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4일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서울시청부터 남대문까지 3만5000명의 시민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여느 집회에는 단일 구호가 쓰인 손팻말이 등장하지만 이곳에는 박스를 잘라 손수 자신의 구호를 쓴 피켓이 많았다. 3만5000명이 각자의 목소리가 쓰인 피켓을 머리 위로 번쩍 들자 무대의 스피커가 내는 소리보다 더 큰 광장의 소란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 자리에 나는 쪽방과 고시원의 주민들, 기초생활수급자, 거리 홈리스와 함께 참여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생각을 담은 피켓을 하나씩 만들어 행진에 함께했다. ‘기후위기로 물가가 올라서 수급비로 못 살겠다’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기후위기 때문에 우리들만 숨막힌다’ ‘집값 오른다고 지구 하나 살 수 있냐’와 같은 내용들이었다. 뜨거운..
기후위기 인식과 기후행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을 너무 믿거나 의지하지는 말아야 한다. 첫째는 기후과학자들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이며, 유엔 기후체제의 중요한 한 축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구성원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기후변화의 추세를 전망하고 해법의 얼개를 제시해온 공로가 크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확률의 숫자들은 기후위기를 우리에게 충분히 전달해주지 못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들 다수는 과학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론만을 사용하고 증명 가능한 결과만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의 기후위기는 그것보다 빨리 그리고 크게 다가오고 있다. 둘째는 언론인들이다. 그들은 홍수와 가뭄 같은 기후위기..
파키스탄의 홍수가 심각하다는 말을 들은 누군가가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거기 원래 자주 홍수 나는 곳이잖아.” 파키스탄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때도 이미 누적 사망자는 1000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맞다. 그의 말처럼 파키스탄은 원래 몬순철인 6~9월이 되면 종종 홍수가 나곤 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6월부터 두 달 넘게 하루도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비가 내렸다. 몬순이 시작된 후 불과 3주 만에 이미 한 해 전체 강수량의 60%에 달하는 비가 쏟아졌고, 현재는 190%에 육박한다. 파키스탄은 지난 두 달에 걸쳐 꾸준히 ‘익사’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홍수가 많이 나는 지역..
태풍 힌남노가 남긴 상처는 컸다. 재앙에 가까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전기 에너지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력 부문의 에너지믹스는 매우 중요하다. 지난 8월30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회는 실무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의 목표는 ‘원전·신재생 확대 등으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배출 목표 달성’이며, 2030년 전원별 발전량 기준으로 원전 비중을 32.8%, 신재생에너지 21.5%, 석탄발전 21.2% 정도 제시하였다. 2020년 기준 신재생에너지는 총발전량의 약 7.4%를 차지한다. 2030년까지 14.1%포인트의 비중을 끌어올려야 하며, 이는 연평균 ..
기후선진국들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현재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기후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겐 한국의 현황을 면밀히 파악해서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과학적 토대가 필요하다 병원에 가서 정확히 내 몸의 문제점을 찾아 치료하듯, 이제 한국의 탄소현황을 면밀히 진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 유럽의 한 작은 마을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각국에서 모인 과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서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시 2시간 기차를 타고 들어온 네덜란드 와흐닝엔 외곽의 작은 호텔에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에 대한 모델링과 모니터링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간 온라인으로 회의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3년 만에 열리는 대면..
소싯적 내 꿈은 태국에 한국식 팥빙수 가게를 여는 거였다. 그래서 동남아 인류학을 공부했는데, 사실 연구는 염불이었고 나는 잿밥인 태국에만 꽂혀 있었다. 지금도 남들은 ‘내 새끼’가 미래에 기후변화로 망해버린 영화 나 의 삶을 살까 봐 걱정하는데 나는 동남아 해안이 잠길까봐 두렵다. 다음 퀴즈를 풀어보자. 플라스틱은 무엇으로 만들까요? 지구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곳은 어딜까요? 1ℓ 페트병 한 개를 생산할 때 기름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이미 질문에서 답이 나왔는데 플라스틱은 기름으로 만든다. 참기름 말고 석유나 가스 등의 오일 말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등유, 경유, 휘발유로 정제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프타라는 찌꺼기가 나온다. 석유화학업계는 이 나프타로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플라스틱 알갱이를..
지구 반대편 남미 대륙 끝에는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한반도 면적의 약 5배 크기(104만㎢)인 파타고니아 대평원이다. 최대 풍속이 초속 60m에 이를 만큼 바람이 심해 ‘바람의 땅’으로 불린다. 거주지로는 부적합하지만 등반가들의 꿈인 피츠로이산을 비롯해 페리토모레노 빙하 등이 있어 많은 이들이 꼽는 꿈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이 지역이 유명해진 것은 동명의 글로벌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덕분이다. 창업자는 미국 암벽 등반가 출신의 이본 쉬어드(84)다.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암벽 등반 장비가 입소문을 타면서 회사를 차린 그는 아웃도어 의류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1973년 사명을 파타고니아로 바꿨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할 때 북한산 암벽 루트를 개척해 한국인에게도 알려진 인물이다. ‘이 재킷을 사지 ..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인구동향’에 의하면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5이다. 합계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홍콩과 같은 수치이다. 저출생은 사회적 문화로 자리 잡았고 자녀 양육과 관련된 환경을 개선해도 출생율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 우리가 별다른 대책을 만들지 못하면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 진입과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예상된다. 통계청이 9월에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에 의하면 2070년 우리나라는 노년부양비가 100.6으로 생산연령 1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하는 나라가 된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살 수 없는 나라가 된다. 2021년 통계청의 중위 추계에 따르면 2120년 우리나라의 인구는 약 2100만명이다. 2022년 약 5200만명의 40%로 줄어드는 것이다.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