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잘한 정책 중에는 신남방 정책이 있다. 한국 외교의 중심축은 오랫동안 대북관계 또는 동북아시아였다. 신남방 정책은 동남아시아+인도를 외교의 중심 축으로 주목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 동남아시아+인도와의 경제 교류는 대폭 확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한·아세안 정상회의, 한·미·일 정상회담, G20 정상회의 등에 참석했다.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프놈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 윤석열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 것일까? 먼저 차이점을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신남방 정책은 ‘사람 ..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 공개는 패륜인가 애도인가. 공개하자고 주장하거나 유족 동의 없이 공개를 감행한 쪽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진정한 애도라고 하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패륜이라거나 ‘미친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개인정보보호법이나 명예훼손 등 법적인 쟁점이나 2차 가해와 프라이버시 등 인권 쟁점은 지난 며칠간 많은 조명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부분은 공개하자거나 공개하지 말자는 주장에 깔려 있는 정치적 기획이다. 법적이나 도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정치적 기획이 가진 의도와 성공 가능성을 따져보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촛불을 들고 다시 해야 되겠나”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려는 의도가 읽히는..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법인세 감세를 부자감세라 주장하는 것은 정치과정에서 제기된 구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3%포인트 낮추는 내용 등을 담은 정부 개편안을 지지하면서 “최근 법인세율 체계 개편안 발표 이후 이러한 주장(부자감세)이 제기되는 것은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력을 집중해야 할 시점에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KDI 내부에서 보고서 내용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검토 보고서가 제출됐지만 묵살된 것으로 국감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 KDI와 기획재정부는 합동정책간담회도 열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감 기간에 보고서를 내세워 법인세 감면을 옹호했다. 지난 6월 한덕수 국무총리가 홍장표 KDI 원장을 두고 ..
선진국에 대한 기준은 명확지 않다. 보통은 경제력 강한 국가를 일컫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1위 중국이나 1인당 국민소득(GNI)이 10만달러를 넘는 버뮤다, 군사대국 러시아 등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경제가 중요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시민 삶의 질이 높고 글로벌 책임을 이행해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7개국(G7,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은 모두 선진국이지만 범위가 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과거 선진국 클럽으로 불렸으나 회원국을 늘리면서 개발도상국이 다수 참여해 지금은 달라졌다. 한국이 포함된 G20은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등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들도 있어 순수한 선진국 모임이라고 하기 어렵다. 유엔무역개발협..
재산 상속은 세금으로 가능하지만 정치에서 권력 상속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왕조시대에나 가능한 일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왕의 남자들은 권좌에 앉지 못했다 커피를 들고 가는 사진 한 장만으로도 화제가 된 정치인이 있다. 대권주자로 거론될 정도인데도 수행원 도움 없이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간다. 지금 ‘잘나가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모습인가 하면 한때 ‘잘나갔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그랬다. 패션에서 정치 스타일까지 콘셉트가 비슷해 두 사람은 늘 비교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현 대통령과 대단히 가까운 관계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가히 ‘왕의 남자’로 불릴 만하다. 두 사람은 자기가 속한 진영이 좋아할 만한 정치적 스타일을 갖고 있다. 상대 진영의 비..
꽃다운 청춘들이 쓰러졌다. 8년 전 세월호의 아픔이 완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생명들이 또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다. 이번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 이태원이었다. 모처럼 즐기러 나간 핼러윈 축제는 ‘악몽’으로 변했다. 숨이 턱 막혔다. 20대와 10대인 두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가족을 잃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내 딸이 저기에 갔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열흘도 더 지났다. 그러나 정부가 보여준 수습 과정을 살펴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우리 곁에 국가가 있긴 한 걸까.’ 분노가 스멀스멀 치밀어 오른다. 참사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참담하다. 일어나선 안 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현 정부 들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14번째 고위직 인사다. 현 정부에 더 이상 잘 어울릴 수 없는, ‘완벽한’ 인사다. 지난달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주문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 서비스 산업부라 봐야 하고, 국방부는 방위산업부, 국토교통부는 건설산업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산업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산업부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 증진과 수출 촉진을 위해 뛴다는 자세”도 당부했다. 교육부에 대해선 이미 지난 6월 “교육부 스스로가 경제부처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터다. 각 부처의 존재이유를 배반할 수도 있는, 기막힌 인식이다. 이런 대통령의 장단에 별 ..
분명 “확실히 막을 수 있었다(Absolutely Avoidable).”(뉴욕타임스 10월31일 이태원 참사 보도 제목) 대형 재난 뒤에 ‘만약에’라는 가정을 붙여 ‘막을 수 있었던 참사’를 복기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그럼에도 이태원 참사를 두고는 ‘만약에’를 뼈아프게 되뇌게 한다. 참사 이전, 참사 발생 순간, 참사 이후 구조·수습 과정에서 너무도 부실하고 무능한 정부의 대응이 드러난 때문이다.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이 ‘만약에’가 확인시키는 건 이태원 참사에서 ‘국가는 없었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만약에 3년 만의 노마스크 핼러윈 행사로 대규모 인원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안전관리 대책을 준비했더라면 생때같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밀집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