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 전망 보고서는 2050년의 경제성장률이 0.5%에 그치고 사실상 ‘제로성장’이 예상된다고 전한다.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같은 변화가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생산연령 인구 비중이 2020년 72.1%에서 2050년 51.1%로 하락하면서 2041년부터 매년 국내총생산(GDP)이 평균 0.7%씩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로성장이라는 미래에 많은 사람들, 특히 경제 전문지들은 큰 우려를 표한다. 경제성장률은 우리의 일자리이고 소득이고 선진국의 지표이며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산업화를 먼저 시작한 많은 강대국들이 제로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국은 아직 예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050년은 한국..
수소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한 새 정부 수소경제 정책 방향이 발표되었다. 이번 정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중동, 동남아 등 해외에서 재생에너지 또는 온실가스 포집·저장 기술과 결합하여 천연가스로부터 생산된 무탄소 수소·암모니아를 대량 도입하고 화석연료를 대체하여 발전용 연료로 사용하는 방안이다. 화석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의 국내 발전 비중은 지난해 63.5%에 이르고 있는데, 이번 정책에서 수소·암모니아 발전 비중을 2030년에 2.1%, 2036년에 7.1%까지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였다. 구체적으로 가스터빈에서 수소를 LNG와 혼합연소(혼소)하는 것과 석탄화력에서 암모니아를 혼소하는 두 방안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탄소중립 달성의 큰 축을 담당하면서, 한 기당 수천억원에 달하는..
‘페트병 뚜껑을 본 적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마 뚜껑에 써진 브랜드나 색을 살필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 덕후’들은 병뚜껑 안쪽에 고무나 실리콘이 껴 있는지부터 찾는다. 재활용 4대 원칙은 ‘비행분석’(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다)인데 이중 소재 병뚜껑은 이미 재질이 섞여 있는 상태라 재활용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중 병뚜껑을 사용하는 ‘나랑드사이다’에 열렬히 편지를 썼다. 다른 탄산음료처럼 재활용 가능한 병뚜껑으로 교체해달라고 말이다. 며칠 전 동아오츠카는 나랑드사이다를 단일 재질 병뚜껑으로 교체한다고 응답했다. 그런가 하면 ‘카카오임팩트재단’에서는 회의 음료를 주문하면 일회용컵도 딸려 오는데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의지가 있어도 대안이 없다니! 우리는 다회용컵과 음료를 싸 들고 회의장에 ..
학교가 서둘러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수업시간은 이미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갔고 실외체육활동 때 마스크도 벗었다. 2학기에는 수학여행을 가는 학교들도 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학교는 코로나 이전으로 무작정 돌아가기만 하면 될까?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의 일상이 완전히 달라진 경험을 했는데 학교는 그 속에서 배운 점은 없었던 것일까? 학교는 팬데믹 기간 동안 학교의 근본적인 기능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멈추는 경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본질과 부가적인 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났다. 교육부의 사업, 교육지원청의 역점사업이나 외부기관이 요청해온 미술대회나 행사는 모두 멈추었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온 힘을 집중하였다. 학교는 팬데믹 기간 동안 버린 것도 있지만 새롭게 집중하고..
벌써 16년 전 일이다. ‘그린보트’ 두 번째 출항에 여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탔다. 보름 동안 1000명 이상이 한배를 타고 진행하는 연수 과정이라 아이랑 너무 오래 떨어지는 게 힘들어 함께 배에 올랐다. 어찌저찌 일을 보다 첫날 갑자기 아이를 선내에서 잃어버렸다. 8층짜리 건물 크기 크루즈선이라 정신이 아득했다. 나 역시 처음 타보는 배라서 잔뜩 긴장하며 문마다 열고 다녔는데, 어느 문을 하나 열고는 무릎이 꺾여 주저앉았다. 시퍼런 파도가 난간에 들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은 매우 무겁지만 만약에 아이가 이걸 열고 나갔을 생각이 들자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지나가는 우리 직원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나 좀 살려줘”라고 말했다. 여섯 살짜리 아이를 이 배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디서도 안 보..
월 9유로, 한화 1만2500원이면 기차와 버스 자유 이용. 지난 6~8월 3개월 동안 독일 정부가 시행한 근거리 대중교통 할인 정책이다. 물가와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시민들의 부담을 덜고 탄소배출도 줄이려는 의도였다. 정책의 결과는 놀랍다. 무려 5200만여명이 9유로 티켓을 샀다. 이 나라 성인 모두 한 차례씩 구매한 셈이다. 티켓을 이용한 사람 중 20%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다른 27%는 버스나 전철을 한 달에 한두 번 타는 게 전부였다. 이용객 절반이 자가용을 놔두고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독일 통계청은 이 정책 첫 달인 6월 철도 운송 이동량이 코로나19 이전 같은 시기보다 평균 42%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시기 중거리 도로 교통량은 6% 줄었다. 덕분..
단풍이 늦어진다는 것은 나무의 휴면 시작 시기가 늦어진다는 것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수면이 부족하면 다음해 가뭄·폭염·한파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가을이 늦어지고 봄이 빨리 찾아온다는 건 나무가 잠에 늦게 들고 빨리 일어나는 것이다 나무 수면시간이 준 것은 가을의 기후위기 신호다 그 수면시간 안 돌려주면 찬란한 오색단풍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올해 초 동해안에서 발생한 산불은 한반도를 삼킬 것처럼 기세를 떨쳤다. 그리고 여름이 오자 서울 시내 한복판에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폭우가 내렸다. 봄을 지나 여름까지 기후위기를 몸소 체험한 한 해가 어느덧 중반을 지나 가을이 찾아왔다. 며칠간 이어졌던 반짝 추위도 지나가고 따뜻한 햇살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에 오랜만에 날씨가 주는 행복감을 맛..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지만 한국 역시 농업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영역이다. 해가 다르게 예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작물 재배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야외에서의 논밭 일도 힘들어지고 판매도 불안해진다. 날씨가 불리해질수록 농민들은 시설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정부가 권하는 스마트팜과 정밀 농업은 더욱 비용이 들기에 소농은 갈수록 설 곳이 없어진다. 유엔과 세계의 농업 연구기관들은 유기농과 소농이 온실가스 감축의 유력한 대안이라고 말하는데 한국의 상황은 반대다. 지난해에 가까운 선배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나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만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감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느냐고. 놀랍게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아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