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지체된 정의는 정의에 대해 거부하는 것과 같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부정된 것이다.”(마틴 루서 킹 )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꺼내기도 무참하리만큼 참으로 너무 ‘오래’ 걸렸다. 청춘의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몸과 마음이 병든 채 해방 조국에 귀국한 이래 일흔세 해가 흘렀다. 일본에서의 법정 싸움까지 포함하면 소송 제기 21년, 국내 소송 기간만 따져도 13년이 걸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해당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이제야 나왔다. 늦어도 너무 늦었기에 소송을 낸 강제동원 피해자 4명 중 3명(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은 ‘제사상 판결문’으로 받아보게 됐다. 이춘식 할아버지(94) 홀로 승소가 ..
대법원이 24일 검찰의 ‘양승태 사법농단’ 관련 자료 제출 요청과 관련해 “검찰이 보낸 공문을 검토해 제출할 자료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9일 검찰이 자료를 요청했는데도 대법원이 계속 침묵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검찰이 요구한 자료에는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특조단)이 조사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8개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하드디스크 등이 포함돼 있다. 검찰은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의 업무추진비 집행내역과 관용차량 이용내역, 특조단이 자체 조사 과정에서 생산한 문건 등도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대법원은 “방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입장에서 임의제출이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는 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달라”고 했다. 법원의 고..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과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14년 만에 다시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기로 했다. 대법원에서 따로 심리 중인 두 건의 병역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오는 8월30일 공개변론을 열기로 한 것이다. 대법원은 대법관들 간 의견이 모아지지 않거나 기존 판례를 바꿀 때 전원합의체를 가동한다. 대법원은 2004년 7월 전원합의체를 통해 “양심의 자유보다 국방의 의무가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한국 사회는 병역 의무를 강조한다. 힘없는 사람들만 군대에 간다거나 남북 대치 상황에서 병역거부를 용인하지 못하는 정서가 강하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을 조사한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가 지난 18일 내놓은 보고서는 사법부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일선 법관들과 시민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사태를 축소·은폐하기 위한 꼼수로 진상조사위 카드를 사용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진상조사위는 고영한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음에도 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를 한 파일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컴퓨터를 조사하지 않은 채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단정지었다. 양 대법원장을 조사했다면서도 무슨 내용을 묻고 어떤 답변을 들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대법원의 판사 탄압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주 양승태 대법원장은 신임법관 임관식에서 말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라고 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은 법관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됨을 갈파한 경구로서, 우리 모두 이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젊은 법관 107명이 처음 법복을 입고 들은 ‘대법원장님 말씀’은 과연 사실일까. 이 말은 발자크의 소설 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입니다. 사법부의 현재 관행을 때려 부수고 다른 바탕 위에 새롭게 지으십시오. 하지만 사법부 신뢰를 멈추진 마십시오.’ 현실 사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냉소가 섞인 문장이라고 한다. 파리8대학에..
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자료 등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박근혜 게이트에 버금가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판사들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김모 전 심의관 컴퓨터에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정리한 일종의 사찰 파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찰 파일에 관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원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 발령 2시간 만에 행정처에서 인사조치당한 ㄱ판사는 이 파일 관리 업무도 맡으라고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과거에도 설이 무성했다.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것이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검찰을 비판하고, 검찰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수사든 유무죄는 법원에서 가려진다. 법원의 최종적인 승인 없이 검찰만의 전횡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권력은 반드시 법원권력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법원권력의 한가운데에는 대법원이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법원은 정권의 외압을 받지 않는다. 지금의 대법원은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서 대법원이 보여준 권력지향성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2015년 1월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대법관에 임명제청된 것부터 이상했다. 박 원장은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의 담당검사 출신이다. 아무리 검찰 출신이 대법관에 임명될 차례라고는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
대법원이 일선 법관들의 사법개혁 요구를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에게 압력을 가하고, 판사들의 학술 모임을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통났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대법원은 해당 판사가 지시를 거부하자 부임 2시간 만에 지방 법원으로 인사 조치까지 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와 증거인멸, 보복 인사 등이 사법부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발단은 판사 480여명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개혁을 위해 전국의 법관 29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다. 설문에는 법관의 독립성 보장,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재판의 공정성 등에 관한 질문이 포함됐다. 그러자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로 갓 발령이 난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판사에게 설..