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분출하고 있다. 여당의 분당으로 신4당 체제로 정치권 구도가 재편되면서 개헌을 매개로 한 대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개헌론자들의 주장은 박근혜 게이트처럼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이 문제가 되니 개헌을 통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주장,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고치자는 의견도 있다. 1987년 체제 이후 강화된 시민의 정치·사회적 권리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제기되는 개헌론은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다. 우선 정치권이 당장 개헌 논의를 시작하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그런데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한 개헌이 아니다.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된 구체제의 개혁과 일신이다. 개헌론..
지난 12일 여야 3당은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국회 개헌특위를 운영키로 합의했다. 위원은 새누리당 8명, 민주당 7명, 국민의당 2명, 비교섭단체인 정의당 1명 등 총 18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맡기로 했다. 탄핵 시국에서 개헌 추진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고 개헌 내용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개헌 논의를 국회에만 맡겨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개헌의 방향에 대한 여야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같은 당 안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개헌안 마련을 의석수에 비례한 국회 특위에 맡길 경우 과연 가능할까. 국회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구획정조차 입장 차이로 법정시한을 넘겨 처리했다. 선거구를 ..
촛불 민심에 놀라 침묵했던 새누리당 친박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떠넘긴 뒤부터다. 친박들은 개헌 추진 등 정국 전환을 시도하고, 촛불 민심을 조롱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들 범죄의 공범이 되고 탄핵·퇴진에 몰리게 된 데는 친박 세력 책임이 가장 크다. 자숙해야 마땅한 이들이 또 돌격대인 양 나서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이 대통령 담화를 ‘꼼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국회 권능을 스스로 무시한 피해 의식”이라며 “국회가 역할을 못하면 ‘무기력 집단’으로 지탄을 받게 될 것이고, 국민은 절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다.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은 “의원총회에서 (당내 비주류가 결성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제 담화는 개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이 개헌이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와 친박 세력이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을 제기했던 점을 고려하면 개헌론에 불을 붙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개헌론을 부추기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제 서청원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이 거론한 것이 바로 개헌을 고리로 한 박 대통령의 명예퇴진이었다. 이런 움직임에 개헌론을 제기하면 탄핵의 대오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내놓은 게 바로 담화이다. 야권 내 일부도 개헌을 주장하므로 야권을 분열시켜 탄핵을 희석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었던 지난달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장에서 터져 나온 지 5주가 지났다. 촛불민심은 영하의 날씨에 들이친 진눈깨비에도 꺼지기는커녕 거세지고 있다. 그만큼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열망이 뜨겁다는 증좌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세력들이 개헌론을 끼워 팔려고 하고 있다. 촛불민심에 편승한 곁불 쬐기다. 최근 개헌 논의 불씨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폈다. 그는 23일 “문제 해결은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탄핵과) 개헌도 동시에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현 시국과 개헌 그리고 제3지대론’ 토론회에는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정 전 의장과 손 전 고문은 26일 따로 만나 개헌 논의를 주고받았다. 정..
미국의 사회학자 랄프 키즈는 2004년 사회생활에서 진실과 신뢰가 실종되어 부정직과 기만이 판치는 점에 주목해 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진실 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들춰 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롬니는 ‘진실 뒤의 정치’ 수법을 구사하며 오바마를 비판했다. 이것은 2016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행한 여러발언의 모델이 됐다. 그리고 2016년 영국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이탈파는 ‘진실 뒤의 정치’를 내걸어 일정한 지지를 얻었고 관철됐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짓이 남길 후과를 생각해 보지도 못한 채. 완벽한 거짓은 완벽해 보이는 진실 뒤에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 눈앞에 보이는 진실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진실이..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황당하다고 해야 하나? 국회에 나와서 임기 내에 개헌을 주도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할 때만 하더라도 독선적인 표정이 역력했는데, 바로 이튿날 “국민들께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과한다면서도 빤한 거짓말을 몇 마디 하고는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하는 것을 보고 그걸 진솔한 사과라고 받아들일 ‘국민’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도 늘 자기만 옳다는 독선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권력자가 저렇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낯선, 결코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생각할수록 기괴스럽다. 국정원의 개입 덕분이든 뭐든 박근혜 정부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정권의 막후에서 국..
후쿠시마 사태 이후, 많은 일본 시민들은 ‘핵 없는 세상’을 절규하며, 정부에 원자력 정책의 변경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시위를 계속해왔다. 그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발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의 하나는 노벨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말이었다. 그는 엄청난 원자력 재해를 겪고도 기존 원자력 정책을 완고하게 밀고 가려는 정부와 지배층의 태도에 절망하고, 그것을 “우리는 모욕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 나는 오에 겐자부로를 별로 중요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반핵 시위에 적극 참여할 뿐만 아니라 시위대 앞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그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발언은 오늘날 일본을 비롯해서 한국, 나아가 세계의 지식인, 작가, 예술가들이 느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