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은 1978년 11월9일자 ‘독립문과 민족정신’ 제하의 사설에서 독립문 이전에 반대한 바 있다. 치욕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독립문을 옮기겠다는 서울시를 질타한 것이다. 영은문은 조선시대 태종 때인 1407년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세운 모화루(모화관) 앞에 만든 홍살문이 전신이다. 영조문이라 부르다 중종 때 명나라 사신 설정총이 영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명나라를 상전으로 받들라는 사대주의의 표현이다. 얼마나 오만방자한, 그러면서도 모욕적인 이름인가. 조선의 왕들은 명과 청의 사신들이 천자칙서를 가지고 오면 이 문까지 나가 큰절을 하고 맞아들였다고 한다. 500년간 이어져온 수치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독립협회를 조직한 서재필은 1898년 사재를 털고 기금을 모..
실패해도 된다면서 세상은 늘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곤 하지만,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해야 하는 실패는 그 자체로 두려움이다. 어쩌면 실패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학교, 취업, 사랑, 돈 때문에 세상은 패배자란 낙인을 찍는다. 그래서 실패는 꼭꼭 묻어두었다가 성공하고 나서야 꺼내보이는 후일담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릴 적부터 실패하지 않으려면 덮어놓고 노력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 노력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밤을 새워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방탄소년단이 되진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기적이나 행운은 우리 곁으로 날아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우리들 대부분은..
10월이면,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모인 지 2년이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그 이전부터 쌓여가고 있었다.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소수의 특권층들이 사실상 지배하는 국가가 된 지 오래였다. 그 결과 사회 곳곳에서 불공정이 심각해졌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정치는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조기 대선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됐다. 변화는 있었다.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던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는 평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것만 해도 큰 변화이다. 그러나 국내 문제를 ..
모든 나라에는 광장이 있다. 천안문광장, 트라팔가광장, 카탈루냐광장, 바츨라프광장 등. 광장은 각자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다. 그리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광장들은 혁명의 유산을 갖고 있다. 1919년 5·4운동과 1989년 6·4항쟁의 중심지였던 천안문광장, 스페인 왕정으로부터 카탈루냐 분리 독립의 시민 함성이 가득했던 카탈루냐광장, ‘프라하의 봄’으로 각인된 체코 민중혁명의 진원지 바츨라프광장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우리에게도 광화문광장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분노의 촛불을 들고 겨울의 길고 긴 암흑의 시간을 뚫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전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붉은악마의 함성에서 2015년 촛불 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의 정치적, 문화적 해..
로간과 몰로치는 지역 엘리트들(정치가, 교수, 건축가 등)이 연합해서 개발을 통해 이익을 보는 순환 양상을 ‘성장기제(growth machine)’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사실 중견은 중견대로, 건축가는 건축가대로 거대한 사업들에 몸이 얽혀있다. 도시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대로 이해관계로 포섭하는 방법은 폭력, 공론 형성의 차단과 함께 국가가 위기를 해소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개발 선호 사상에 함몰되지 말고, 개발을 정치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자는 스스로의 다짐들을, 어쩌면 소위 엘리트 연합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장기제’를 위해 외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깝다. 바로 광화문광장 이야기다...
서울시가 미세먼지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과 머리를 맞댄다. 이를 위해 오는 27일 광화문광장에는 3000여명이 참여하는 300여개의 원탁테이블이 마련된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행사 이후 최대 규모로 시민 소통의 장이 마련되는 셈이다. 시와 자치구 공무원, 시교육청, 보건환경연구원 등 관계자들과 전문가, 언론인, 기업인,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참여한다. 하지만 주부 등 일반시민이 참가자의 대부분이 될 것이다. 연일 미세먼지로 인해 불안과 불편을 겪어온 터라 환영한다.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으로 효과는커녕 불안만 가중됐는데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공론화 장이 생기니 반가운 일이다. 미세먼지 원인과 해결 방안, 정책 우선순위 선호도, 정부와 서울시의 역할 등이 토론 결과로 요약되고 공개된다. 뿔난 시민들..
2016년 마지막 날에도 광화문광장은 시민들로 가득 찼다. 그들이 왜 그곳에 모였는지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12월31일 광장에 가지 않은 이들도 이유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 그곳에 있지 않으면 독감처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파고드는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서라는 걸. 광장에서 외치고 토론하고 노래하지 않으면 악귀가 달라붙은 것 같았던 끔찍한 한 해를 차마 떨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을 수 있다는 불길함이 엄습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2016년은 국가가 산적한 난제들과 씨름하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간 시간이 아니라 멈춘 시간이었다. 아니, 지난 4년 전체가 동결된 시간이었고 2016년은 그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4년 동안 우리는 공익을 위한..
세밑이다. 한 해를 마감하기 사흘 전에 찾은 광화문광장에 부는 바람은 찼다. 하지만 가을 끝자락에서 겨울로 진입하던 때 뜨겁게 달궈졌던 광장의 열기는 칼바람에도 식지 않았다. 작가 최인훈은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고,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두 공간의 어느 한쪽을 가두어버릴 때 인간은 살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옳았다. 광장의 촛불은 밀실의 어둠을 몰아냈다. 죽어가던 민주주의를 살려낸 광장은 위대했다. 1000만개의 촛불로, 질서 있는 분노로, 저항의 함성으로 가득 찼던 광장은 명예혁명의 산실이었다. 헌정파괴와 국기문란을 일삼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열차에 올려 태운 광장의 명령은 준엄하고도 단호했다. 세밑 광장은 앙시앵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작을 간구하는 외침으로 가득 차 있다. 70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