을 적극적으로 길들이고자 하는 현 정부의 다급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이라고 본다. 혹은 현 정부가 권력과 국가..
요새 우리들의 삶이 많이 움츠러들어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어떤 민족보다도 흥이 많은 민족인데, 지금 흥은 사라지고 근심 걱정만 남아 있으니 사람이 쪼그라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과 천지의 기운이 만나서 흥을 일으키고, 사람이 흥겨우면 근심으로 든 병도 낫는다는데, 사람들이 흥을 잃은 요즘 나라와 민족도 나아갈 방향을 잃고 어지러운 세상이 됐다.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나 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부모형제와 작별인사도 못하고 비명횡사했다. 또 고금리와 고물가 등으로 부동산, 주식 등 자산의 거품이 붕괴하고 또 고환율과 세계경제의 불황의 심화로 우리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람들은 ‘국가가 어디 있는지’ ‘정부가 과연 국민의 안전과 민생에 관심이나 있는지’ 묻고 있으나, 대답이 없다. 보통..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촬영된 동영상 클립들을 보면, 참사는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몇 시간 전부터 신고 전화가 이어졌고, 질서 있게 군중을 해산시킬 수 있는 ‘골든 타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방관했고, 감당할 수 없을 수준으로 군중의 밀집도가 높아지면서 순식간에 참사가 일어났다. 이태원 희생자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는 ‘제2의 세월호 참사’이다. 안전과 관련된 참사뿐만이 아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경제적 참사도 발생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1997년 경제위기를 겪었고,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경험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탄소중립 시대의 위기에 우리 정부는 사실상 두 손을 놓고 있다. 이대..
두 인터넷 매체가 10·29 참사 희생자 이름을 공개하고 나서 며칠째 동네가 시끄럽다. 판단은 어렵지 않다. 유족의 동의 없는 희생자 이름 공개는 문제가 있다. 재난 상황에서 언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재난 보도의 규범이 필요하다는 공론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겪으면서 떠올랐는데 ‘재난 보도 준칙’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고 나서였다. 이 강령에는 지금 우리가 논란하고 있는 ‘피해자 보호’라는 가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과거에는 ‘재난 보도’가 아니라 ‘보도 재난’이라고 할 일들이 많았다. 피해자의 슬픔을 생생하게 전한답시고 죽음의 현장에서 갓 탈출하여 공포에 떨고 있는 생존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