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화 논설위원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다단조 작품 67-운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석에서 부동의 자세로 30분 동안 앉아있는 단원들이 있다. 마지막 4악장에서 트롬본을 연주하는 3명의 연주자이다. 이들은 환한 조명이 켜져 있는 무대에서 1악장부터 3악장이 연주되는 동안 꼼짝않고 자신의 연주시간을 기다린다. 4악장에서도 몇 마디 연주 후 100마디 넘게 소리내지 않고 대기하는 부분이 많아 긴장의 연속이다. 40여분 동안 쉴 틈 없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연주자들도 몇 마디 쉬는 부분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가는 거대한 음표의 흐름에 자칫 흠집을 내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화합의 결실이다. 소리를 빚어내는 연주자들끼리 호흡을 맞추기 위해 집중력과 많은 연습이 필..
한지우 | 유학 준비생 “엄마, 쿠키한테 빵 주지 말라니까!” 내가 소리치자 당황한 엄마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쿠키가 하도 내가 빵 먹는 것을 쳐다보는데, 불쌍해서 그만….” 쿠키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작은 몰티즈 강아지다. 빵, 과자 같은 음식은 강아지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쿠키에게 절대로 빵 같은 음식을 주지 않기로 했었다. 그런데 쿠키를 입양했을 때의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엄마는 동정심에 쿠키에게 빵을 준 것이다. 물론 엄마는 ‘이번 딱 한 번만’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쿠키의 입장이다. 쿠키는 ‘어제 주인에게 빵을 받아먹었는데, 오늘도 주인이 빵을 주겠지’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쿠키는 빵이나 과자가 자신의 건강을 해롭게 할 것이기 때문에..
전진한 투명사회정보공개센터 소장 메트로 지하철 9호선 요금인상 문제로 불거진 민자투자사업 문제에 대해 시민들의 원성이 높다. 특히 특정 세력과의 관계를 의심받고 있는 맥쿼리인프라가 전국의 17개 유료 도로와 터널, 항만, 지하철 등에 약 2조원을 투자했다. 이들은 시민의 호주머니를 털거나, 세금지원 형태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사실이 지하철 9호선의 기습 요금인상 발표로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민자투자사업은 지방자치시대를 맞으면서 자치단체장들의 무리한 보여주기 행정이 불러온 필연적 결과이다. 임기 동안 본인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한 거대한 토건사업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그 결과 투자자를 찾기 위해 무리한 계약을 추진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지하철 9호선..
장훈 | 중앙대 교수·정치학 안녕하십니까? 먼저 지난 24일 개원한 국립외교원의 초대 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요즘 우리 언론의 관심이 총선 이후 여야 정당 내부의 갈등에만 쏠려 있다 보니, 국립외교원 개원 소식이 크게 주목받지 못해 아쉬운 감이 없지 않으시겠군요? 그럼에도 미래의 외교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국립외교원이 출범한 것은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최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대표적 패러독스의 하나가 대외지향적 현실과 내향적 의식의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현실, 안보현실, 문화현실은 바깥세계와 그야말로 촘촘히 엮여있지만, 정작 우리의 시야와 마음가짐은 바깥 세상보다는 안으로만 쏠리고 있습니다. 최근 며칠 사이 추락하는 권력자들의 부패 스캔들은 정치권과 SNS..
조호연 사회에디터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초·중·고 일제고사 성적을 학교별로 공개했다. 모든 학교를 1등부터 꼴찌까지 늘어놓는 완전 성적순은 아니었지만 5단계로 구분했기 때문에 누구라도 ‘(성적이)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를 알 수 있었다. 교육계는 불에 덴 것처럼 반응했다. 초등학교에서 사라졌던 0교시 수업이 부활했다. 공부머리를 타고나지 못한 성적 부진 학생들은 ‘평균점수 깎아먹는 애들’로 낙인찍혔다. 일제고사는 초·중·고생들의 학력 수준을 진단하고, 기초학력 미달학생을 가려내 학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됐으나 시행 첫 해부터 지역 간, 학교 간, 학생 간 무한경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시험 성적이 공개되고 학교 서열이 매겨지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김철웅 논설실장 지난 일요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청소년 20여명이 모여 성명서를 낭독했다. “얼마나 더 죽어야 중단하시겠습니까!”로 시작되는 성명이었다. 성명은 지난주 중학생 2명과 카이스트 학생이 목숨을 끊었지만 사회는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버린 친구들의 죽음에 관심도 없고 눈물 흘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 시간에도 학생들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공부하라고 강요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성명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입시경쟁교육’이 이번 죽음의 본질임을 인정하고 죽음의 입시경쟁교육을 즉각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또 보여주기 위한 대책이 아닌, 본질적인 대책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비바람이 불어 아이들이 든 국화와 손팻말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렸다. 희망의 우리학교만들기 모임에 속..
반이정 | 미술평론가 dogstylist@gmail.com 삶의 터전에 간섭하는 골칫거리 중 하나는 몸이 기거하는 오프라인 집과 정신이 주로 머무는 온라인 집으로 무수히 답지하는 익명의 광고더미이다. 개인 미디어 블로그에 안부 인사를 참칭해서 매달리는 광고 댓글이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고, 집 대문과 문틈으론 호객용 음식점 선전용지가 줄기차게 꽂힌다.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선전지에 기재된 가게와 상품에 대한 댓글이 유도한 블로그는 광고 주체가 누군지 명시하지만, 이 총공세의 주역은 신원미상의 광고 기획사이거나 광고 댓글 프로그램을 제조한 익명의 제작자일 것이다. 일방적으로 원하지 않는 광고더미에 파묻힌 타인의 스트레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수한 선전물을 뿌려대는 자의 안일한 돈벌이 처세를 떠올리면 분..
차준철 | 디지털뉴스팀장 예상은 빗나갔다. 당락과 판세뿐만이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력에도 물음표가 붙었다. 4·11 총선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SNS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트위터 등 SNS가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리라는 게 당초 예상이었다. SNS 주 이용층인 20~30대의 목소리가 모이면, 투표율을 높이는 등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선거 때 기억도 한몫했을 것이다. SNS 공간에서 주요 의제가 먼저 확산된 결과를 지켜본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점쳤을 터다. 당시 선거 직후에는 ‘판세를 가르고, 정치를 접수한 SNS’가 화두였다. 패배한 한나라당은 부랴부랴 “디지털 소통을 중시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