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장관의 외제차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권영세 장관이 자신의 좌우명같이 강조해 왔다는 라틴어 법 격언에 대한 이야기다. “아우디 알테람 파르템, 상대방 당사자의 말에도 귀 기울여라(Audi alteram partem, listen to the other side).” 양 소송 당사자의 의견을 듣기 전까지 판결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법언이다. 권 장관은 통일부 자문위원들과의 회의를 이 좌우명으로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팀 내에서 가장 비둘기파로 알려진 그가 포퓰리즘에 빠져 자기관리를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정치인 장관의 상투적 수법이라며 가벼이 넘기는 매너리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런 법언은 비둘기파냐 매파냐라는 외교 정책 방향의 문제라기보..
현대 민주공화제가 정당중심 민주주의로 발전한 것은 아이러니다. 애당초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공화국에서 부분이익의 대변자인 정당은 공화제의 저해요소로 인식되어 금기시되었다. 제임스 매디슨이 미국헌법의 교의를 담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서 설파한 정당불신론이 대표적이다. 도덕주의 문화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정당은 까마귀 노는 곳일 뿐, 현자들은 얼씬거리지 말아야 할 금단구역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문화가 과연 민주공화제에 부합하는가? 민주공화국에서 현안을 해결하자면 회의체가 필요하고, 그 의사결정은 다수결에 따를 수밖에 없기에, 결국 결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정치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의회처럼 국사를 논하는 정책결정과정에서 백가쟁명을 효율적으로 수렴하기 위해서도 정치적 결사는 불가피하다. 정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8~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나토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초유의 외교 행위를 놓고 칭찬과 비판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모든 일에는 허실과 손익이 함께하기 마련이니, 겉으로만 보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지역도 아닌 유럽까지 가서 미국이 마련한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을 적대국으로 천명하고 나섰으니 보통 일이 아니고 그 뒷감당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물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전 세계에 전쟁 피해를 준 직접적인 죄가 있고, 중국은 우리와는 체제와 이념이 다른 국가로서 여러 면에서 위협이 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국제질서는 현실적으로 강대국들이 자신의..
프랑스는 극우의 위협에 맞서 중도 보수로 뭉친다. 2002년 대선의 시라크와 2017년, 2022년 대선의 마크롱이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대통령이다. 세 선거에서 승리를 결정한 것은 르펜 부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우의 유령이 유럽 정치판을 배회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손해를 본 세력은 좌파로 거론된다. 반극우파 전선을 통해 중도 우파가 강화된 반면 사회당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은 5위에 그쳤고, 올해 대선에서는 무려 10위까지 전락했다. 총선에서도 2017년 사상 유례없는 몰락을 겪었고, 올해에는 독자 출마는커녕 좌파 연합 내의 주도권조차 상실했다. 사회당의 몰락이 좌파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급진 좌파인 불굴프랑스가 성장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 8월 전당대회에 이재명 의원의 출마 여부를 두고 내홍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이런 내홍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당권 쟁탈전으로만 보인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국민에게서 더 멀어져 가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은 선거를 통해 행정권과 입법권을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고, 당 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내부 경쟁도 이런 과정의 일부이다. 당권 경쟁을 백안시하거나 정당 간 경쟁 자체를 낮춰 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관건은 당권 경쟁이나 정당 간 경쟁의 내용과 방식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내홍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당권 경쟁의 내용과 방식 모두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최근 세 번의 선거를 거치면..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경기도정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는가 싶더니 여의도 나들이를 시작한다. 며칠 전 그는 민주당 국민통합정치교체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이 위원회는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과 그가 후보연대를 하면서 선언한 약속의 하나였는데, 승자독식을 넘어서는 정치제도 개혁을 추진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힘을 실어주면서 세간의 관심은 더 커지고 있다. ‘정치개혁을 통한 정치교체’ 추진은 후보단일화 약속 이행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지난 대선에서 각 후보 진영이 모두 제출한 ‘마지막 약속’이었다. 민주당 의원총회 결의문(2·27)이나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선언문(3·3)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확인..
행정안전부가 경찰국을 통해 경찰청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는 ‘권고안’ 형식을 빌렸다. 차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면서도 위원회 이름은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였고, 여기서 권고를 했다. 일종의 알리바이성 위원회였다. 자문위는 불과 네 번의 회의 만에 행안부가 통째로 경찰청을 장악하겠다는 안을 만들었다. 미리 정해둔 결론을 자문, 회의, 권고 등의 형식에 담았다. 행안부는 경찰국을 ‘지원조직’이라 표현했다. 얼핏 들으면 경찰청을 지원하는 조직인가 싶겠지만 사실은 딴판이다.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지원조직이 아니라 관련 부서가 맞겠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말을 꾸민다. 말이야 어떻든 핵심은 정권이 직접 경찰을 장악하겠다는 거다. 여태까지는 경찰청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많았다. 고위직 인사 등 일부..
‘첫 백일’이 중요하다. 대통령 취임 후 백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국민통합을 이룬 본보기로 미국에서는 루스벨트를 꼽는다. 그가 1933년 취임하였을 때, 미국 성인의 25%는 실업자였다. 은행조차 망해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리더십이 아직 신선하고 새로울 때를 잘 이용했다. 선거 승리를 쟁취한 권위가 최고조에 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첫 백일에 약 20개의 ‘뉴딜’ 법률안 입법을 밀어붙였다. 아직도 살아 있는 농가신용법과 긴급은행법, 국가산업부흥법 등이 탄생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지금 행동하자’고 호소했다. 그의 첫 백일은 미국을 뭉치게 했다. 미국을 위기에서 구했고 새로운 미국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의 제20대 대통령이 당선된 지 백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