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황교안 후보(미래통합당)의 일련의 발언들은 실수가 아니다. 전편과 속편이 온전한 극(劇)이다. 그의 프리퀄은 공안 검사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그의 발언은 세계관의 본격적 분출이다. 아들 취직 자랑, 육포 사건, “교회 내 코로나19 감염 거의 없다” “1980년, 그때 하여튼 무슨 사태” 발언, 키 작은 사람의 ‘투표 걱정’….압권, 아니 공포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관한 입장이다. 그는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그만둔 사람에 대해선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양형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범죄 가담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호기심만으로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양형 기준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강력한 범행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같은 당..
언어의 개념은 임의적, 임시적이다. 특히 성별(性別) 이슈를 다루는 이 글은 작은따옴표가 점철되거나 생략된 비문(非文)이다. 어떤 여성이 여자대학에 합격했으나 여성의 반대로 입학이 좌절되었다. 전자는 트랜스젠더 여성이고, 후자는 비(非)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일부 비트랜스젠더 여성은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며 그녀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냈고, 대학 당국은 방관했다. 심지어 성별 정정을 허가해 준 법원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묻고 싶다. 당신은 여성이고 그녀는 여성이 아닌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지. 해부학? ‘여성·남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일시적 구호이다. 생물학‘적’ 이유로 차별당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생물학조차 과학..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옳은가. 만일 그렇다면 아픈 사람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이가 될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 통념은 건강하지 않은 이들의 사회적 성원권을 박탈하고 우리의 일상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다.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재개념화가 필요한 시대다.정신질환 환자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진짜 아픈 사람은 저 사람(대개 ‘가해자’)인데, 병원은 왜 내가 다니지?” 건강 상태는 ‘전문가’의 진단, 개인의 감각에 따라 다르다. 육체적 건강에서 정신적 부분을 분리하는 사고방식부터 논쟁적이다. 어떤 상태가 건강한 것일까. 전두환씨의 건강이 ‘불편한’ 사람은 나뿐일까.건강한 상태는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사망의 연속선에 있는 몸의 일생을 계량하는 문제다. 정의하기 어려운 인간의 조건..
촉감도 소리도 아름다운 우리말 ‘몸’을 한자로 번역한다면, ‘기(氣)’가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영어에서는 기를 ‘qi’로 표기한다. “기분(氣分), 감기(感氣), 기가 막힌다” 등은 몸 상태를 잘 표현하는 말들이다. 감기는 기운, 기(氣)의 운(運)을 느끼라는 몸의 알리미다. ‘기’에는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이 없다. 죽음은 몸의 일부인 정신이 빠져나가는 과정이다. 몸에 해당하는 영어가 ‘보디’가 아니라 ‘정신이 깃든 신체(mindful body)’인 이유다. ‘보디’가 홀로 쓰일 때는 시체, 몸통, 실체 등의 뜻이다. 기는 몸의 총체적 에너지다. 기(氣)가 나뉜(分) 상태의 균형감에 따라 “기분이 좋고”, 그렇지 못할 때는 “기분이 나쁘다”. 기분의 배분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다. 사람마다 기분이 ..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병으로 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불교의 경전 ‘보왕삼매경(寶王三昧經)’의 첫 구절이다. 학설이 분분하지만, 중국 명나라 때 고승 묘협(妙협)이 지은 중 일부라고 한다. 이 삼매경은 같은 운율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 데 마음의 번잡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 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지 마라, 공덕을 베풀려면 보답을 바라지 마라, 분에 넘치는 이익을 바라지 마라, 억울함을 당했다고 밝히려고 하지 마라.바라지 마라..
여성의 지위가 ‘달라진’ 상황에 대한 남성의 반발 혹은 젊은 남성의 취업난 때문일까. 여성 관련 이슈가 나오면 꼭 따라붙는 말이 있다. “여자만 힘드냐, 남자도 힘들다(혹은 더 힘들다).” 이들은 ‘하소연’에 멈추지 않고 행동한다. 거의 절박하게 보일 지경이다. 어느 남자 고등학생은 지역 도서관에서 여성주의 책을 구입하는 게 세금 낭비이자 남성에 대한 성차별이라며 담당 사서를 고발하는 민원을 냈다. 영화 에 대한 별점 테러나 ‘XX년생 홍길동’의 삶은 왜 안 다루냐는 항의도 단골 메뉴다. 몇몇 대학에서는 일부 남학생들이 페미니즘을 포함한 인권 관련 강좌를 폐지하고 “의무 수강에서 자유로”를 주장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 자체를 부정하는 신(新)운동권, ‘행동하는 양심’들이 계속 등장할 판이다.이러한 상황..
인간이 만든 도구는 삶의 조건을 변화시킨다. 문명의 ‘발달’을 “장점도 있고 부작용도 있다”는 양비론으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특히 인간과 비슷한 물건들, ‘포스트 휴먼’은 논쟁거리다. 글자 그대로 죽부인(竹夫人), 인형(人形)에서부터 인공지능,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아이디(ID), 휴대전화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불특정 다수에 의한 악플이 문제지만, 1990년대 PC통신 시절 처음 등장한 ‘온라인 성폭력’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 대 1 채팅방에서 여중생이 성인 남성 사용자의 성적 비하 표현에 충격을 받아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남성은 인터넷 ID와 사법적 개인은 별개의 존재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몸이 아니라’ 아이디로 활동하게 되면서 인터넷에서의 ‘나’..
1980년대 횡행했던 관제 구호 중 하나가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였다. 당시 정권은 중·고등학생들을 ‘자연 보호 활동(쓰레기 줍기)’에 동원했다. 언뜻 들으면 뜻도 심오하고(?) 운율도 맞는 말 같지만, 성립할 수 없는 언설이다. 인간은 자연의 미미한 일부분. 인간이 무슨 삼라만상의 조물주라고 자연을 보호하고 말고 한단 말인가. 주제 파악이 안된 과잉 자아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이 사람을 보호한다는 논리도 “자연은 우리 편”이라는 인간 위주의 발상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별 관심이 없다. 둘은 간혹 조우할 뿐이다. 자연재해는 자연이 인간을 보호해주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한국은 인구, 면적으로 보면 작은 나라지만 좋은 의미든 아니든 ‘세계 1위’ 항목이 많다. 가정폭력, 교통사고, 청년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