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독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에 걸쳐 활동했다. 그는 소묘 900점, 목판화 350점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대표작은 뉘른베르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도하는 손’이다. 이 그림에는 눈물겨운 우정과 신뢰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숨어 있다. 그림 공부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너무 가난해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뒤러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친구와 약속을 했다. 한쪽이 그림을 배우는 동안 다른 한쪽은 노동을 해서 학비를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뒤러가 먼저 공부를 시작했고, 어느 정도 명성을 얻게 되자 이제는 친구를 공부시키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갔다. 친구는 하루 일을 마치고 기도 중이었다. 그의 기도는 이러..
유인화 논설위원 지난 4일 저녁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에 배우 박정자(70)의 연극 50년 기념 ‘박정자 전’을 축하하려고 13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였습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갤러리의 아담한 마당에서 최백호의 노래 ‘보고 싶은 얼굴’로 시작된 봄밤의 잔치는 아름답고 따뜻했지요. 1962년 의 시녀 역으로 시작한 ‘박정자의 연극 50년’은 한국예술사를 말해주는 시간여행입니다. 늘 푸근한 웃음을 짓던 여배우가 그날처럼 긴장한 표정을 보여준 건 드문 일입니다. 기자가 박정자 선생을 처음 취재한 1988년 이후 그토록 굳은 채 감격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미친 도깨비 같다”는 말로 ‘50년 잔치’의 뜻깊은 첫날을 말합니다. “연극배우로 사는 동안 행복했다. 좋은 작품, 감격적인 ..
안재헌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최근 발표된 자료를 보면 청소년 5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학교폭력과 왕따, 학업에 대한 불안 등으로 청소년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또 매년 6만∼7만명의 초·중·고교생들이 학업을 중단한다고 한다. 2009년 이후 누적된 자퇴생의 수는 무려 20만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밖 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이들 청소년들은 갈 곳을 잃고 헤매다 결국 범죄의 피해자로 혹은 가해자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청소년 활동을 총괄·지원하는 기관의 일원인 필자는 현장에서 청소년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많다. 이들을 접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청소년들의 고통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김영수 | 중국전문가 춘추시대 초나라의 장왕은 집권 초기 개혁에 반발하는 세력의 거센 저항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재상 벼슬까지 지낸 권신 두월초(斗越椒)는 무력으로 저항했다. 장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북채를 잡고 북을 두드리며 군사들을 격려했다. 이를 본 두월초가 활을 쏘았다. 화살은 장왕이 타고 있는 전차를 향해 날아들어 북을 뚫었다. 장왕이 급히 화살을 피하기가 무섭게 두월초의 두 번째 화살이 날아들어 이번에는 전차의 지붕을 뚫었다. 병사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허둥지둥 퇴각했다. 퇴각한 초나라 군사들은 두월초가 쏜 두 발의 화살을 뽑아서는 서로 돌려가며 구경했다. 화살은 별스럽게 크고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모두들 이 화살이야말로 ‘신전(神箭)’이라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월초의 ‘..
이현우 | 서평가 과학자들에 따르면 중년이나 노년에 걸리는 질병이 출생 이전 사건들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영국의 한 지역에서 제1차 세계대전 직전과 도중, 그리고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의 방대한 출생기록을 조사한 결과인데, 궁핍한 환경 때문에 평균보다 훨씬 작게 태어난 아기들은 다른 아기들보다 나중에 건강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성인이 된 이들의 상당 비율이 65세 이전에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비롯된 영향 결핍을 보상하기 위한 시도가 체질에 흔적을 남기고 그것이 몇 십 년 후에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온 것으로 본다. 환경과의 이러한 부조화가 심지어는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친할아버지가 사춘기 때 대풍작으로 음식을 풍부하게 섭취할 경우 손자들의 당뇨병 발병 확률..
김방훈 | 양산대 교수·경영학 필자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안사정으로 어머니와 강제적으로 떨어져서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산 적이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인자하시어 나를 아껴 주셨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동내 어른들을 볼 때마다 저의 어머니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부탁을 드렸더니, 오는 보름날 밤 8시까지 두 마을 중간에 있는 큰 밭의 중간에 큰 소나무 밑으로 나오라고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8시에 소나무 밑으로 같더니 어머니는 벌서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품에 안겨 눈물을 흐렸다. 어머니가 만들어 오신 개떡과 보리떡, 삶은 계란 등을 맛있게 먹으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나?” “나는 과수원 할래요. 과수원해서 돈 많이..
류점석 | 비교문학자 ‘발호’한다는 것은 ‘날뛴다’는 말이다. ‘발(跋)’은 밟거나 뛴다는 의미고, ‘호(扈)’는 고기 잡는 어구인 통발을 뜻한다. 통발에 갇힌 잔챙이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어부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것과는 달리, 힘을 가진 거친 물고기들은 길길이 날뛰며 통발을 비웃고 달아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고기들의 행태를 빗댄 이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쓰일 때는 아랫사람 또는 신하가 윗사람 또는 임금을 우습게 여기고 권력을 남용하며 잇속을 챙기는 경우에 해당된다. ‘양기전’에 따르면, ‘어깨는 성난 듯이 들썩거리고 눈은 날카롭기 짝이 없고 눈동자에서는 섬광이 넘쳤지만 말투는 어눌하고 더듬거리기까지 한 양기’는 조정의 실권을 쥐고 국정을 농단한 대장군이었다. 그가 어린 나이에 황제위에 등극시킨 질제..
박경희 | 청소년작가 우연한 기회에 북에서 온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 나는 아이들을 처음 보는 순간, 찔레 넝쿨 속에 숨어 있던 ‘붉은 삐라’를 떠올렸다. 꽃제비로 전전하다 이 땅에 정착한 아이들일 것이란 편견과 함께. 하지만 아이들은 나의 고정 관념을 여지없이 깨트렸다. 하나원을 통해 학교에 온 설화는 청보리처럼 풋풋했다. 단발머리에 수줍은 미소를 짓는 모습이 참 예쁜 아이다. 하지만 설화는 넋을 놓고 허공을 바라볼 때가 많았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설화와의 소통을 꿈꿨다. 만날 때마다 자신 안에 감추어진 분노, 아픔 등을 표현하길 권했다. 다행히 아이는 아픔을 토해 낼 줄 알았고, 열정적이었다.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는 부모님과 도강하다 잡혀 간 언니에게 피를 토하듯 쓴 편지를 읽으며 설화도 울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