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한 나라의 가치와 규범을 규정한 최고의 법률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헌법을 위정자들이 필요에 따라 헌신짝처럼 짓밟아 왔다. 이 때문에 헌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과 달리 헌법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지 못한다. 이승만은 재선이 어렵게 되자 1952년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는 등 부산정치파동이라는 공포정치를 통해 개헌을 했고 2년 뒤에는 헌법이 금지한 3선을 위해 사사오입개헌을 했다. 박정희도 1969년 3선 개헌을 했고 1972년에는 종신집권을 위해 유신개헌을 했다. 예외적으로, 최고위정자가 ‘헌법을 수호한다’고 나선 것은 두 번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첫 번째는 1974년 1월8일 박정희 정권이 발표한 악명 높..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다시 인용해보자. 요즘 우리로선 너무나 낯설고, 또 부럽기도 해서다. 바로 미국 백악관과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미친 트럼프 막아내기’ 이야기다. 첫번째 주인공은 명령에 죽고사는 군인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다. 트럼프는 2020년 5월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을 메운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대를 거론하며 “총으로 그들을 쏴버릴 수 없나. 다리든 어디든 그냥 쏘라”고 밀리에게 명령했다. 지하벙커로 피신할 만큼 트럼프가 위협을 느낀 터라, 단순히 화풀이식 명령으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었다. 밀리는 발포를 거부했다. 또 그는 대선을 즈음해서는 흥분한 트럼프가 우발적으로 전쟁을 벌일 것을 염려해 중국에 두 차례 비밀전화를 했다. “우리는 중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트럼..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 1969년 7월20일, 전 세계인들은 흐린 화질로 전해지는 텔레비전 속 한 장면에 이목을 집중한다.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월면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인류가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달 착륙을 하겠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대중 연설부터 실제 실행까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아 미국이 ‘일’을 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폴로 계획 덕분이었다. 국가 자원을 하나로 묶은 아폴로 계획이 우직하게 추진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달 착륙은 훨씬 이후의 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는 아폴로 계획을 추진해야 할..
2022년 10월29일 밤, 서울 용산 이태원동 119-7번지 골목에서 두 번째 세월호가 침몰했다. ‘두 번째 세월호’란 말을 수차례 쓰고 지웠다. 한 번 비극을 겪었다고 다음 비극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웃다가도 심란하고, 자다가도 수시로 깼던 지난 한 달이었다. ‘두 번째 세월호’는 참사 규모만 해당하지 않는다. 유족을 향해 ‘시체장사’라 하더니 이번엔 ‘감성팔이’라 비난하고, 꼬리 자르기식 책임 전가가 등장하는 장면도 8년 전과 유사하다. 애도와 추모를 탈정치로 몰고 가려는 시도 또한 낯설지 않다. ‘두 번째 세월호’는 국가 권력의 총체적 무능이 한 사회를 유지하는 상식적 기준을 무너뜨렸고 정치적 내전을 불사했던 상황을 집약한 말이다. 정부가 사고라 고집해도 이태원 참사는 명백한 정치적 참사다...
‘대장동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남욱 변호사의 폭로가 장안에 화제다. 1년 전에 남씨는 말했다. “A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런데 이제 와서 남씨는 말을 완전히 뒤집었다. “A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땐 A가 대통령이 될지 몰라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고. A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지난 21일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난 남씨는 법정에 출석해 증언을 쏟아냈다. “2015년 2월부터 천화동인 1호 지분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실 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만배씨에게서 들어서 알았다”는 것이다. 2013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전달한 3억5200만원에 대해 남씨는 “(유 전 본부장이) 본인이 쓸 돈이 아니고 높은 분들한테 드려야 하는 돈이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높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몹시 끔찍할 때 무참(無慘)하고, 더없이 부끄러울 때 무참(無참)하다. 6개월 넘긴 ‘윤석열 시대’가 그렇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4주째 사과의 덫에 갇혀 있다.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는데도, 국민은 제대로 다시 하란다. 158명이 억울하게 죽은 참사에 책임 물은 장관 하나 없어서일 게다. 대통령의 사과는 납득할 문책 뒤에 누가 뭘 어떻게 왜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어찌보면, 타이밍과 진정성은 이미 놓쳤다. 점입가경이다. 이슈로 이슈를 덮는 검사 영화 속 대사같이…. 참사를 추궁한 대통령실 국감에서 김은혜 수석이 쓴 “웃기고 있네”가 세상을 뒤집었다. 그 분노는 대통령 ..
빅 브러더가 지배하던 오세아니아국에서는 ‘신어’를 사용했다. 빅 브러더가 보기에 불순한 이단적인 사고가 “적어도 사고가 말에 의존하는 한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의도에서였다”. 그래서 기존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법칙이 만들어지고 계속 새로운 신어사전을 편찬해서 보급했다. “자유로운(FREE)”이란 단어는 ‘정치적 자유’나 ‘지적 자유’와 같은 뜻으로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언어를 통해서 사고를 통제하려는 시도였다. 시인 나희덕이 정확하게 포착해낸 것처럼 구동독 정보국은 라는 파일을 만들어 관리했다. 시인은 라는 시에서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고 말했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
작금의 정치권 대치는 무이념의 축제라 반지성적이고 반민중적 국민 생명과 인권 지켜낼 사회적 책임과 권한 공유체계 설계 위해 부정성과 부작용 불구 정치도 이념을 가져야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극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 대의를 만들어 새 정치사회적 질서를 연 국제적 사례들이 있다 작금의 한국 정치사회가 주목할 지점이 그것이다 광장과 거리에서 또다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한 측은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다른 한 측은 정권 사수를 내세우고 있다. 오늘 글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금의 그와 같은 대치는 반지성적이며 반민중적이다. 왜냐고? ‘무이념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열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낼 가치 규범과 비전과 전략,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언어와 실천 프로그램 모두를 결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