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권력 관계(젠더)는 오랜 역사 동안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어 왔다.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를 둘러싼 판단은 개인과 사회 공동체가 모두 혼란을 겪는다. 남성 중심적 사고는 공기와 같아서, 인종 문제처럼 피해와 가해 여부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여성 조지 플라이드’는 매일 발생하지만, 보고되지 않는다. 이에 대응하는 여성주의 세력도 소위 ‘성인지 감수성(여성주의 의식)’과 여성학적 의견이 일치를 보는 것도 아니다. 여성주의자 사이의 이견이 활발한 논쟁으로 발전할수록, 남성 개인도 사회도 성숙해지지만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나는 2005년 이란 책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동어 반복일 뿐 아니라 여성에게 불리한 논리라고 주장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 논리는 더 힘을 얻는 듯하다. 어떤 여..
지난달 여성가족부는 덴마크 작가 페르 홀름 크누센이 쓴 그림책 를 ‘나다움 어린이 책’으로 선정했다. 삽화의 구체성 때문인지, “시기상조” “포르노 같다” “자연스럽다” “어린이 성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동성애 조장” “조기 성애화 걱정” 등 논란이 일었다. 이에 여가부는 일부 초등학교에 보급한 책을 회수했다. 한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블랙리스트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성을 둘러싼 이해(利害)와 이해(理解)의 복잡한 단면들이다. 비슷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 관련 도서 출간이 늘어났고 10대와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도서도 많이 기획되고 있다. 나는 한 권의 책에 참여했지만, 이후에는 모두 사양했다. 10대를 위한 책은 ‘10대를 위한 자본론’ ‘10대를 위한 ..
코로나19 이후에도 팬데믹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내후년까지 마스크를 써야 한다니, 내 세대에 지구 멸망을 맞는 느낌이다. 전염병의 원인은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자연 파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현재 삶의 시스템으로는 답이 없을 뿐, 우리는 코로나19의 원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인간 행동이다. 유럽인들의 마스크 조롱, 거부 시위는 개인주의의 산물인가. 미국에서 감염자와 함께 파티를 즐긴 후 미감염자 중 가장 빨리 사망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게임은, 전염병은 ‘후진국’에서나 발생한다는 서구인의 자부심 때문인가. “정부가 바이러스를 교회에 퍼붓고 있다”는 전광훈 목사의 존재도 인간에 대한 절망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나는 당국과 여론의 전광훈 목사에 대한 관대한..
지난 7월11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을 두고 86세대를 비판했다. 20대 여성이 진 전 교수의 글이 “사이다(명문)”라며 내게 읽기를 권했다. 진 전 교수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 거의 기사화된다. 그래서 나처럼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그의 글을 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대개 동의하지만, 그 글은 나를 분노케 했다. 권력층에 가까운 서울지역 대학 출신 일부 86세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글은 틀렸다. 그의 페이스북 내용은 이러하다.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다 우리가 좋아서 한 것으로 누가 강요하거나 누가 희생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것을 훈장으로 내세우지 마라” “넘치도록 보상받았다” “..
그간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 ‘빨갱이’는 매우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었다. 지배세력은 물론이고 ‘국민’ 사이에서도 일상적 상호 감시 도구였다. 당대도 이러한 현상은 양상을 달리할 뿐 계속되고 있다. 친일파와 빨갱이는 상투어가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를 규율하는 중요한 문화논리다. “좌파”라는 비난에 “연기파”라고 응수한 배우 박중훈처럼, 사회가 규정한 폭력을 넘어서는 제3의 사고방식이 널리 공유되기를 바랄 뿐이다. 2000년대 이후 일본과 북한에 대한 집착은 상대적으로 옅어진 듯하다. 온갖 ‘K~’ 수식어가 등장, 서구보다 ‘앞서는’ 분야가 생겨나자 북한에 대한 적개심도 시들해졌고(?) ‘토착 왜구’가 ‘친일파’를 대신하고 있다. 전통적인 적이 사라지자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검찰과 언론이다. 검..
열정에 찬 어느 배우가 대가에게 물었다. “감독님, 인생에 의미가 있나요?” 영화감독은 바로 대답했다. “없지.” 인생에는 의미가 없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의 생애는 지구상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자연 순환의 미미한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미 없이 살 수 없다. 삶의 의미는, ‘사회적 존재와 자연의 일부’ 이 인간의 두 가지 조건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기울기가 달라진다. 분명한 한 가지는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 이것이 만악의 근원인 대문자 역사(The History)라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처럼 “(퇴임 후) 잊혀지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사는 동안 자연을 덜 망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의미다. 지난 25일 김종철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아직 ‘고(故)’..
정의기억연대(이사장 이나영)와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에 관한 기사가 폭주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혐의가 확실한’ 윤 당선인과 여당 공격에 여념이 없고, 범진보 세력은 “보수의 준동”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그들의 대립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이다. 여당은 “마녀사냥, 윤씨는 억울한 피해자”라고 말하면서도 당혹스러워하고, 야당과 보수 언론의 입장에서는 이만한 ‘타깃’이 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주장은 “정대협 비판은 일본 우익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말이다. 이번 사안은 철저히 진보 진영 ‘내부’,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다. 한편 여당과 어쩌면 정의연 지도부까지도,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이 사안을 윤 당선인 개인의 비..
지난 4월,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 사업안을 부동의(不同意) 처리했다. 사업자 측이 환경영향평가 전문 기관의 재검토 의견을 고의로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뉴오션타운은 중국 자본인 신해원유한회사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주변에 총사업비 3700억원을 투자해 461실 규모의 호텔 2개와 캠핑장, 상업시설을 짓는 대규모 관광 사업이다(4월29일자 경향신문, “이 멋진 제주 송악산에 대규모 호텔 짓겠다고?” 기사 참조). 2003~2006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반대하며 여러 차례 단식과 시위, 도롱뇽이 원고가 된 소송을 벌였던 지율 스님의 지난한 투쟁은 환경운동사의 논쟁으로 남았다. 그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