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육과 가난을 연결시키는 담론을 의심한다. 한국인들이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힘썼다’는 클리셰는 실증 자료와 상충한다. 무엇보다 한국은 그리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1960년 1인당 국민소득을 보면 인도(84달러), 중국(92달러), 태국(101달러)보다 한국(155달러)이 높았다. 아시아에서 당당히 중상위권이었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는 전설은 1950년대 초에나 유효하다. 가난하면 자녀를 교육시키기 어렵다. 당시 고등학교 등록금이 대학 등록금의 절반에 달했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를 보내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우골탑의 신화, 즉 ‘소를 팔아’ 또는 ‘논을 팔아’ 자녀를 대학까지 보내는 일이 잦았다. 그만큼 ‘소’와 ‘논’ 등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만드는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지어진 지 4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을 개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하지만 공사 기간 동안 운동장에 설치하기로 한 이동형 임시 교실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1~2년의 공사 기간 동안 전학을 가야 하는 경우도 있어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 지정 후 의견 수렴에 나서다 보니 혼란을 가중시킨 측면이 크다. 다들 노후 건물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공사 기간 동안의 불이익을 감수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일부 학부모들은 ‘지역과 학교 시설 공유’ 등 미래학교 사업 내용이 혁신학교와 비슷하다며 결국은 혁신학교가 아니냐고 반발하기도 한다. 입시에..
대선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수능 폐지, 절대평가화, 자격고사화 등등 온갖 설이 나돌고 있다. 최근엔 수능 수학 1타강사로 알려진 현우진씨가 수능이 7, 8년 내로 붕괴될지도 모른다면서 ‘그 전에 떠야죠’라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수능은 폐지될 리도, 붕괴될 리도 없다. 한국에서는 입버릇처럼 ‘입시 위주 교육’을 비판하지만, 입시는 매우 보편적인 제도다. 여기서 ‘입시’란 한국의 수능처럼 고교 밖의 기관이 주관하는 시험(external exam)을 뜻하는데, OECD 35개국 가운데 33개국에 존재하며, 심지어 대학이 평준화된 나라들에도 입시가 있다. 내신성적을 활용할 수도 있을 텐데, 왜 다들 입시를 볼까? 내신에 중대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고교의 X교사가 매긴 90점과 B고교의 Y..
국가교육위원회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교육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나는 지금 한국에선 두 개의 정치가 작동한다고 이야기해왔다. 하나는 투쟁의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공존의 정치이다. 지난 시기엔 투쟁의 정치가 거의 전부였다. 교육의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은 공존의 정치가 대폭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바로 공존의 정치를 선도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국민이 아쉬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협치’를 천명했으면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협치는 정치와..
교육은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 속에서 저마다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 역할에는 다양한 전문 영역이 있지만,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에 맞춰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시행하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공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해내려면 무엇보다 인문학적 통찰력과 사회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입시 공부, 고시 공부만 해서는 그런 능력을 기를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인재 양성과 등용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취업학원이 되다시피 한 대학과 지금의 고시제도로는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인재를 기대하기 힘들다. 교육철학부터 다시 세우고 제도를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한다. 사법고시는 폐지되었지만 사법개혁은 요원하다. 고시제도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에서 개최한 대입 토론회에 초청된 적이 있다. 내 앞의 발제자는 수능 폐지를 주장했다. 수능 점수 1, 2점 차이로 학생을 변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뭔가 정곡을 벗어난 이야기였다. 경쟁은 수능시험 때문이 아니라 대학서열 때문에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발제를 시작하면서 도발적으로 물었다. “서울대와 연·고대 중 어디가 더 좋은 대학인가요?” 좌중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대학 서열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서울대가 더 좋은 대학입니다.” 왜일까? 서울대가 1년에 학생 1인당 투입하는 교육비는 무려 4800만원대다. 연세대·고려대는 평균 2700만원대다.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평균 2300만원대, 중경외시(중앙대·경..
초·중등학교가 대부분 2학기 개학을 했다. 1학기부터 ‘전면 등교’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출석수업을 통해 정상적인 교육 운영으로 복귀하자는 움직임이 컸다. 학교 선생님들은 백신 우선 접종 대상자가 되었고, 수능 시험을 앞둔 고3 학생들의 접종도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떨까? 대학 교직원에 대한 백신 접종은 거의 거론된 바 없다. 학교와 보육기관에 양보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대학에서 교육은 하지 말라는 뜻인가 싶다.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20대 청년들에 대한 백신 접종은 정부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 백신을 예약한 학생들에 따르면 2차 접종이 완료되는 시기는 11월 초중반이다. 다가오는 2학기의 상황이 눈에 그려진다. 비대면 교육의 연장이 불가피하다. 대학은 초·중등학교에 비해 비대면 교육의 ..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할 때 흔히 동기 부여가 안 되어 그렇다고 말한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안 한다는 논리다. 목표가 뚜렷하고 의지가 굳으면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동기 부여도 환경이 받쳐줘야 되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된다 해도 목표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의 에너지는 오래 가기 힘들다. 행위와 목적은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민족이나 민중을 ‘위하는’ 행동이 쉽게 변질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강은 바다에 이르기 ‘위해’ 길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물길이 바뀌는 것은 주변 지형과 중력이 만들어내는 위치에너지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진정한 변화는 ‘의하여’ 일어나지 결코 ‘위하여’ 일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