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미국에 연구년으로 체류하던 2014년, 박진 외교부 장관이 당시 우드로 윌슨 센터에 리서치 펠로로 머무르고 있었다. 당시 박 장관의 소신 중의 하나가 돌고래론이었다. 이전까지 한국은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에 비교되곤 했지만, 이젠 더 이상 새우가 아니고 미·중 사이에서 당당한 외교를 주도하는 돌고래가 되었다는 담론이었다. 당시는 또한 외교부나 한국의 학자들이 통일대박론을 열심히 홍보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대박’ 즉 보난자(Bonanza)를 역설하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박 장관은 보난자라는 표현보다는 굳이 ‘위대한 자산’(Great Fortune)이라는 번역을 고집했다. 외교란 격조 있는 언어를 통해 국격을 높여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통일이라는 과업을 노다지를 연상케 하는 보난자라고 표현하는..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이 여러 가지로 안정성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또 무슨 일이 터져 얼마나 더 흔들릴지 걱정하며 살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땅히 공공선의 확보와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안정과 희망을 주어야 할 정치, 경제, 남북관계 등 주요 분야가 하나같이 깊은 불안감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가? 우선 정치 분야를 보면, 검찰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 정치지도자, 국가지도자로 태어나지 못하고 있고, 여당은 권력투쟁의 늪에 빠져 반쪽짜리 리더십마저 실종됐다. 취임 100일을 겨우 넘겼는데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가 30% 안팎으로 떨어져 있다. 외교도 다가오는 경제위기의 극복과 우리와 후손의 장기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
취임 100일 즈음에 실시된 직무평가 여론조사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30% 안팎의 지지를 받았다. 대통령의 인사·자질·태도 등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데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이는 대통령실의 인식은 다소 다른 듯하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홍보나 소통이 부족했다든가, 구체적 정책들을 추진하기 시작하면 달라질 것이라든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이야기만 들린다. 그런데 추진하겠다는 정책들을 보면 걱정만 더 든다. 또 국민만 보고 가겠다면서, 피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성과에만 집중하고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는 뒷전으로 미룰 수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한, 탄소중립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이대로..
여의도에서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한 정치인의 부고가 잔잔한 울림을 만들고 있다. 허대만 더불어민주당 전 경북도당 위원장의 얘기다. 어제(24일) 아침 포항종합운동장에서 장례식이 있었다. 향년 54세, 한창 일할 나이, 암 투병 끝에 부인과 3남 1녀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타계 소식이 애달팠던 것은 그러한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특별한 그의 정치 여정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1992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그는 지방자치가 부활하자 곧장 고향 포항으로 달려갔다. 풀뿌리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이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고 한다. 그 길로 1995년 제1대 포항시의원으로 당선, 26세 최연소 지방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인의 성공 여부가 배지를 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의 성..
77주년을 맞는 광복절 기념식. 행사는 엉성했다. 행사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이 문제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번째 맞는 행사였지만, 국민이 함께 공감할 만한 대목은 별로 없었다. 성공한 행사가 되려면 지켜보는 이들과 마음이 통해야 하는데 그저 따분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행사 장소를 왜 용산 대통령실 앞마당으로 골랐는지 모르겠다. 설마 대통령의 편의 때문은 아니겠지만, 독립기념관, 서대문형무소 터 등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숱한 장소를 굳이 건너뛴 까닭을 모르겠다. 뜨악했던 건 행사 도중에 불쑥 튀어나온 이종찬씨의 ‘기념 말씀’이었다. 광복회장의 축사와 대통령의 경축사 중간이었다. 육사 16기, 전두환 신군부의 핵심으로 민정당에서 맹활약했고, 여러 부침 끝에 김대중 정부에서 ..
윤석열 정부 100일이 어수선하다. 대선에서 호언했던 연금개혁도 그렇다. ‘대통령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겠다던 공약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애초 정부가 연금개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까지 든다. 대신 국회가 나서는 모양새이다.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가동하여 내년 4월까지 여야합의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상황이 이러니 행정부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공약대로였다면, 대통령직속위원회가 재정계산을 토대로 개혁안을 준비하면 무난했는데, 입법기관이 먼저 합의안을 만드는 ‘거꾸로 일정’이다. 어차피 개혁안은 입법부 몫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있다. 연금개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바로 연금개혁 논점별 팩트 정리이다. 우리 사회에서 연금개혁은 오랫동안 평행선을..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말했다. 독립운동은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독립운동은 분단된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말했다. 시대적 사명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 국가들이 자유에 대한 위협에 함께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시대적 사명은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이익에 희생되지 않을 분단 극복과 평화이다. 마침내 대통령은 말했다. 일본은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칠 이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일본은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한국을 희생시킬 수 있는 강대국의 하나이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외교 전략을 들을 날을 예상하지 못했다. 경축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는 일본의 핵심 외교..
지난 9일, 사실상 철회된 만 5세 조기입학 정책에 대하여 소수의견을 남긴다. ‘만 5세 의무교육환영, 단 유아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7세 아동에 대하여 현행 누리과정을 유지하고, 당연히 유아교육을 전공한 유치원교사를 배치하고, 교사 대 아동비율도 유치원과 동일하게 1 대 20 이하로 유지하고, 교실 환경도 유치원처럼 좌식 생활이 가능하도록 리모델링하는 것이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른바 ‘K학년제(취학 전 유아 의무교육)’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선경선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K학년제에 대해서는 지난 7월25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간한 이슈페이퍼 ‘K학년제 도입의 쟁점과 전망’을 참고하시길 권한다. 나의 소수의견은, 쉽게 말하면 병설유치원 7세반을 의무교육화하자는 거다. 기존 학제를 건드리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